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⑭ 영국 패션의 자존심, 버버리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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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⑭ 영국 패션의 자존심, 버버리 킹덤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2.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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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방수 소재 발명한 버버리, 트렌치 코트로 명성 쌓아
2000년대 이후 패셔너블한 이미지의 명품 브랜드로 변신
지방시를 살려낸 리카르도 티시, 버버리의 수장으로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표현된 테디 베어 모형 (사진=버버리 그룹 PLC 홈페이지)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표현된 테디 베어 모형 (사진=버버리 그룹 PLC 홈페이지)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트렌치코트(trench coat)와 체크무늬로 영국 패션을 대표해온 ‘버버리(Burberry)’.

오랜 전통을 지켜오는 동안 시대 변화와는 멀어지며 정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의 도움으로 조금씩 틀을 깨며 버버리는 럭셔리 라벨로 재인식될 수 있었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 명품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를 영입한 버버리는 새로운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단장하고 재도약의 준비를 마쳤다.

 

◆ 영국군을 지켜준 버버리 트렌치코트, 일상 속으로

직물점에서 일하던 21세의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1856년 영국 남부 햄프셔 주의 베이싱스토크에 자신의 상점을 열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 날씨 때문에 방수 기능이 있는 외투의 수요가 크다는 것을 알았던 그는, 표면에 왁스를 칠하거나 고무를 입힌 기존의 방수 직물은 뻣뻣하고 무거워 착용하기 불편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직접 소재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1879년 토마스 버버리는 ‘개버딘(gabardine)’을 만들어냈다.

미리 방수 처리된 면사로 짜인 후 직물 상태에서 다시 방수 가공을 거친 개버딘은 촘촘하게 물을 막는 것은 물론 가볍고 공기가 잘 통하도록 완성되어 의복의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소재.

1888년 개버딘으로 특허를 획득한 토마스 버버리는 등산복과 낚시복, 캠핑 텐트 등 아웃도어 제품들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면서 런던 헤이마켓에 새 매장을 오픈했고, 최고의 퀄리티를 찾는 세계적인 탐험가들의 선택까지 받으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01년 말 달리는 중세 기사를 브랜드 로고로 내세우며 성장에 박차를 가한 버버리는 1912년 트렌치코트의 전신 격인 ‘타이로켄(tielocken)’ 코트를 내놓았다.

타이로켄은 허리밴드로 앞자락을 여미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는데, 이후 제1차세계대전을 겪으며 트렌치코트는 현재의 모습과 가깝게 자리를 잡았다. 참호를 뜻하는 ‘트렌치(trench)’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게 된 것.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영국군의 신체를 더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해 단추가 두 줄로 더 달린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 스타일로 진화했고, 계급장을 끼우는 견장, 탄약을 거는 D링, 소총 발사 시 닿는 가슴부분에 덧댄 ‘건 플랩(gun flap)’과 비바람을 막아주는 뒤판 상단의 ‘스톰 쉴드(storm shield)’ 등 디테일들도 갖춰졌다.

1917년 토마스 버버리가 은퇴한 후에도 버버리 왕국은 굳건하게 유지되었고, 1920년대부터는 버버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체크무늬가 안감으로 등장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에게도 의복과 액세서리를 공급한 버버리는 전쟁 후 트렌치코트를 평상복으로 다듬어가는 한편 개버딘 외에 다양한 소재로 심플하면서도 품격 있는 제품들을 제안하며 영국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마스 버버리, 1910년대 광고, 버버리 체크, 로고, 트렌치코트 디테일 3컷, 1965년 광고, 1970년대 광고, 1993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버버리, 버버리 그룹 PLC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마스 버버리, 버버리 1910년대 광고, 버버리 체크, 로고, 트렌치코트 디테일 3컷, 1965년 광고, 1970년대 광고, 1993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버버리, 버버리 그룹 PLC 홈페이지)

◆ 크리스토퍼 베일리 영입하며 오래된 이미지 벗어나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며 버버리는 인지도를 높여갔지만 전통을 중시한 디자인은 젊은 층으로부터 차츰 외면당하게 되었고, 해외 라이선스 계약으로 흔해진 라벨은 브랜드 가치의 하락을 가져왔다.

위기감을 느낀 버버리는 1999년 브랜드네임을 ‘Burberry’s’ 에서 ‘Burberry’로 바꾼 데 이어 런던의 패션 중심가 본드 스트리트에 매장을 세우며 럭셔리 브랜드로 새 출발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2001년 그 과정을 함께 할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영입했다.

영국 요크셔 출신으로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CA)를 졸업한 후 ‘도나 카란(Donna Karan)’과 ‘구찌(Gucci)’에서 여성복 디자인 경력을 쌓은 베일리는 2002년 봄 컬렉션에서 캐주얼하면서도 시크하게 풀어낸 버버리 룩을 선보이며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패션계의 시선을 다시 끌어오는데 성공한 버버리는 2004년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도입하며 혁신 속도를 올렸는데,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차브(chav)족’의 습격이었다.

