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수의 예술평론] 기생충의 성공 요인: 봉준호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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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수의 예술평론] 기생충의 성공 요인: 봉준호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조만수 충북대 교수
  • 승인 2020.02.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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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영어 영화인가?...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전세계 시장化'가 배경
왜 하필 기생충이?...전세계 이슈 '빈부격차' 다뤄...'참으로 시의적절'
왜 봉준호인가?...자본주의적 모순,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표현
'돈. 도온...돈. 돈...' 모르스 신호, 자본주의 가치 중심 ‘돈’과 극적 모순...세계인들 '그 계획' 환호
조만수 충북대 교수
조만수 충북대 교수

[조만수 충북대학교 교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받았다. 1929년 제1회가 거행된 이래 올해 92회를 맞는, 그러니까 거의 한 세기에 이르는 아카데미상의 역사 속에서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로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싱어'가 상연된 것이 1927년이니, 결국 기생충은 미국영화사 전체에서 미국 밖에서 만들어져서 헐리우드를 뒤흔든 최초의 사건이 된 셈이다.

오스카 새 역사 쓴 '기생충'...전조는 있었다 

예술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흥행 역시 중요시 하는 오스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기생충'은 영화시장 자체를 흔든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처럼 새로운 역사를 가능하게 했을까?

2004년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던 드니 아르캉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아메리카제국의 쇠락'의 첫 장면은 역사과 교수인 주인공 레미 지라르의 강의로 시작된다.

그는 이 강의에서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3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인구수이며, 둘째도 인구수이고, 셋째도 역시 인구수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을 오스카상의 역사적인 변화에 대입해 이해해 본다면, 비영어권영화가 오스카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전세계적인 영화 수용자들의 인구적 구성의 변화와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여건이 변화한 것이다.

그것은 백인, 남성, 영어사용자의 취향을 대변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전세계 시장에 어려움 없이 강요할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류영화, 인도영화, 나이지리아 영화 등 주변부의 탈중심화된 지역적 중심들이 성장하고, 이 탈중심화된 새로운 세력들은 넷플릭스등의 새로운 배급 플랫폼을 통해서 지역적 거점으로부터 벗어나 전지구적인 수요자들과 만나게 된다.

헐리우드라는 아메리카 제국은 쇠락하고 이제껏 소수자였던 ‘야만인들’의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헐리우드라는 중심과 이외의 주변 지역의 관계로부터 봉준호가 지적했듯이, ‘로컬’ 중의 하나로서 헐리우드의 변화 징후가 강하게 나타날 때, 헐리우드는 이 ‘로컬’들을 다시 자신의 일부로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

변화의 초기에는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버드맨', 2016년 오스카 작품상), 기예르모 델 토로('셰이프 오프 워터', 2018년 오스카 작품상)처럼 비영어권 감독을 헐리우드 제작 시스템 안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할리우드 영화산업, 기생충에서 전세계 공통의 '시의적절' 발견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가 필연적인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오스카는 훨씬 극적인 방식으로 이 변화의 수용을 연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변화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선언할 수 있는 계기를 2020년 '기생충'에서 찾는다. 아카데미각색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작품상 4개 부문을 '기생충'이 석권하는 사건은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변화의 계기가 봉준호의 '기생충'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 중의 하나는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대사 속에 이미 봉준호가 마련해 놓았다. 아들 친구 민혁이 선물로 가져온 '산수경석'을 바라보면서,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여파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금, 그리고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정권 하에서 빈부격차가 최고로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영화 '기생충'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빈부격차라는 주제의 보편성이 이 영화 성공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기생충'의 성공은 이와 같은 보편적이며 시의적절한 주제를 '매우 영화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빈부격차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봉준호의 '매우 영화적인 방식'은 현실적인 주제를 현실적인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마치 김기사의 아들 기우가 망원경을 가지고 박사장의 집을 들여다보듯이, 봉준호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멀리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그의 카메라 속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마침내 투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거리는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무거운 사회학적 분석을 상업적 장르의 문법 속에서 포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봉준호 감독이 스스로를 ‘장르영화감독’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처럼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의 상업적 기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적 모순을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헐리우드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문화산업 제도가 그에게 경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생충'으로 오스카 작품상등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 사진= AP/연합뉴스
'기생충'으로 오스카 작품상등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 사진= AP/연합뉴스

봉준호式 자본주의 모순 '상징 찾기' 놀이에 관객 환호 

그런데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진부하고 철지난, 혹은 철부지 같은 시도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봉준호는 여전히 이 모순을 다양한 조합의 이미지를 통해서 재사유하고 있다.

봉준호에 환호하는 관객들은 바로 이와 같은 재사유의 놀이에 참여하는 관객들이다. 봉준호의 관객은 이야기에 감동받는 관객이라기 보다는 자기 방식으로 '기생충'의 이미지를 해석하고 사유하는 관객이다. 친구 민혁이 가져온 수석을 바라보면서, 기우는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하듯이 이 상징을 해석하는 놀이에 봉준호는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봉준호가 제시하는 놀이는 현학적이지 않으며, 사유를 위한 단초들을 이미지 속에 풍성하게 심어놓았기에 보상이 충분한 보물찾기와 같은 것이다. 관객들은 지배자/피지배자의 관계를 선/악의 이원론으로 설정하지 않는 봉준호의 방식을 발견하며, 욕조에서 목욕할 때 부잣집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기정의 자태와 똥물이 넘쳐나는 변기 위에서 담배 피우는 기정의 모습의 대비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저택의 2층과 1층, 그리고 기택의 반지하집, 그리고 박사장 저택의 숨겨진 지하층의 계층적 차이점을 이해한다. 또한 관객들은 워키토키, 핸드폰, 모르스 부호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들이 차별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를 눈치채며, 지하로부터 오는 절망적인 도움의 신호를 해석해냈지만 그 신호에 답신하지 않는 박사장의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편지를 해석하고, 그 편지에 답장을 보내기를 꿈꾸는 기우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그 이외에도 봉테일이라고 불리우는 감독이 심어놓은 수많은 영화적 기호들을 해석하는 놀이를 즐기는데, 이와 같은 '놀이 참여' 그 자체가 세계가 여전히, 그리고 이전보다도 심각하게 당착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관객들 자신의 사유와 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기우가 지하철 안에서 모르스 부호로 된 아버지의 편지를 해석할 때, 그는 모르스 부호의 길이에 맞추어 소리낸다. 돈. 도온...돈. 돈...신자유주의 저 아래 바닥에서 도와달라는 목소리와 자본주의의 가치의 중심인 ‘돈’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 모순을 이해하면서 언젠가 그 모순으로부터 벗어날 날을 꿈꾸는 행위 자체, 그것이 봉준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며, 세계인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계획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이며, 예술적 놀이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택이 기우에게 말하듯, 관객으로서 봉준호에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조만수 충북대 교수는 서울대학교를 거쳐 프랑스낭시2대 불문학 희곡 전공으로 불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로도 활동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극장 드라마터그, 국립극단 희곡우체국장 등을 역임했다. '오슬로', '동주앙', '단테의 신곡'등 40 여편의 작품의 드라마터그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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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05010 2020-03-29 00:17:45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