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몸의 질병은 물론 사회의 질병과도 싸운 의사 '노먼 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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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몸의 질병은 물론 사회의 질병과도 싸운 의사 '노먼 베쑨'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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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감동시킨 휴머니스트 의사 노먼 베쑨의 일대기 '닥터 노먼 베쑨'
흉부외과 의사이자 스페인 반파쇼 투쟁, 중국 항일투쟁 최전선에서 싸운 혁명가이기도
결핵 치료법 개발, 전시 의료체계 확립 등 공중보건제도 확립에도 앞장서
1938년 네룽전 장군(가운데)과 대화하는 노먼 베쑨(왼쪽) . 베쑨은 중국의 항일투쟁 최전선에서 종군의사로서 평생을 바친 혁명가기도 했다. 사진=네이버백과
1938년 네룽전 장군(가운데)과 대화하는 노먼 베쑨(왼쪽) . 베쑨은 중국의 항일투쟁 최전선에서 종군의사로서 평생을 바친 혁명가기도 했다. 사진=네이버백과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지난 설 명절 즈음 감기에 걸렸다. 그때 시작한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심하진 않지만 마른기침이 계속 난다. 때가 때이니만큼 사람 있는 곳에서 기침하면 눈치가 보인다. 길에는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사람 많은 곳에 가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마저 두려워진다. 전염병은 사람들에게 큰 공포를 심어주었다.

작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ㆍ균ㆍ쇠’에서 “대중적 전염병들은 대체로 대규모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 동물들에 국한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중적 동물에는 가축은 물론 인간도 포함된다. 그는 “소나 돼지 같은 사회적 동물을 가축화시켰을 때 이 동물들은 이미 그러한 유행병에 걸려있었으므로 그 세균이 우리에게로 옮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되고 사람들의 필요 때문에 동물들을 모아서 키우게 되었을 때부터 동물이 가진 균이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홍역, 결핵, 천연두,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등 모두가 동물과 매개한 전염병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중국 의사도 감염되어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전염병이 돌면 환자와 가족들도 고생이지만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에게 닥치는 위험도 매우 크다. 사회와 격리되어서 투병과 치료를 하는 과정도 마치 전쟁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병들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덕분에 의술 또한 발전했다.

뉴스에서 접하는 의료진들의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보면서 어떤 헌신적인 의사가 떠올랐다. 그는 안락한 의사로서의 삶을 버리고 머나먼 타국의 전장에서 종군의사로 살다 떠났다. 오래전 감명 깊게 읽었던 ‘닥터 노먼 베쑨’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닥터 노먼 베쑨'. 실천문학사 펴냄.
'닥터 노먼 베쑨'. 실천문학사 펴냄.

노먼 베쑨(1890-1939)은 캐나다에서 태어난 의사이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을 무기로 질병과 싸우고 때로는 제국주의와도 싸웠다. 뛰어난 흉부외과 의사였던 그는 의술을 단지 사람들의 질병만을 돌보는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노먼 베쑨은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을 통합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것까지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이런 노먼 베쑨의 삶은 세 나라에서 펼쳐진다.

첫 시기는 캐나다에서 외과 의사로서의 삶이다. 성공적인 의사 생활을 하던 노먼 베쑨은 36세인 1926년에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결핵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결핵 수술방법인 ‘인공기흉술’을 자신에게 시술하여 기적적으로 회복한다. 결핵의 외과적 처치에 큰 업적을 남긴 그는 보건의료운동에도 뛰어든다.

노먼 베쑨의 두 번째 삶은 46세에 스페인에서 시작된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군부 파시스트 프랑코가 민주적으로 집권한 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등에 업고 쿠테타를 일으켰다. 그는 내전의 희생양인 시민과 군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공화군 의료진에 합류한다.

노먼 베쑨은 스페인에서 '이동식 혈액은행'을 만들어서 전시 의료분야를 개척하고 수많은 중상자를 살려낸다. 그는 2년간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하며 열악하기만 했던 전시 의료체계를 현대적으로 바꾼다.

 

왼쪽은 1933년 몬트리올 빅토리아 병원에서 수술 중인 베쑨, 오른쪽은 스페인 내전 당시 직접 만든 이동수혈대 앞에서 포즈를 취한 베쑨.  사진=네이버 백과
왼쪽은 1933년 몬트리올 빅토리아 병원에서 수술 중인 베쑨, 오른쪽은 스페인 내전 당시 직접 만든 이동수혈대 앞에서 포즈를 취한 베쑨. 사진=네이버 백과

1938년 노먼 베쑨은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중국으로 건너가 의료봉사대에 자원한다. 그는 의사로뿐 아니라 인간적 면모로 중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1939년에 수술 중에 생긴 상처가 패혈증으로 악화하여 사망한다. 군인들은 물론 인민들도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다음은 전우이기도 했던 ‘모택동’의 애도사이다.

 

“일반 민중들에 대한 닥터 베쑨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입니다. (중략) 우리들 모두는 그의 무사(無私) 정신을 다투어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략) 그러한 무사(無私) 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모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중요한 인간, 완전한 인간, 덕 있는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608쪽)

 

노먼 베쑨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적으로 중국인에게 다가갔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체 게바라’와 ‘살바도르 아옌데’처럼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의학 분야 또는 의사 출신이 여러 명 있다. 노먼 베쑨은 그들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미친 영향은 그 누구보다 높다.

그는 결핵의 수술적 치료법 개발과 전시 의료체계 확립으로 의학발전에 이바지한 의사이자 공중보건제도 확립에 앞장섰던 보건의료 운동가였다. 또한, 스페인의 반파쇼 투쟁과 중국의 항일투쟁 최전선에서 종군의사로서 평생을 바친 혁명가이기도 했다.

 

필자가 오래전 중2병을 앓던 아들에게 읽어보라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필자가 오래전 중2병을 앓던 아들에게 읽어보라 권했던 책이기도 하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닥터 노먼 베쑨’은 그런 그의 삶을 담담하게 쫓아간다. 노먼 베쑨이 생전에 남긴 회고담, 일기, 편지 등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책 전체에서 노먼 베쑨은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이 함께 고쳐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술을 펼칠 수 있다”고 외친다.

이 책이 감명 깊었는지 오래전 중2병을 앓던 아들에게 읽어보라 권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메모를 보니 당시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아들은 이 책을 읽고 마음을 추스르고 꿈을 다시 세웠다고 했다. 아들은 메르스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유행병 전선 한구석을 묵묵히 담당하고 있다.

모든 환자의 빠른 회복을 바라며 유행병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 세계 모든 의료진에게 존경 어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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