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강렬한 색감에 수채화 같은 스토리...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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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강렬한 색감에 수채화 같은 스토리...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2.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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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오스카 국제영화상 겨뤘던 거장 알모도바르의 21번째 영화
고통 속에 되살아난 유년시절 기억과 불안했던 사랑의 추억 담아
칸 주연남우상 수상 반데라스의 연기, 스페인 특유 컬러감•음악 돋보여
알모도바르 감독의 21번째 연출작. '페인 앤 글로리'.사진=IMDb
알모도바르 감독의 21번째 연출작. '페인 앤 글로리'.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충무로를 넘어 할리우드를 뒤집어 놓은 봉준호 감독은 지난 1월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 당시 "오늘 함께 후보에 오른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리고 멋진 세계 영화 감독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그 자체가 이미 영광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언급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오스카 각본상ㆍ외국어영화상, 칸 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한 스페인의 거장 감독이다. '페인 앤 글로리(Pain & Glory)'는 알모도바르의 진정한 '페르소나'라 불릴만한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9번째 만난 작품이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는 봉준호 영화에 4편에 출연했다. 물론 알모도바르 감독은 나이와 경력 모두 봉준호 감독과 20년의 차이가 있다.    

'페인 앤 글로리'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21번째 영화로 '기생충'과 함께 올해 골든글로브, 영국아카데미, 미국아카데미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면서 스페인 특유의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데 반면 스토리는 간결한 수채화 같아 다양한 매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영화다.

 

색감이 화려한 '페인 앤 글로리'포스터. 사진=IMDb
색감이 화려한 '페인 앤 글로리'포스터. 사진=IMDb

신학교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소년, 감독이 되다

감독을 은퇴한 살바도르 마요(안토니오 반데라스 분)는 불면증, 디스크에 이석증까지 온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 고통으로 거동도 불편해 바닥에 떨어진 물건 조차 줍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 넓은 아파트에 화려한 그림과 명품 가구들이 채워진 곳에서 여유있는 삶을 즐기는 듯 하지만 내면은 상처 투성이로 은둔자처럼 살고 있다.

매일 한 웅큼의 약으로 버티며 고통과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살바도르에게 마드리드 영상자료원이 자신의 32년 전 영화 '맛'을 상영한다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개최하니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보낸다.

32년전 개봉 이후 그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살바도르. 역시 그 후  한번도 본 적없는 주연배우 알베르토(아시에르 엑센디아 분)와 함께 참석하기로 하고 그를 찾아간다. 살바도르는 헤로인에 빠져 과장된 연기를 하는 알베르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살바도르는 수소문해서 찾아가는데, 어쩌다 그가 권하는 헤로인을 처음 접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의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생활력 강했던 어머니 하신타(페넬로페 크루즈 분)가 떠오른다. 하신타와 아들 살바도르는 기차역에서 노숙을 해가며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아버지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추억된다. 하지만 하신타는 동굴같은 집에 실망하고 우연히 글을 모르는 페인트공 에두아르(세자르 비센테 분)을 만나 글을 가르쳐주는 대신 집에 페인트도 칠하고 타일도 붙여달라 말한다. 어린 살바도르는 그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책읽는 모습을 시멘트 포대에 그려주기도 한다. 한편 살바도르는 청년에게서 처음으로 성에 눈을 뜬다.

 

화려한 색감의 '페인 앤 글로리'. 반면 스토리는 수채화같이 담백하고 간결하다. 사진=IMDb
화려한 색감의 '페인 앤 글로리'. 반면 스토리는 수채화같이 담백하고 간결하다. 사진=IMDb

살바도르와 알베르토의 거듭된 만남. 둘은 서로의 삶의 방식이 맘에 안들어 충돌하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차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어느 날 알베르토는 살바도르 몰래 그의 컴퓨터에 저장된 극본 '중독'을 발견하고 자신이 1인극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고, 살바도르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극본이라는 이유로 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덕분에 알베르토는 긴 침체를 딛고 1인극을 공연에 올린다. 

'중독'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동성의 연인이다)가 헤로인에 중독되어 있었고 그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썼지만 불가능했다고 토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주인공은 그를 떠난다. 살바도르가 알베르토의 헤로인 중독을 비난했던 것은 바로 그가 사랑했던 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가 떠올랐던 까닭이다.  

'중독'에 나오는 살바도르의 옛 동성 연인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분)가 마침 지나가다 알베르토의 연극을 보게 된다. 알베르토에게 물어 살바도르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재회한다. 살바도르는 그를 만나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자신의 청춘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는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가진 페데리코의 행복을 빌며 한떄 사랑했던 그를 떠나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페인트공 에두아르가 자신을 그렸던 그림을 갤러리에서 발견하고 그림 뒷면에 에두아르가 자신에게 길게 써내려간 편지를 읽으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그림은 도착해야 할 곳에 도착했다”는 살바도르의 말은 마치 어수선했던 그의 삶이 제자리를 찾아 가고 엉클어졌던 그의 감정들도 다 풀어졌음을 암시한다. 

고통과 함께했던 영광의 나날. 이제 그에게서 고통은 영원히 사라질까.

 

스페인 태생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1949년생으로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이다.  '산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1980)로 데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 사진=IMDb
스페인 태생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1949년생으로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다. '산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1980)로 데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진=IMDb

거장이 고백한 그의 삶, 과연 상처뿐인 영광일까

'페인 앤 글로리'는 예전 그의 역동적 작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이제는 다 내려 놓고 쉬고 싶은 노년의 알모도바르를 보여주는 듯 하다. 감독은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그가 겪어온 정신적 상처, 사랑, 이별 등 정신적 괴로움에서 승화된 것이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스페인 태생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1949년생으로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다. 영화를 배우러마드리드로 상경했지만 마침 독재자 프랑코가 국립영화학교의 문을 닫아버려 전문교육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1980)로 데뷔했으며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 후 ‘그녀에게’ (2002)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사랑과 고통의 드라마로 강렬한 색채 속에 성과 욕망, 종교에 관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드러낸 영화들이다.

이번 영화 역시 배우들의 의상과 세트디자인 등이 스페인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기하학적인 패턴을 선보이며 시각적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살바도르의 집은 명화와 명품가구들로 채워져 알베르토가 "뮤지엄 같다"고 말할 정도. 스페인은 건축가 가우디, 피카소의 고향이며 대표적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와  명품 브랜드 '로에베'가 탄생한 곳이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감독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극중에서 살바도르가 자신이 쓴 희곡을 밝히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과 맥락이 닿는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우리에겐 할리우드 액션물 '데스페라도', '마스크 오브 조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등으로 기억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그러나 과거 '필라델피아'에서 톰 행크스의 동성애인을 맡았던 바로 그 배우.

지금도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근엔 넷플릭스 영화 '시크릿 세탁소'에도 출연,  새로운 시도에도 뛰어들었다. 반데라스는 이 작품으로 칸 남우주연상 뿐만 아니라 뉴욕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전미 비평가 협회로부터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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