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① 상업화의 시작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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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① 상업화의 시작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승인 2020.01.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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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전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기준 2조3000억 달러(2700조원)라는 통계가 나왔다. 콘텐츠산업은 우리 생활의 일부이자 없으면 안 되는 필수재가 되고 있다.

최초의 영화에서부터 최첨단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까지 1895년부터 2020년까지 약 125년의 시간 동안 역사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한 콘텐츠 산업의 역사와 그 속의 이야기를 통해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미리 그려볼까 한다. 

최초로 현대적인 의미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1890년대에 영화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이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가 등장한 1890년대 유럽은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며,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것 같은 제국주의의 광기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는 산업 자본주의의 확대 속에 노동 계급이 성장했고, 대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며 현대적 의미의 ‘대중(crowd)’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에 살던 대중들은 늘 심심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노동에 매달리는 시간이 줄면서 여가시간이 생겼고, 노동 운동을 통해 쟁취한 임금으로 적긴 하지만 여유 자금도 누리게 됐지만, 대중은 이를 어떻게 써야할 지 몰랐다. 아니 역사상 처음으로 ‘여가’라는 시간을 가지게 된 대중들이 귀족들이나 자본가들처럼 ‘우아한 문화생활’이라는 걸 좀 해보려고 해도, 당시의 문화들은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그 당시의 문화들이라는 것은 대부분 귀족이나 특권 계층, 자본가들을 위한 것들이었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라고는 순회 서커스나 연극 정도였다. 그것도 가격이 만만치가 않아 자주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1895년 제작된  리옹의 뤼미에르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Sortie de l'usine Lumière de Lyon)의 한 장면. 사진출처=IMdb.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프랑스에서 1895년 제작된 '리옹의 뤼미에르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의 한 장면. 사진출처=IMdb.

그러던 중  1895년 프랑스 파리 그랑 카페에서 ‘시네마토그라프(Cinématographe)’라는 갓 발명된 초기 영사기기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짧은 영상들을 보여주는 비즈니스가 등장한다. 뤼미에르 형제가 시작한 이 비즈니스는 ‘깜깜한 방에 들어가니 어디선가 빛이 나오고 벽에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그림이 살아 움직인대, 근데 말이야 이런 신기한 게 고작 1프랑밖에 안한대’라는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심을 모으게 됐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 이다. 이 영상은 현대적 의미의 영화라기보다 상영시간이 1~2분에 불과한 짧은 클립에 가깝다. 스토리가 전혀 없는 제목 그대로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첫 상영회에서는 이 영상과 함께 10편의 짧은 영상들이 함께 공개됐다. 첫 상영회를 열었던 1895년 12월 28일은 현대 영화산업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 비즈니스가 시작된 날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지금 존재하는 모든 콘텐츠 산업이 시작된 날인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는 아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콘텐츠 비즈니스라 할 수 있는 뤼미에르 형제가 시작한 이 시네마토그라프 사업은 당대의 대중들에게 ‘가성비 좋은 신기한 볼거리’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영화(Movie)라는 이름보다 영화의 과학적 원리에서 이름을 따온 ’플리커(flicker·깜빡임이라는 의미)였다. 영화라는 건 따지고 보면 수많은 정지영상들이 잔상효과를 통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이런 착시현상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됐다.

뤼미에르 형제는 첫 상영회에서는 고작 35명의 유료 관객을 유치했지만, 곧 한주에 7000장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흥행’을 기록한다.

이 영화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첫 상영회를 하기 30년 전에 이미 환등기 슬라이드를 이용한 원시적인 영화 콘텐츠들이 이미 존재했다. 낱장의 그림들을 하나씩 하나씩 영사하며 여기에 자막이나 해설, 반주 음악 등을 덧붙여 스토리텔링을 하던 비즈니스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네마토그라프가 나오기 4년전인 1888년에 이미 미국에서는 축음기를 발명했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눈으로 보는 축음기’라는 컨셉으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라는 장치를 발명했다.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상장치는 영사기가 아니라 작은 박스처럼 생긴 작은 구멍을 통해 사진들을 빠르게 보여주며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잔상효과를 주는 장치였다. 1894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키네토스코프 가게가 오픈했는데, 사람들은 25센트를 내고 구멍에 눈을 대고 필름 5개를 볼 수 있었다.

