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더이상 안전자산 아니다?...금· 달러에 투자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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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더이상 안전자산 아니다?...금· 달러에 투자자 몰린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2.21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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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엔환율 112엔..엔화 가치 작년5월 이후 최저
금 가격은 7년만에 최고치..."온스당 2000달러 넘길 것"
달러, 주요 통화에 대해 일제히 강세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일본 엔화의 가치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일본 엔화의 가치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일본 엔화 위상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불안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금 가격은 7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금과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불리던 엔화의 움직임은 정반대다. 일시적인 움직임이라고 하기엔 경종을 울리는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뉴욕외환시장에서 21일 달러-엔 환율은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110엔을 뚫고, 112엔대로 올라섰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엔화와 금의 상반되는 움직임을 주목하며,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서 위상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이 약해질수록 다른 안전자산, 즉 금이나 달러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적인 안전자산 엔화..어쩌다가

엔화는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엔화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것은 일본인들의 저축 습관과 무관치 않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기침체를 겪었다. 이 시대를 겪거나, 눈으로 보며 자라온 세대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려는 성향을 보여왔다. 일본 자산운용사들은 금고에 쌓인 이 돈을 달러로 바꿔 해외에 투자해왔다. 

일본인들이 지난 2018년 해외 금융이나 실물자산에 투자한 규모는 1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이 상당한 규모의 투자 수익이 일본으로 돌아올 때 이를 엔화로 다시 바꾸게 되니, 엔화는 늘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엔화는 금이나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엔화는 국제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강세를 보이며,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나, 최근에는 이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게 되자, 금과 같은 안전자산 쏠림이 재현됐다. 그러나 엔화 선호도는 낮아 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달러대비 엔화는 21일 달러당 111.90엔을 기록중이다. 달러당 110엔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달러당 110엔 선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일컬어졌으나, 이 역시 맥없이 뚫렸다. 엔화는 지난 20일에는 달러대비 1.4% 가까이 급락하며 6개월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달러대비 엔화 흐름.
달러 대비 엔화 흐름.

투자자들, 엔화 외면하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여건 속에서도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엔화를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경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난 17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대비 1.6% 줄었다. 연율로 환산하면 6.3% 줄어든 것. 1분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분기 역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연속으로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는 사실상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추가적인 경기부양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경우, 즉 유동성을 추가로 투입할 경우 엔화 약세가 가속된다. 

BNP파리바의 샤팔리 사흐데브 아시아 FX 팀장은 "코로나19는 금 랠리를 이끌었지만 엔화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볼 수 없다"며 "코로나19 사태의 일본 내 확산과, 최근 취약한 경제 자료로 인해 투자자들의 우려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쿄올림픽까지 차질을 빚게 될 경우 일본의 경기 위축은 불가피하다. 이같은 우려 속에서 엔화 표시 자산을 대규모로 매각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2월 첫 2주 동안 일본 투자자들은 약 3조 엔 규모의 해외채권을 매입했는데, 이는 국내투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ING는 "3월말 일본 회계연도 마감 시점이 다가오면서 일본 투자펀드들의 포지션이 해외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화되고 있다"며 "일본 금리는 덜 매력적이고, 일본 펀드들이 고금리 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같은 변화는 일본 기금들의 엔화 매도, 해외통화 매입 흐름을 강화시킨다"고 덧붙였다. 

XM의 투자 애널리스트인 라피 보야디지안은 "최근의 엔화 하락은 이례적"이라며 "이는 엔화가 세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안전자산으로서 빛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온스당 금 가격 추이.
온스당 금 가격 추이.

엔화 외면하는 투자자, 금·달러에 관심

투자자들이 엔화를 외면하는 현상은 금 가격이나 달러화의 강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가격은 온스당 1619.05달러를 기록해 2013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은 지난 한 해 20% 이상 반등한 바 있다. 지난 한 해 글로벌 주식시장을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던 미·중 무역갈등,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금 매입, 사상 최저 수준의 낮은 금리 등이 금에 대한 선호도를 높인 것이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면서 랠리를 이어가던 추세는 더욱 힘을 받았다. 

배런즈에 따르면, 캔어코드의 분석가인 마틴 로베르지는 "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금 가격은 이제 지난해 8월 수준을 넘어섰다"며 "이는 추가적인 상승이 가능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금 가격은 저금리 환경에서 늘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코로나19 사태로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금 가격의 상승세도 예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TD증권의 바트 멜렉 상품전략분석가는 "온스당 1700달러로 전망한다"며 "중앙은행과 심지어 각국 정부들이 경제 성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시장에 유동성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고, 이는 금에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티은행은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를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CNBC에 따르면, 시티은행은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금을 매수하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6개월내 온스당 100달러 이상 추가적으로 오르고, 12~24개월 이내에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달러화에 대한 선호 현상도 두드러진다. 

UBS 글로벌자산운용의 제이슨 드라호 자산배분팀장은 "많은 투자자들이 경기변동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미국이나 기타 자산을 사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보뱅크 역시 "달러는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에게 인기있는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며 "우리는 올해 미 달러화가 기대보다 훨씬 더 강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이후 엔화 대비 달러화는 2% 급등, 10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로화 대비 달러화는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중국 위안화 대비 달러화 역시 연중 최고 수준을 찍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인덱스는 2017년 5월 이후 최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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