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아내 탓’ 하지 않는 생활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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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아내 탓’ 하지 않는 생활진보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2.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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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성별차이가 권력차별로 정당화돼선 안돼
구진보, 물질주의·권위주의·가부장주의 못벗어나
신진보, 탈집단주의·탈권위주의 지향...'공적 동료시민' 의식 가져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 트랜스젠더 하사관인 변희수 씨의 강제전역에 이어서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신입생 A씨가 끝내 입학을 포기했다. 이번 사건을 놓고 성 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것은 공적분야인 군대와 대학사회에서 ‘젠더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을 보여준다. 변희수 하사관은 전역을 하면서 “우리 군대가 아직 트랜스젠더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은 알고 있으나 저 같은 성소수자 군인들도 차별 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 수행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하면서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A씨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몇 안되는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두려웠다”며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치권내 '무늬만 잰더정치'의 실상들

그렇다면 생활정치의 핵심으로 ‘젠더정치’를 선도해야 할 정치권의 사정은 어떨까? 전반적으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여성 변호사 7인을 영입하는 자리에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은 거의 다 여자의 몫”이라고 말하며, 깊숙이 체화된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주의를 드러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여성친화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그 자리에서 성별 분업의 고정관념을 드러냈다.

민주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였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 이어서 성추행 사건으로 명예훼손 재판이 진행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의 예비후보 자격에 부적격판정을 내렸지만 그 일처리 과정이 개운치 않았다.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심사가 늑장처리된 것도 문제지만, 미투와 사생활 논란이 있었던 민병두·이훈 의원과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정봉주 전 의원을 공천을 하자니 전체 선거판이 흔들릴 위험이 있고, 배제하자니 비슷한 논란이 있는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민주당 지도부가 정봉주 의원을 서둘러 공천배제로 결론을 낸 이유는 뭘까? 아마도 ‘2호 영입 인재’였던 원종건 씨가 성추행 논란으로 낙마한 마당에 자칫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또다시 정봉주 전 의원이 이런 논란에 휘말릴 경우 총선 국면에서 야당에 공격 ‘프레임’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 정서 및 총선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부적절 인사에 대해선 ‘무관용’ 입장을 세워왔다. 하지만 세밀한 인재기준과 검증절차의 부재로 많은 오류와 실책을 보여줬다. 이런 실책은 민주당의 공천불신을 키우고 있다.

차제에 부적절한 인재영입과 공천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젠더폭력’과 ‘가부장주의’에 맞서는 ‘젠더정치’의 내용으로 ‘생활진보’의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즉, 남성과 여성의 성별차이가 권력차별로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 권력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공적인 동료시민’이 되기 위한 생활진보의 공직자 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고(故) 노무현대통령은 대선당시 "장인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아내를 버려야 하느냐"며 버티며 스스로 '정치적 자산'을 만들었다. 사진= 연합뉴스
고(故) 노무현대통령은 대선당시 "장인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아내를 버려야 하느냐"며 버티며 스스로 '정치적 자산'을 만들었다. 사진= 연합뉴스

'신진보'로서의 젠더정치는

그렇다면 강남좌파를 상징하는 ‘구진보’와 탈권위주의적 생활진보를 상징하는 ‘신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명한 로널드 잉글하트의 신작인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에 따르면, 구진보는 ‘물질주의’와 관련되고, 신진보는 ‘탈물질주의’와 관련된다.

물질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간 성장과 분배 같은 ‘해방정치’ 이슈처럼, 생존가치를 위해 위계서열의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와 친화적이다. 탈물질주의는 물질주의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등장하는 ‘자기표현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개인주의적 자유와 성 평등 같은 ‘생활정치’ 이슈처럼, 탈집단주의와 탈권위주의와 친화적이다.

또한 그렇다면 원종건 사건, 정봉주 사건, 김의겸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먼저 지난해 3월 29일 사퇴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논란이 일자 “아내가 상의 없이 결정한 것이다”라고 둘러댔다가 비난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의겸의 ‘아내 탓’은 노무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4월 17일 포항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경북지역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장인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아내를 버려야 하느냐. 여러분이 판단해 달라”며 ‘아내 탓’을 거부한 바 있다.