과한 장식과 가짜 명품으로 고급 패션을 조롱하는 차브족이 버버리의 체크 모자(대부분 모조품)를 즐겨 착용하면서 버버리는 본의 아니게 차브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버버리는 체크 무늬의 야구 모자 생산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2006년 새로운 CEO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맞아 안정을 되찾은 버버리 하우스는 베일리의 모던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계속 내놓으면서 트렌치코트를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버버리를 인기 브랜드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2009년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CCO(Chief Creative Officer)로 격상시키고, 런던 호스페리 하우스에 글로벌 본사를 꾸민 버버리는 런던 패션위크 25주년을 맞아 패션쇼 무대를 밀라노에서 런던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배출하고도 다른 패션도시, 파리와 밀라노, 뉴욕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았던 런던을 빛내주기 위해 버버리는 런던 패션위크의 얼굴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2010년 봄 시즌에는 패션쇼를 온라인 생중계로 발표하는 파격 행보를 보이며 디지털 리더의 자리도 굳힌 버버리.

2014년 아렌츠는 떠났지만, CEO까지 겸하게 된 베일리가 패션쇼 발표 직후 의상을 매장에서 만나도록 빠른 유통을 진행하는 등 버버리의 변혁을 멈추지 않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커버를 장식한 크리스토퍼 베일리, 버버리 2006년 광고, 2009년 광고, 2005년 광고, 2010년 광고, 2016년 광고 캠페인 2컷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저널 커버를 장식한 크리스토퍼 베일리, 버버리 2006년 광고, 2009년 광고, 2005년 광고, 2010년 광고, 2016년 광고 캠페인 2컷

◆ 영국의 양면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리카르도 티시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경영까지 맡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을까? 브랜드 실적이 주춤하자, 버버리는 2017년 새로운 CEO 마르코 고베티(Marco Gobbetti)의 영입을 결정했다. 베일리에게는 크리에이티브 총괄의 타이틀을 주려 했지만 결국 17년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별하기에 이르렀다.

CCO의 역할은 2018년 5월 ‘지방시(Givenchy)’ 출신의 리카르도 티시에게 주어졌다.

일찍이 티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카우트했었던 당시의 지방시 CEO가 바로 고베티. 지방시를 떠나 ‘셀린느(Celine)’를 거쳐 버버리의 CEO로 옮겨온 고베티가 티시의 이직을 제안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쓰려져 가던 지방시를 일으킨 바 있는 리카르도 티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딕 스타일의 꾸뛰르 드레스들을 펼쳐 보이면서도 스트리트 패션을 받아들이고 스포츠 브랜드와 콜라보 작업을 하는 등 과감한 시도로 트렌드를 리드하며 스타 디자이너로 등극했다.

그의 버버리 입성은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마돈나(Madonna) 등 티시의 디자인을 사랑하는 많은 셀럽 팬들을 버버리의 고객으로 확보하게 되었다는 뜻.

티시 버전의 버버리 컬렉션을 준비하며 먼저 전통 유산을 들여다본 그는 1908년에 등장했던 오리지널 드로잉을 모델로, 간결한 서체의 로고와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이니셜 T, B를 엮은 모노그램을 내놓으며 브랜드 리뉴얼에 착수했다.

그리고 버버리에서의 첫 패션쇼에서 티시는 부드러운 실루엣의 우아한 의상과 이와 상반되는 개성적인 스트리트 캐주얼을 대비시키며 복합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티시는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에서 태어났지만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에서 패션 공부를 하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동안,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반항적인 거리 패션이 공존하는 영국 특유의 매력을 알아보았고, 버버리 컬렉션을 통해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로 한 것.

티시의 이러한 시각은 ‘펑크(punk) 룩의 여왕’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와 협업을 추진한 데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2020년 봄 시즌의 버버리 컬렉션에서도 티시는 드레스처럼 바닥에 끌리도록 연출한 트렌치 코트와 이국적인 동물 프린트, 유틸리티 아이템을 함께 무대에 올리며 영국 패션의 조각들을 멋지게 연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카르도 티시 (사진=티시 인스타그램), 버버리 2019년 봄 시즌 광고 2컷, 2020 봄 시즌 광고, 2020 봄 컬렉션 4컷,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남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가 포즈를 취한 버버리X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 캠페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카르도 티시 (사진=티시 인스타그램), 버버리 2019년 봄 시즌 광고 2컷, 2020년 봄 시즌 광고, 2020년 봄 컬렉션 4컷,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남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가 포즈를 취한 버버리X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 캠페인

영국 왕실은 공식공급업체의 품질을 심사해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 증서를 수여한다.

1919년 조지 5세로부터 코트, 재킷 부문에서 처음 왕실 인증을 받은 버버리는 1955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방수 기능 소재에 대해 인증을 받았고, 1990년엔 찰스 왕세자가 의류 메이커로서의 품질을 보증해주었다.

영국 왕실의 인증 마크를 부착한 국가대표 브랜드 버버리는 퀄리티와 스타일을 동시에 어필하며 세계 패션계 침공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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