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원자재]② 구리값이 말하는 어두운 경제전망
상태바
[불안한 원자재]② 구리값이 말하는 어두운 경제전망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2.11 1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리, 1월 고점대비 12% 하락..중국 수입업체 '불가항력 선언'
LNG, 중국 향하던 4척 방향 틀어...'엎친 데 덮친 격'
안전자산 금 선호도는 여전
경제의 선도지표로 여겨지는 구리 가격이 1월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의 선도지표로 여겨지는 구리 가격이 1월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닥터 코퍼(Doctor Copper)'가 말한다. 세계 경제가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 전망이 더욱 암울해졌다고 유독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말은 틀린 적이 별로 없어서 신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무시하기가 어렵다. 

'닥터 코퍼'는 바로 구리의 별칭이다. 구리는 가정에서도, 산업에서도 두루두루 쓰인다.

작은 전자제품부터 발전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는 범위도 넓다. 구리의 수요가 많으면, 즉 구리 가격이 오르면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구리의 수요가 떨어지면, 즉 구리 가격이 하락하면 경기 침체로 간주된다. 구리는 세계 경제를 예측하는 바로미터이고, 그것이 꽤 잘 맞아 떨어져서 그 이름에 박사학위를 뜻하는 '닥터'를 붙여서 부른다.

그런데 최근 구리 가격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닥터 코퍼가 세계의 경제를 우려하고 있는 것일까.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 추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 추이.

구리, 수요 절반 차지하는 중국의 침체로 가격 뚝

최근 구리가격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월 중순의 고점 대비 12% 하락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구리 가격도 속절없이 떨어진 것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은 10일(현지시각) 기준 톤당 5668달러 수준이다. 

구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재 소비국이자, 전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다. 예상치 못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중국의 공장들이 가동을 멈췄고, 중국 정부는 주요 도시를 폐쇄하기 시작했으며, 북적거리던 거리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도시가 멈춰버리자 중국의 구리 수입업체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광시난궈 등 중국의 구리 업체들은 불가항력을 선포하며 칠레 광산업체들에게 선적 연기를 요구했다.

'불가항력 선포'란 업체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계약 상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다.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는 1월말부터 중국 업체들에게 불가항력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수입업체가 불가항력을 선언하면 수출기업과 협상에 나서게 되고,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재판 등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된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브로커 제너그룹의 피터 토마스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구매력 상실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그 영향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2003년 중국의 사스 발병 당시 구리가격 회복이 빠르게 이뤄졌다는 점을 근거로, 이번 역시 구리가격이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스 발병 당시와 현재 중국의 영향력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비교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다. 

원자재 컨설턴트 업체 우드 맥킨지는 "2003년 중국의 구리 소비량은 전세계의 19%에 불과했으나 오늘날 중국은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사스 당시에는 광둥성과 베이징에 혼란이 집중됐지만,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대부분의 경제 중심지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구리 가격이 당분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한 구리 가격의 추세 전환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RBAX의 하칸 카야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심화될 경우 구리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면서 "비록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경제적 타격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많은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줄이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의 주가 흐름표.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의 주가 흐름표.

중국 향하던 LNG선 방향 틀어

중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업체들은 구리 수입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최대의 LNG 수입업체인 중국해양석유(CNOOC)는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프랑스의 토탈(Total)을 비롯해 로열더치쉘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에게 화물을 인도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했다. 이번 불가항력에 따른 수입 취소 통보는 전염병으로 인해 상품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CNOOC의 불가항력 선포 이전에도 로열더치쉘과 토탈 등 에너지 업체들은 LNG 가격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짐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다. 아시아 지역 LNG 가격은 100만BTU당 2.95달러로 사상 최저치다. 

블룸버그통신과 데이터 정보업체인 케이플러는 분석 자료를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중국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중국으로 향하던 최소 4척의 LNG선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거나, 해외를 떠돌고 있다"고 언급했다. 

싱가포르은행 DBS의 타이무르 베이그 이코노미스트는 "사스 당시 중국의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졌을 때 시장은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0.5%포인트 하락한다 하더라도 지진과 같이 반응할 것"이라며 "세계화 시대에서 구리와 에너지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어 그 영향력은 더 크다"고 언급했다. 

SPDR 골드 셰어즈 ETF 흐름.
SPDR 골드 셰어즈 ETF 흐름.

안전자산 금, 당분간 선호 현상 이어질 듯

10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6.10달러(0.4%) 오른 1579.50달러를 기록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 가격은 올들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SPDR 골드 셰어즈와 아이셰어즈 골드 트러스트 ETF 등 금 가격을 추종하는 ETF도 꾸준히 오르며,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세계 금 ETF에 30억9740만달러의 자금이 순유입했다. 이로 인해 펀드가 보유하는 실물 금 보유량은 전월대비 61.7톤 늘어 사상 최대 수준인 2947.6톤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 선호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원자재 이코노미스트인 캐롤라인 베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가 당분간 금 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한 금 가격은 계속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도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 중앙은행의 흐름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로나 오코넬 인터네셔널 FC스톤 시장분석가는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현재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이미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태국중앙은행(BOT)은 이미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0%로 인하했고, 필리핀 중앙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3.75%로 낮췄다.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아이슬란드와 바레인, 브라질 등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는 "저금리 환경과 유동성 투입은 금 시장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