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클레오파트라의 신혼여행지’ 아스완 답사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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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클레오파트라의 신혼여행지’ 아스완 답사기①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 승인 2020.01.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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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이런 곳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가족 식사를 하다니, 정말 출세한 것 같아. 고마워”

아가사 크리스티가 묵으며 ‘나일강 살인사건(Death on the Nile)’을 집필했다는 이집트 아스완의 올드 카타락트 호텔(Old cataract Aswan Sofitel legend)에서 아름다운 나일강 경치에 젖어 남편에게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잘 생긴 호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아가사 크리스티가 묵었던 스위트룸을 돌아볼 때에는, 내가 마치 대작가가 된 듯했고 아스완에 신혼여행 온 클레오파트라가 된 기분이었다. (10분에 불과했지만) 아들 녀석도 덩달아 신이나, 우리가 지낼 방이냐며 천진난만하게 물어봤다.

올드카드락트 호텔 전경
올드카드락트 호텔 전경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결혼 후 아스완의 필레 섬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한다. 3일 동안 둘러 본 결과, 아스완은 수백년의 세월이 강산을 변하게 했어도 이집트 여왕이 신혼여행지로 선택하기에 충분한 곳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특히 우리는 이번 여행 후, 아스완을 이집트의 베니스라고 칭했다. 나일강을 여유롭게 떠다니는 펠루카는 일출과 일몰 시간에 관광객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 이집트 거주 한인들 사이에서도 “펠루카는 아스완”이 정석이다.

이집트 남단에 위치한 아스완은 수단과 가까운 국경도시로 과거엔 누비아라 불렸다. 이집트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보니 누비아 출신, 아스완 출신이라고 하면 얼굴이 다른 이집트인들보다 비교적 까만 편이다. 뮤지컬 ‘아이다’의 아이다가 바로 누비아의 공주다. 그래서 이집트 오페라하우스의 뮤지컬 아이다 포스터는 흑인 공주가 그려져 있다. 이집트 북쪽 사람들이 통상의 ‘중동’ 느낌이라고 한다면, 남쪽은 ‘아프리카’의 느낌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누비아 마을에 가면, 그 강한 색채가 수단·케냐 등 아프리카의 느낌과 비슷하다.

사실 아스완에만 4일을 머문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거기서 3일 동안 뭐하게?”라고 반문했다. 대개 우리 한국 관광객들에게 아스완은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을 보고 룩소르행 나일 크루즈를 탑승하는 관문 정도로만 코스에 편입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 3시간 반 동안 쉼 없이 달려야하는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사막의 무더위 또한 관광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덕분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새벽 3시에 버스에 몸을 실어 사막을 달리며 일출을 감상하고 아부심벨에 도착하면 2시간여 동안 관람한 뒤 10시쯤 다시 아스완으로 돌아와 오후에 크루즈에서 쉬며 룩소르로 향하는 코스를 이용한다.

그래서 한 시가 아까운 관광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적은 아스완, 그 기억을 소개한다.

누비아, 황금의 땅을 장악한 아부심벨 암굴 신전

첫 일정은 오전에 아스완을 출발해 아부심벨 바로 앞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부심벨에서의 1박은 저녁 6시 신전에서 파라오와 그의 왕비를 추억하게 하는 ‘빛과 소리의 향연’(Sound and Light Show)를 위한 것이었다.

나일 강 절벽을 깎아 만든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의 유적중 제일 유명한 건축물이다. 왕 자신을 위한 대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돼 있다. 25세에 즉위해 66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이집트 국력의 절정기를 이끈 왕, 람세스 2세는 지금으로 치면 ‘광고의 대가’였다. 이집트 곳곳에 수많은 신전을 세우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해 지배력을 키웠는데, 덕분에 이집트에서 가장 흔한(?) 유물이 람세스 2세의 유물이라고 한다.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에도 높이가 20여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람세스 좌상 4개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신전 곳곳에 신이 된 람세스가 기둥이 되어 서있다.

1813년에 발견된 아부심벨은 1960년대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 위험에 처했다가 유네스코의 노력으로 구제됐다. 유네스코와 이집트 정부가 세계 50여 개국의 도움을 받아 절벽 꼭대기에 있는 2개의 신전을 1000여개의 조각으로 분리, 강바닥에서 60m 높은 지점에 퍼즐을 맞추듯 복구해내는 어마어마한 일을 이뤄내 더 유명해졌다.

