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봉준호 “영화 외에 다른 일 상상해 본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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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봉준호 “영화 외에 다른 일 상상해 본 적 없어”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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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이준익, 변영주, 류승완 등 17인 감독들의 이야기 ‘데뷔의 순간’
봉준호, 영화동아리 '노란문'에서 영화의 꿈 키워...군대후임 정윤철 감독 인연 계기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흥행실패...그를 믿어준 제작사 지원으로 '살인의 추억' 제작
봉준호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으라"
'마더'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사진=네이버영화
'마더'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내가 다닌 학교에는 연극영화과가 있었다. 학창시절 이미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도 여럿 있어서 교정을 오가다 그들을 마주칠 때가 많았다. 연극영화과라는 이름처럼 연기나 영화로 갈 길을 정한 지망생들이 많았다. 나중에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들어 스타가 된 모 감독도 학창시절에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교정을 누빈 지망생이었다. 그 당시 꿈을 꾸던 지망생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을 생각해보니 배우가 되는 것도 힘들지만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2019년에 한국 영화가 700편 가까이 개봉되었다. 수백 편의 영화 중 영화팬들이 개봉 소식을 들은 건 몇 편이고 또 몇 편이 관객의 선택을 받았을까.

영화감독이 되려면 여러 난관을 무사히 건너야 한다. 먼저 직접 쓴 시나리오를 인정받아야 하고 영화사나 투자사의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을 넘지 못한 감독 지망생 대부분은 지망생으로만 남아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더라도 관객 눈에 들어야 한다. 지난해 개봉한 700편 한국 영화 중 극히 일부만 제작비를 건졌다. 적자를 본 영화의 감독이 만약 신인이라면 그는 다음 영화를 기약할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도 어쩌면 영화라는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평생 지망생으로 남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의 순간’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회원들이 본인들의 신인 시절 이야기를 직접 쓰고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이 엮은 책이다.

 

'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자료제공, 주성철 엮음. 푸른숲 펴냄.
'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자료제공, 주성철 엮음. 푸른숲 펴냄.

이 책에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 지망생들의 청춘 이야기가 나온다. 박찬욱, 이준익, 변영주, 류승완 등 이름만으로도 영화팬들이 익히 아는 영화감독 17인이 직접 썼다. 물론 봉준호 감독도 자기의 젊은 시절을 고백한다.

봉준호 감독이 중학생 시절부터 영화의 꿈을 꿨다는 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봉준호는 그 시절을 자세히 소개한다. ‘스크린’과 ‘로드쇼’라는 영화잡지를 모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획 기사나 연재 기사를 곱씹어 읽는 ‘시네마 키드’였다.

영화를 분석적으로 감상하면서 “연출의 욕구도 키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연극영화과로 진학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고. 봉준호는 “일단 인문사회계열로 진학을 한 다음 영화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좀 더 고민해보자”고 마음먹는다.

봉준호는 대학 시절뿐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봐서도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영화동아리 ‘노란문’ 시절이었다고 고백한다. 영화도 많이 감상하고, 이론도 열심히 공부하고, 단편영화도 처음 만들어 보았다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1994년에 ‘백색인’이라는 단편영화가 첫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봉준호는 ‘노란문’ 시절에 ‘룩킹 포 파라다이스’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먼저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1994년 봉준호가 만든 첫 단편영화 ‘백색인’. 주연을 맡은 김뢰하에게 아버지 와이셔츠 상품권을 빼돌려 출연료로 지급했다고 한다. 사진= '백색인'스틸컷
1994년 봉준호가 만든 첫 단편영화 ‘백색인’. 주연을 맡은 김뢰하에게 아버지 와이셔츠 상품권을 빼돌려 출연료로 지급했다고 한다. 사진= '백색인'스틸컷

영화만 생각했던 ‘노란문’ 시절 청년 봉준호는 “촬영감독이 될까 아니면 애니메이션 연출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고민했다고. 어쩌면 지금의 봉준호 감독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글을 읽다 보니 영화 때문에 만난 사람들이 그에게는 인생 변곡점이 된 좋은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소중한 인연인 평생의 동반자를 영화 덕분에 만난다. 그는 ‘노란문’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한다. 상업영화로 데뷔하기도 전이라 경제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대학 동창에게 쌀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동아리가 해체된 후 군대에 간 봉준호는 중요한 인연을 또 만난다. 나중에 ‘말아톤’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후임으로 온 것이다. 봉준호는 영화과를 다니던 정윤철로부터 영화아카데미를 알게 되어 들어간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만든 영화아카데미는 비전공자인 봉준호가 영화 만들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 곳이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 ‘지리멸렬’ 덕분에 봉준호는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얻는다.

책에서 봉준호는 영화계 인연들과의 다양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중에서 지금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자리 잡지 못한 영화감독들과의 술자리 이야기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90년대 중반, 당시에는 영화사 대표였던 이준익 감독과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 박찬욱 감독과의 일화다.

그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오직 시나리오밖에 없다. 시나리오만이 우리의 힘이며, 오히려 제작자들을 우리 앞에 줄 서게 만들 것”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도 봉준호에게 “멋진 시나리오를 써서 무기로 삼으라”고 조언했다고. 이 술자리 덕분에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을까.

 

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4년 2개월 만에 만든 첫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했지만 후에 그의 첫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에서 두 번째 영화인 ‘살인의 추억’도 맡긴다. 그 이후 봉준호 감독은 크게 성장한다. 사진=네이버영화
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4년 2개월 만에 만든 첫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했지만 후에 그의 첫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에서 두 번째 영화인 ‘살인의 추억’도 맡긴다. 그 이후 봉준호 감독은 크게 성장한다. 사진=네이버영화

봉준호는 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4년 2개월 만에야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촬영에 들어간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한다. 그래도 그의 첫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에서 두 번째 영화인 ‘살인의 추억’도 맡긴다. 그 이후 봉준호 감독은 크게 성장한다.

지금이라면 신인 감독이 자기 시나리오로 데뷔하기도 어렵지만, 흥행에서 실패한 신인 감독에게 다음 작품을 맡기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제작사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지금의 봉준호를 만든 것은 “(영화 외에) 다른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뚝심 때문은 아닐까. 봉준호 감독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으라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하겠지만,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라는 수밖에 없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205쪽)

 

이 책에는 봉준호 감독뿐 아니라 지금은 유명하게 된 영화감독들의 지질했던(?) 젊은 시절이 담겨있다. 일자리가 없어서 선배 감독의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를 한 ‘박찬욱 감독’, 쫄쫄 굶다가 돈을 빌려서 스태프들에게 고기를 먹였는데 탈이 나서 모두 설사를 했다는 ‘변영주 감독’.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17인 감독들의 불안정했던 지망생 시절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엮은 주성철 씨네21 편집장은 치열하게 산 영화감독들의 젊은 시절에서 “뭔가 꿈을 잃어버린 것 같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난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부터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까지 모든 영화를 봤다. 난 그가 영화에 담은 따끔한 비판과 따뜻한 시선이 너무 좋다. 그의 실패와 성공을, 도전과 성장을 지켜보는 팬으로서 난 가슴 뿌듯함을 느낀 한 주간이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아니었다. 영화 외에 다른 것은 상상하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천상 ‘시네마 키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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