키네토스코프의 초기 콘텐츠는 권투시합 장면 같은 일반적인 영상에서부터 당시 유명한 무희(舞姬)가 추는 일종의 스트립쇼도 있었다고 한다. 타이틀은 Serpentine Dance 번역하자면 '음흉한 댄스'다. 물론 현대적인 의미의 섹시한 그것은 아니다. 이 ’관능적인(?)’ 콘텐츠를 두고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사이에 난리가 났다. 제임스 브래들리라는 당시의 상원의원이 무희의 발목 노출을 두고 극렬한 반대를 표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이를 최초의 영화 검열로 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이 키네토스코프를 현대 영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다‘라고 주장하지만, 키네토스코프는 스크린에 영상을 투영하는 영사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환등기 슬라이드처럼 현대 영화의 원시적인 형태에 불과하다.그래서 최근에는 미국도 프랑스가 영화 종주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기록에 따르면 첫 상영회에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초기 영사 시스템의 하나인 시네마토그라프를 발명한 사람은 프랑스의 발명가인 레옹 불리. 그는 1892년 처음 시네마토그라프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지만, 특허를 유지하기 위한 수수료를 낼 돈이 없자, 장치에 대한 권리를 뤼미에르 형제에게 팔았다.

뤼미에르 형제가 그렇게 산 권리로 콘텐츠 비즈니스의 창세기를 연 ‘영광’을 차지했다는 건 어떻게 보면 기술과 사업(흥행)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속성을 웅변한다.(콘텐츠 업계에 떠돌아 다니는 말 중에 기술에 의존은 하지만, 기술에 종속되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성이 산업의 시작부터 존재했다는 진실은 많은 엔지니어들을 불편하게 한다.

물론 다른 기록에는 이 영사장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뤼미에르 형제중 동생인 루이가 내고 특허를 공유했다는 ‘썰’도 있지만 중요한 건 뤼미에르 형제가 현대 영화의 상영, 제작, 마케팅, 배급 시스템의 근간을 만들었고 현대적인 콘텐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뤼미에르 형제, 대중을 위한 문화를 시작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뤼미에르 형제는 이러한 대흥행을 거두고도 시네마토그라프의 상업적 가치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이 기계는 사람들에게 신기한 과학 발명품으로는 얼마간은 인기를 끌 수 있겠지만, 상업적 미래같은 건 그닥….”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실제 최초의 관객들 중 한 사람이었던 당시 유명한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에게 시네마토그라프의 특허를 팔라고 했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위와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조르주 멜리에스는 자체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들어 최초의 SF영화인 <달세계 여행>이라는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건 몇 년 뒤의 이야기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상영회는 현대 콘텐츠 비즈니스가 시작됐던 스타팅 포인트의 의미도 있지만, 영화라는 콘텐츠 분야의 상업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공적을 남겼다. 만일 뤼미에르 형제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아마도 영화의 탄생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뤼미에르 형제의 흥행을 눈으로 목격한 많은 후발주자들이 ‘어 이거 좀 돈되겠네’ 하면서 영화 비즈니스에 뛰어들었고, 급격한 인력과 자본의 투여가 이루어지면서 영화는 짧은 시간에 큰 발전을 이루게 됐다. 

125년이 지난 지금 영화 산업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 ‘가성비 좋은 볼거리’로 사랑받고 있는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콘텐츠 비즈니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어느 날 저녁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에서 시작됐다.

● 문동열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LG인터넷과 SBS콘텐츠 허브를 비롯해 25년 가까이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산업 현장에서 기획, 제작을 했다. 또한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에서 문화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 등을 맡기도 했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 모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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