원종건, 정봉주 사건이 젠더폭력 문제인 ‘미투’와 관련됐고, 김의겸 사건이 ‘아내 탓’을 통해 ‘가부장주의’를 드러냈다. 이들 모두는 ‘성인지감수성’ 부족에 따른 ‘젠더폭력’과 관련된다. 이들에겐 ‘남성중심의 가부장주의’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젠더폭력’이란 성별 차이가 사회적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권력의 차별이 나타나고, 이것이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를 말한다.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성매매, 데이트 폭력 등이 ‘젠더폭력’의 대표적 형태이다.

‘레디컬 페미니즘’에 맞서 ‘여성주의 없는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젠더 트러블'의 저자인 주디스 버틀러에 의하면, 젠더폭력의 근거가 되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자연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권력을 가진 지식인들의 담론권력이 사회구성적으로 만들고 길들이면서 생산한 결과물이다.

지식인의 담론권력에 의해 탄생한 가부장주의 역시 남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에 남성에 의한 여성차별을 당연시 한다. 이에 가부장주의가 강한 조직문화에서는 ‘젠더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주의는 남성의 우월성이 관철되는 위계서열의 가정과 직장 및 조직문화에서 신체적, 성적, 정서적 폭력과 통제, 경제적 피해 등의 ‘젠더폭력’을 동반하게 된다.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정치권의 허술한 공천은 ‘젠더정치의 주류화’를 외쳐온 여성계와 페미니즘계의 목소리와는 대조된다. ‘무늬만 젠더정치’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하다.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인사들이 염치없이 정치권에 문을 두드리게 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드라마 'SKY 캐슬'의 모순처럼,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대학입시 특혜의혹사건’에서 드러난 ‘가부장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견제하지 못한 여성계와 페미니즘계의 후과가 아닐까? 당시 그들의 침묵·묵인·방조가 가부장주의에 찌든 인사들을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란 책을 쓴 박찬효 박사는 올해 2월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SKY 캐슬'은 ‘입시 스릴러’가 아닌 오늘날 가족판타지를 보여주는 ‘가부장제 스릴러’다”고 꼬집었다.

자유기고가 오수경씨는 '여자들의 전쟁'이란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2019.02.15일자) 통해 'SKY 캐슬'의 가부장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드라마의 서사는 상당부분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됐지만, 결국 그 여성들을 가르치며 가족주의를 더 강화하는 주체인 가부장 사회 속 남성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여자들의 전쟁터’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의 '아내탓 거부', 정치적 비르투로 이어져

조국 장관은 지난해 10월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자택 압수수색을 하던 검사와 통화한데 대해 “가장으로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간 조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제 처가 매우 놀라 건강이 너무 염려되는 상태였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연락을 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리고 그는 10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가장(家長)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정을 관리하는 ‘제가’(齊家)를 잘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다. 조국 장관의 이런 표현들은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급들이다. 이와 관련한 10월 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국 장관이 재현하는 가장의 모습과 발언들을 ‘온정적 가부장’이라고 평가했다.

가장(家長)과 제가(齊家)가 표현하는 상징처럼, 가부장주의적 성별분업에서 나오는 그의 무관심한 태도는 '가부장주의적인 직무유기'로 보인다. 이런 가부장주의적인 직무유기는 드라마 'SKY 캐슬'의 주인공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부장주의와 매우 닮았다. 가정관리의 일인 양육과 경제문제는 아내와 여성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남편과 남성들은 사회적인 참여와 공적인 일에만 전념해야 된다는 식의 가부장주의적 이분법 태도를 만든다.

노무현 후보가 ‘아내 탓’ 안하고 자신의 부덕을 탓 했듯이, 이제는 ‘아내 탓’하지 않는 신진보를 보고 싶다.

가정, 직장에서 민주적인 생활습속 실천을 못하면서 공직을 탐하는 것은 과욕이고 위선이다. ‘아내 탓’ 안하는 게 신진보이고 생활정치다.

구진보인 강남좌파인 조국, 김의겸 등과 신진보인 생활진보 노무현의 차이는 뭘까? ‘아내 탓’하지 않은 노무현은 강남좌파와 같이 물질주의와 관련한 주식과 부동산의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탈물질주의적 '정치적 자산'인 ‘비르투’를 쌓았다는 점이 큰 차이다.

‘기득권 타파에 대한 도전’과 ‘원칙있는 패배’를 강조한 노무현은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추구했다. 이번 기회에 ‘아내 탓’하면서 물질주의에 친화적인 구진보가 아니라 ‘아내 탓’하지 않으면서 탈물질주의에 친화적인 생활진보의 공직자 상을 정립해야 한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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