주신전의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신전은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것으로 10.5m 크기의 왕과 왕비의 조상으로 장식돼 있다. 우리나라에선 클레오파트라가 최고 미녀로 알려져 있지만 이집트에선 네페르티티, 네페르타리 그 뒤에 클레오파트라 순으로 ‘미녀 서열’이 매겨진다고 한다. 그 중 네페르타리는 역대 왕비 중 유일하게 자신의 신전을 가진 왕비, 왕 무릎을 넘는 조각이 금지됐던 시대에 왕과 동등한 높이의 석상이 건축된 왕비다. 그만큼 람세스 2세의 인정을 받았던 왕비였던 것이다.

아부심벨의 ‘빛과 소리의 향연’는 이러한 스토리를 거대한 암벽을 배경으로 보여주며 약 30분간 진행된다. 참고로 ‘빛과 소리의 향연’은 기자 피라미드,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아스완 필레 신전, 아부심벨, 에드푸 호루스 신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집트의 유적지 5곳에서 매일 밤 펼쳐지는 레이저 쇼로, 영어를 비롯한 6개 언어로 진행된다.

이날 쇼는 일본인 관광객이 30~40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한 덕에, 일본어로 진행됐다.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는다. 올해 아스완 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 첫 졸업생이 배출된다고 하는데, 그 성과에 걸맞게 아부심벨에도 한국어가 우렁차게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부심벨 라이트쇼
아부심벨 라이트쇼

필자는 개인적으로 기자 피라미드의 쇼보다 아부심벨 쇼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불이 꺼지면 쏟아질 듯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신전을 다시 비추고 형형색색의 레이저와 야외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영상들이 거대한 암벽에 쏘아지면, 이집트를 우러러보게 하는 국뽕도 이런 국뽕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들도 아스완 여행 중 가장 신나고 재미있던 것으로 아부심벨 빛 쇼를 꼽았으니, 나만의 평가는 아닌듯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다시 한 번 아부심벨에 눈도장을 찍었다. 나세르호와 신전을 배경으로 하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일년에 2번 열리는 일출 축제 시간을 맞추진 못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족족 작품이요, 달력사진이었다.

아부심벨 일출
아부심벨 일출

아부심벨 일출 축제는 매년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열린다. 람세스 2세의 생일에 맞춰 설계됐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 날이 되면 햇살이 신전 입구부터 신전 안쪽에 자리한 성소까지 서서히 비춰지는데 제단의 4개 신상 중 람세스 2세만을 20분간 환하게 비추는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람세스 2세의 자기 자랑을 실컷 감상하고 나면 문득 왜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신전이 아니라 아부심벨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랍어로 아부는 ‘아버지’를 뜻하는데, 누군가는 아부심벨을 발견한 외국인들이 “여기는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었더니 현지 도우미가 “너는 누구냐”로 잘못 알아들어서 “나는 심벨의 아버지(아부심벨)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그 기원이 됐다고 하고, 누군가는 발굴을 도와준 현지인의 이름이 아부심벨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왠지 이집트라면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아스완 하이댐
아스완 하이댐

아스완 하이댐, 이집트의 젖줄… 문화재의 적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아스완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안내해주던 운전사가 중간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의문의 박스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알고 보니 아부심벨 앞 나세르 호수에서 잡아들인 물고기를 사온 것이었다. 아스완은 아름다운 나일 경관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유람선으로 인해 수질이 좋을 수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스완 주민도 애정하는 아부심벨의 민물고기 맛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아스완 입구에 위치한 아스완 하이 댐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건설된 하이댐은 아부심벨과 필레신전 수몰의 원흉(?)이기도 하지만 이집트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댐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집트, 수단, 에디오피아를 둘러 싼 나일강 분쟁이 다시금 상기됐다.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에디오피아가 나도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댐을 지으면서 시작된 물 분쟁이 ‘나일강 분쟁’이다. 위쪽 물을 잠그면 아래쪽이 메마르기는 당연지사. 아프리카에서 나름 힘 좀 쓰는 이집트가 이를 우려해 반대하니 미국까지 껴들게 된 이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답이 없는 분쟁의 현명한 처리를 기원하며 우리는 발길을 돌려 KFC 체인점 중 세계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가진 체인점이라는 아스완 나일강점에 들어가 닭다리 뜯으며 허기를 달랬다. 이집트에 살면서 안타까운 점 중 하나가 찬란한 문명에 비해 단조로운 음식문화다. 발효 빵을 세계 최초로 만들고 수 천 년 전에 이미 맥주를 마시며 지냈던 이집트에, 전통음식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 몇 개 안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일 따름이다. ②에서 계속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은 기자, 국회의원 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이집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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