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 준법감시, 삼성이라서 시작부터 더 힘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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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준법감시, 삼성이라서 시작부터 더 힘든 길
  • 변동진 기자
  • 승인 2020.02.0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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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시민단체, 삼성 준법감시위 의지에 '불신'
파기환송심 재판부, 준법감시위 활동 양형 반영에 '찬반'
"재판 진행중인데, 정치권 반대목소리...삼권분립 위반 아니냐"
재계 "일단 활동결과물부터 보자...효과 있으면 확대해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이 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이 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변동진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5일 첫 회의를 열고 공식 행보를 시작했으나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자율적 준법감시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사법부의 의도를 불신한 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양형 감면을 위한 '꼼수'라는 시각을 접지 않고 있다. 

전날(5일) 6시간 넘게 마라톤 회의를 진행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첫번째 회의도 이같은 시선을 의식, 무겁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삼성 주요계열사의 컴플라이언스팀장들도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삼성 주요7개 계열사(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삼성생명·삼성화재)의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를 사전에 검토하고, 준법 의무 위반 리스크 여부를 판단해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필요한 경우 조사와 시정 조치도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앞으로 다룰 대상을 정하는 데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첫발 떼기도 쉽지 않은 '한국版' 자율적 준법감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꼼수'라는 시선을 감추지 않은 것은 우선 준법감시위의 의지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보인다. 

한 예로 ‘삼성전자 노조탄압’ 의혹에 준법감시위가 침묵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삼성전자 전 사원에게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보냈는데, 회사 측은 지난달 6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삭제한 일이 있었다.

지난달 9일 위원회 구성 및 운영방안을 발표했던 준법감시위는 당시 “감시 분야에 성역은 없다. 노동과 경영권 승계 문제 등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안에 확실한 의견을 내지 않았던 것. 어제 첫 회의에서도 ‘삼성전자 노조탄압’ 의혹에 대해 논의했으나, 이후 배포한 자료에는 논의내용을 넣지 않았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운동본부 팀장은 “정말로 개선 의지가 있다면 삼성의 지배구조의 틀 변화, 기존 이사회나 감사위원회의 역할 재고 등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범여당에서 견제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16명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 형량을 고려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회견문에는 민주당 이종걸·정성호·이학영·송갑석·정은혜·제윤경 의원과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정의당 심상정·김종대·여영국·윤소하·이정미·추혜선 의원,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재계 "일단 준법감시위원회 활동부터 보자"

기업의 '자율적 준법감시' 활동에 대한 양형 반영은 지난 1970년대부터 미국 연방법원이 실행해 실효를 얻고 있는 방법이다. 미국은 상법으로 회사법 내용을 정리하고, 개별법으로는 증권거래법 등에서 형사처벌보다는 손해배상 위주로 법위반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대신 '자율 준법감시' 규정을 마련, 이를 준수하는 기업에 대해 미 연방법원은 감형 등 양향 참작을 하고 있다.

2020년이 된 시점에서 한국은 기업에 대한 '자율적 준법감시'의 도입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불신의 시선은 사법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똑같은 각도로 쳐다보고 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이후에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활동에서 나온 결과가 감형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사법부가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과도한 비판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범여권’의 정치인들이 입모아 압박하는 것으로, 사법부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부의 고유권한(유무죄 및 양형 판단)을 침범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에 보장된 재판 독립 원칙과 법치주의를 위배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권이 판결에 대해 탄원이나 논평을 내도 대부분 결과가 나온 뒤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나서서 재판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 품위를 훼손한 행위”이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박 의원을 포함 일부 의원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나 정무위원회가 아닌 교육위원회 소속이다. 총선을 앞두고 이 부회장 재판을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생각 아니냐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준법감시위원들은 그간 삼성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 활동의 결과물이 나올때까지 지켜보자는 시각도 상당하다. 재계 관계자는 "언제까지 처벌을 능사로 한 재벌 개혁을 주장할 것이냐"며 "삼성이 도입하는 '자율적' 준법감시제도의 운영을 지켜보고, 다른 기업들도 따라간다면 실효적 효과는 훨씬 큰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만약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기 않는다면 정말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이라며 “세계 초일류라던 기업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많은 국민과 주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만큼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환골탈태해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삼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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