찻잎을 뜨거운 솥에 넣어 '살청'하는 녹차가공법
찻잎을 비벼서 상처내고 산화시키면 홍차돼
홍차가공법의 핵심은 '산화'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차는 차나무의 싹이나 잎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면 녹차는 녹차나무의 싹과 잎으로 만들고, 홍차는 홍차나무의 싹과 잎으로 만든 것일까?
흔히들 보성 녹차 밭, 하동 녹차 밭, 제주 녹차 밭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러면 보성, 하동, 제주에서는 녹차만 생산하는 것일까?
녹차나무, 홍차나무 따로 없어
녹차나무, 홍차나무는 따로 없다. 차나무는 '카멜리아 시넨시스' 라는 학명을 가진 한 종류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하동이나 보성, 제주에서도 녹차를 만드는 차나무의 싹이나 잎으로 홍차도 생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나 스리랑카에서도 홍차를 생산하는 동일한 차나무로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보성 차나무는 녹차로, 인도 차나무는 홍차로 가공하면 맛있어
다만 차나무는 한 종류이지만 이 종류 속에 품종은 다양하다. 마치 사과와 배가 다른 종류의 과일이지만, 사과라는 과일 속에는 또 품종에 따라 홍옥, 홍로, 부사, 감홍 등의 품종별로 이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또 사과 잼이나 사과 주스를 만드는 품종은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알고 있는 품종 말고 더 적합한 다른 품종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품종의 차나무는 녹차를 만들었을 때 더 맛있고, 어떤 종류의 차나무는 홍차를 만
들었을 때 더 맛있을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보성이나 하동에서 재배되는 차나무로는 녹차를 만들었을 때 더 맛있고,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재배되는 차나무는 홍차로 만들었을 때 더 맛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품종의 차나무로도 녹차도 홍차도 다 만들 수는 있다. 이 말은 필자가 봄에 하동에서 같은 차나무의 찻잎을 채엽해서 하루는 녹차를 만들고 하루는 홍차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차는 어떻게 만들까
그렇다면 같은 차나무의 싹이나 잎인데, 어떻게 해서 찻잎의 외형도, 우린 차의 수색도, 맛도 향도 아주 다른 모습의 홍차와 녹차로 될까?
만드는 방법 즉 가공법이 다른 것이다. 마치 똑같은 생닭을 삶으면 백숙이 되고 튀기면 통닭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녹차가공법과 홍차가공법이 다른 것이다. 이 차이점의 핵심이 산화(酸化)라는 과정이다.
홍차는 찻잎을 산화시킨 것이다. '산화' 라는 용어가 일상에서 익숙한 용어는 아니지만, 사과를 깎아놓으면 갈변하고 감자를 깎아 놓으면 갈변하는 것이 '산화' 작용에 의한 것이다.
차에 있어서 가장 잘못 알려진 것 중 하나가 홍차를 발효차라고 하고, 녹차는 불발효차 라고 구분하는 것이다.
'발효'는 미생물이 개입하는 것이다. 콩을 된장으로 발효시키고, 포도를 와인으로 발효시키는 것은 미생물(효모)이 맞다. 미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다만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깎은 사과와 깎은 감자는 갈변하지만 잘라놓은 토마토는 갈변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사과와 감자의 잘린 면에는 토마토에는 없는 어떤 성분이 들어 있어 이것이 산소와 접하면서 갈변현상 즉 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성분이 산화효소이다. 효소(酵素)와 효모(酵母)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르다.
효모는 미생물의 하나로 살아있는 생명체 이지만 효소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 물질이다. 녹색의 찻잎이 짙은 적색의 (홍차) 찻잎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미생물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찻잎 속에는 폴리페놀이 들어 있고 이것을 산화시킬 수 있는 폴리페놀 산화효소도 들어있다. 찻잎이 차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세포막들이 폴리페놀과 산화효소를 구분해 놓지만 채엽 되어 진 후에 찻잎이 건조해지면서 이 세포막들이 파괴되어 폴리페놀과 효소를 만나게 한다. 여기에 산소가 개입해 일어나는 것이 찻잎의 갈변 즉 산화작용인 것이다.
삶은 감자는 갈변하지 않는다. 이는 효소가 열에 약한 성질이라 삶는 열에 파괴되어 기능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녹차가공법, '살청'으로 찻잎속 효소기능 없애
녹차는 찻잎을 뜨거운 솥에서 살청을 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찻잎 속에 든 효소가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녹차는 완성된 후에도 그냥 녹색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홍차는 이 살청 과정 없이 찻잎을 비벼서 상처를 내어- 마치 사과를 강판에 갈아 부순 것처럼- 긴 테이블에 펼쳐 놓으면 짙은 갈색으로 갈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녹차와 홍차를 불발효차, 발효차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굳이 구별하자면 비산화차, 산화차로 구분하는 것이 맞다. 다시 강조하지만 홍차는 찻잎을 산화시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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