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한센병과 방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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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한센병과 방역의 역사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2.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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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역사적으로 오래된 전염병에 대한 기록으로 나병이 있다. 성서 출애급기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에게도 발병했던 나병은 레위기 제13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나병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돋으면 제사장으로 하여금 관찰하게 하고, 환부의 털이 희게 되거나 피부의 환부가 우묵해지면 이를 나병으로 판정하게 된다.

만약 판정이 어려우면 7일간 가두고 관찰해 의심되는 병변이 없어지면 풀려나게 된다. 만약 병변이 지속돼 판정이 어려우면 계속 가둬서 7일 간격으로 판정한다. 그러다가 나병으로 판정되면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혼자 살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진영 밖)에서 살아야 했다.

나병은 결핵과 같은 분류에 속하는 세균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서, Mycobacterium Leprae가 원인균이다. 감염자의 기침나 체액으로 전염되는데 처음 감염되었을 때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5~20년 가량 잠복기를 거친 다음에 피부가 도드라지는 반점이 생기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병변이 커지면 피부에 육아종이 발생하고 감각이 없어진 손가락, 발가락이 손상된다. 얼굴 변형이 오면서 시력도 잃게 된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예수의 모습. 코시모 로셀리作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
그림 오른쪽 아래에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예수의 모습. 코시모 로셀리作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

혐오와 사회적 낙인의 문제

대학생때 읽었던 한하운의 시가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는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한하운 시초 1949년, 「전라도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
 
시를 읽을때 나병을 앓고 있던 시인이 발가락을 잃어 가면서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 가야만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한 시인의 감성인가?

하지만 실은 나의 이해 부족이었다. 해방 이후 갈 곳 없는 나병 환자 한하운은 소록도에 살기 위해서 길을 떠난 것인데, 이렇게 표현한다.

‘소록도도 역시 나환자의 낙원이 못 되고 지옥의 하나임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 이 인간 동물원에 갇혀 신음하는 이곳을 찾아가야만 하는 마지막 길을 찾아가는 암담한 심정은 사형수가 사형장을 가는 그 심정과 같을 것이다. 천리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일이라 기차를 탄다. 찻간의 사람들의 눈초리와 주둥이는 나를 향하여 쏟아진다. 차장(車掌)은 으레껏 발길로 차며 끄집어 내린다.’

그렇다. 그는 차를 탈 자격조차 인정 받지 못한 것이었다.

체액으로 전염되는 난치병은 두려움 때문에 환자들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극심하게 나타난다. 나병은 질병이 아닌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있다. 성서에 모세를 거역한 누이 미리암이 병에 걸리거나, 나병에 걸린 자를 '부정하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신종 코로나 감염을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에 대해 과거에는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왜 지명을 사용한 질병명은 안된다고 비판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문제되었던 급성 전염병 명칭을 보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법률(감염병 관리법)에서 제1급 감염병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신종 인플루엔자가 명시되어 있고, 제3급 감염병에는 ‘일본뇌염’이 명시돼 있다. 지역명으로 중동, 일본은 남아있고, 홍콩, 스페인은 사라졌다.

2000년 법률에서 나병의 명칭은 '나병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이라고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명칭이 사회적 인식과 매우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명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 그 이름을 차별적 또는 혐오의 대상으로 사용하면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검역을 할때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에서 쥐가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항구의 볼라드에 거는 선박 로프에 쥐막기(rat guard)를 설치한 모습
검역을 할때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에서 쥐가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항구의 볼라드에 거는 선박 로프에 쥐막기(rat guard)를 설치한 모습

강제 격리의 문제

감염은 환자와 접촉을 차단하는 것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단이 얼마나 실현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방역 당국과 환자간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세 14세기경 흑사병이 유행하였을 때 ‘검역’을 의미하는 ‘quarantin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대략적으로 40일간의 격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흑사병이 발병하지 않은 육지 항구에 배가 정박하려면, 그 배는 항구 밖 해상에서 40일간 체류한 상태에서 관찰을 하게 된다. 검역 기간 동안 배 안에서 흑사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항구에 접안이 허용되는데, 그동안 항구에서 음식물을 정박한 배로 보내준다. 아니러니하게도 항구에서 흑사병 환자가 발생해 배가 접항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일도 발생하게 된다.

나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굴의 병변이나 손가락 발가락 변형으로 환자 인식이 쉽게 되기 때문에, 여행을 하더라도 도시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됐다.

감염병 관리법에 의하면 현재도 강제 격리를 위한 규정은 보건복지부 장관, 지자체 장이 관할 지역 ▲교통의 전부 또는 일부 제한 ▲사람의 집합 금지 ▲건강진단 또는 해부 실시 ▲음식물의 판매 등 금지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갖는다. 검역법에서도 마찬가지 조치를 할 권한을 검역관에게 주고 있다. 이때 제한되는 기본권은 신체의 자유 제한이 아니라, 거주 이전의 자유 제한이다.

얼마나 강제 격리할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격리 기간은 ‘잠복기’라는 개념에 의해 정리할 수 있다. 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환자인지 아닌지를 판정한 다음에 환자로 판정되면 전염력이 있는 동안에는 강제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환자인지 아닌지 판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 질병의 잠복기동안 격리해 관찰하면 된다. 문제는 환자와 접촉한 수많은 사람들을 다 격리하고, 잠복기동안 관찰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리 대상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전염병 초기 단계 조치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만성 활동성 결핵’과 같은 질병의 경우 급성기 전염병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대부분 결핵은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 전염성을 잃게 되지만, 이미 폐 실질이 파괴되어 결핵균 병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약물 요법을 해도 기침을 하면 계속적으로 결핵균이 나오는 만성 환자들이 있다. 해결 방안으로는 병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거나, 기약 없는 강제 격리이다.

과연 얼마나 격리해야 할까. 급성기 전염병과 달리 음압 병실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와 결합된 생활형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의학의 발전으로 전염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전염병으로 인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금이라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마음 속에 언제나 혐오와 인종적 차별을 하려는 준비가 되어 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중국인을 혐오하고 이를 정당하다고 느낀다면 유럽인은 모든 동양인을 혐오하면서 정당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혐오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도 있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센병 환자는 ‘전염병 예방법’ 때문에 격리·수용됐고, 심지어는 후대로의 전염을 막는다는 미명아래 강제로 단종(斷種 sterilization) 수술까지 받았다.

비행기를 이용한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 조치의 범위는 논의를 하겠지만 삶은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이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전염병과 방역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일 것이다.

추신 : 전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2010년 개정하면서 ‘감염병’으로 명칭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생충 질환 예방법」과 「전염병 예방법」을 통합하여 법 제명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전염병이라는 용어를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지 않는 질환을 포괄할 수 있는 감염병이라는 용어로 정비하며"라고 했다. 법률에서 ‘전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졌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는 부당한 것으로, 우리 말이 전염(infection)과 감염증(상, infection symptom)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이라고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후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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