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불신 초래하는 정치의 기업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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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불신 초래하는 정치의 기업화 현상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2.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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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국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 기업에 대한 소비자와 대중의 불신도 심각하지만 정치인을 향한 혐오는 그 차원이 다르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불신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제 한 얘기를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빨리 뒤집고 자신들의 소명의식이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소속 집단의 이해타산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진 이유는 2000년대 이후 국내 정치의 모습이 점점 기업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대로 기업의 모습을 따라 했다면 성과라도 도출되었을 텐데 겉모습만 모방하다 보니 실속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국내 정치가 기업을 모방하는 모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인재 영입과 정당의 이합집산화를 들 수 있다.

스토리에만 집착하는 끝도 없는 인재 영입 쇼

1996년 15대 총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정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무분별한 인재 영입을 통해 선거 승리를 노려왔다. 기업이 실적 부진에 빠질 때 내부 구성원을 육성하지 않고 업계 또는 업계 밖에서 실력 있는 인재를 영입, 실적을 만회하려는 모습과 동일하다. 이로 인해 정당은 기업이 되었고 인재영입위원장은 인사팀장이 되어 백방으로 인재를 수소문한다.

그런데 기업의 인재 영입과 정당의 인재 영입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기업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 위주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애를 쓰는 반면, 정당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가슴 아픈 스토리 또는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인물 영입에 여념이 없다. 수박겉핥기 모방이니 정당의 인재 영입 성과가 좋을 리 없다. 

▲실패를 극복한 자수성가 벤처사업가 ▲체육계 미투 고발 여성 ▲산업재해 공익신고자 ▲사법농단 공익신고자 ▲시각장애 어머니를 모신 청년 등 스토리텔링에 집중된 인재 확보에 각 정당이 집중하는 모습은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다.

스토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스토리 이외 이들이 어떤 흔적과 생각, 성과를 사회에 남겼는지 그 부분을 집중 조명했어야 한다. 

국내 정당이 매년 주기적으로 인재를 영입한 후 이들을 육성하지 않고 총선이나 대선 등 단기간의 승부를 두고 인재를 영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눈 앞에 다가온 선거에서 당장 성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와 이념을 토대로 영속성을 추구해야 할 정당이 매년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업이 해오던 인재 영입 방식을 모방하는 건 이런 면에서 아쉽다.

물론, 정당과 기업 모두 조직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속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비해 정당은 국민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조직이다. 즉, 인재 영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스토리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이념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 인재의 생각을 살펴봐야 한다. 

과거 그리고 이번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인재 중 상당수는 양대 정당에서 모두 좋은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각 정당이 애초에 자신들과 같은 이념이나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정당이 이렇게 인지도 높고 국민적 화제를 얻고 있는 인재만 확보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정당은 언제든지 이합집산되어 해체, 재창당, 통합 등을 거치기 때문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외부 인재영입 경쟁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후죽순 헤쳐 모여! 정당 간 인수합병

총선을 앞두고 정당 차원의 가장 큰 변수는 보수혁신 통합 여부와 미국에서 귀국한 안철수 전 의원이 안철수신당을 창당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은 수백 개가 등장했다가 지리멸렬하고 사라졌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때 참신한 키워드가 없어 고민일 정도로 모든 정당은 민주, 정의, 평화, 개혁, 통일, 자유, 국민, 미래 등의 키워드를 숱하게 활용해왔다. 

한국의 정당이 기업의 인수합병을 모방하는 이유 또한 선거에서 참신한 슬로건을 달고 옷을 바꿔 입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가벼운 인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헌정사에서 가장 오랜 이름을 유지한 국내 정당은 2012년에 막을 내린 한나라당인데 당명 유지 기간도 고작 15년에 그친다. 진보와 보수를 지향하는 미국 및 유럽의 정당들이 지켜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조직은 반드시 모든 구성원이 특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심가치를 토대로 모여야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 중심으로 모이면 언제든지 해당 조직은 그 사람의 이익을 충족하기 위해 헤쳐 모이며 '묻지 마' 이합집산을 벌인다. 핵심가치와 비전을 토대로 모이지 않은 국내 정당은 사람 중심으로 모였기에 선거 때마다 기업처럼 인수합병 과정을 거듭한다.

정치의 기업화 현상이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과를 내기 위해 인재를 영입해야 하고 때로는 헤쳐 모여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정당과 기업의 존재 및 지향해야 할 목적은 다르다. 가치와 이념을 강조해야 할 정당이 자신들과 사상이 다른 인재를 영입하고 선거 때만 유독 인수합병처럼 무분별 이합집산을 하는 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정치가의 역량(Statesmanship)과 기업가의 역량(Entrepreneurship)은 엄연히 본질도, 그리고 추구하는 행위와 성공 요인도 다르다. 무분별한 정치의 기업화는 국민 불신을 가속화하는 지름길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모두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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