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내부고발자 공천을 자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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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내부고발자 공천을 자제하자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1.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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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로 정쟁도구 삼는 정치풍토 개선해야
2014년 권은희 공천사건, 무죄판결로 신뢰무너져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극단주의는 배격되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이해하며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조국 사태로 악화된 갈등과 분열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하고 “이제 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끝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은 패스트트랙 과정과 조국사태에서 진영논리에 의해 상식이 파괴되는 국민분열의 정치를 목격하면서 크게 실망했다. 이에 국민들은 2020년 새해소망으로 극단적인 정쟁과 분열의 정치에서 벗어나 민생을 책임지는 국민통합의 새로운 국회를 기대하고 있다.

과연 정치권과 정당들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인재영입, 공천, 캠페인 등 총선과정을 제대로 혁신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국민들은 정치권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인재영업戰, 민주당 내부고발자 영입 잇따라

21대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유리한 총선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인재영입과 공천경쟁에 분주한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정치권과 정당의 분주함이 국민이 바라는 것처럼, 정쟁극복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조성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정치권의 인재영입에서 ‘공익제보자’로 불리는 내부고발자 출신 인사들이 정당에 입당하거나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4년 권은희 보은(報恩)공천 논란’처럼, ‘인재 영입’의 진정성을 흔들고 있다. 정치권이 적폐청산이나 개혁의 명분으로 내부고발자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상대 당을 공격하는 저격수를 공천하여 정쟁정치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여전히 크다.

내부고발자들은 내부 고발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국회에서 바꿔보려고 한다는 출마의 변(辯)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유명세를 이용해 지위를 탐하거나, 정쟁정치를 위한 공격수로 활용하기 위한 ‘보은공천’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월 13일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민주당(과천·의왕) 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1월 19일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 10호 영입인재로 양승태 대법원 '판사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이탄희 전 판사를 영입했다.

2018년 8월 ‘양승태 대법원이 일본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고의로 지연했다’고 고발했던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1월 7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민주당으로 갔다. 그리고 2018년 5월 전국법관대표회의 초대 의장을 지내며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헌정 유린 행위’라고 비판했던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도 지난 1월 13일 사직해 민주당 공천으로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도 내부고발자를 영입했다. 한국당 4번째 영입인사인 이종헌씨는 농약·비료제조사 팜한농 구미공장에서 근무, 2014년 6월 팜한농의 전국 7개 공장에서 2009~2014년 벌어진 산업 재해가 은폐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에 신고했다.

당연 이탄희 전 판사의 민주당 입당은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이탄희 전 판사의 행보가 ‘사법농단 고발의 순수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탄희 전 판사는 정치참여의 배경에 대해 “사법농단 1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상황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탄희 전 판사의 민주당 입당을 두고 ‘정치판사’라는 비판이 법원 내부와 시민사회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 시국사건을 포함해 적폐청산 사건들을 재판하던 판사들이 사표를 내고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출마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이 재판했던 사건들에 대해 공정했다고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내부고발자들의 정치참여의 자유와 정치적 선택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부고발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의 자유를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판사가 내부고발자가 되어 정치권으로 가는 경우는 목적과 경위, 사직 시기 등이 각기 달라 하나의 잣대로 일반화해 평가하기가 힘들기에 폄훼할 수도 없다.

하지만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신분을 달리해 정치권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남아 있는 판사들과 법원 조직 및 동료 공무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난 2012년 12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내부 고발은 뜻밖의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수사를 축소 방해했다는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은 무죄가 확정된 반면, 국회의원이 된 권은희 당시과장은 모해위증혐의로 형사처벌 위기까지 갔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2년 12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내부 고발은 뜻밖의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수사를 축소 방해했다는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왼쪽)은 무죄가 확정된 반면, 국회의원이 된 권은희 당시과장은 모해위증혐의로 형사처벌 위기까지 갔다. 사진= 연합뉴스

2014년 권은희 공천사건, 공천 先대가로 내부고발? 

이에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받아 정쟁정치를 위한 도구적 공격수로 이용되는 부적절한 행태는 이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내부고발자 본인의 진정성의 관점에서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의 조성관점에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내부고발자는 정치참여의 자유를 가지되 일정기간 진정성 있는 활동을 보인 후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 정치에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2002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이문옥 전 감사관의 사례와 1995년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됐던 이지문 전 중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고초를 겪은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진정성 있는 활동에 기초하여 정치에 참여했다.

물론 공익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치권의 영입이라는 인센티브도 있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것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가 관건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가 공익제보자인지, 비리혐의자인지, 사실인지, 가짜인지 충분히 드러나고 검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관계가 충분하게 드러나고 검증되기까지는 일정정도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중립적 내부고발자’로 보호받고 대우받을 필요가 있다.

내부고발자가 제공하는 공익제보가 사실인지, 가짜인지를 밝히는 것은 법정공방을 벌여야 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사법제도의 절차상 1심에서 3심까지 유무죄를 복잡하게 다투는 등 매우 많은 시간을 요한다는 것이 지난 ‘2013년 권은희 내부고발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권은희 내부고발자는 2012년 대선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하였다. 그는 당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사건 축소·은폐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경찰에 사표를 제출하며 2014년 당시 “7·30 재·보선 출마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 심판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권은희 후보를 전략공천하자 이를 수용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연 새누리당은 “권 전 과장의 허위 폭로가 새정치연합의 공천을 받기 위한 ‘선(先)대가’였다는 점이 입증됐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권은희 내부고발자는 국정원 댓글 의혹 관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축소·은폐 수사를 지시했다고 폭로하였지만, 1심 2심 3심 재판부 모두 김용판 청장에게 무죄(無罪)를 선고했다. 이에 권은희 의원은 ‘내부고발’에 힘입어 국회에 입성했다가 반년 만에 ‘거짓말’(모해위증 혐의)로 형사처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은폐라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 느닷없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입당 제의를 받아들인 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광주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을 상식이라고 판단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내부고발자는 대체적으로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상당한 용기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내부 고발 자체는 공익적·이타적·윤리적 행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고자질이나 허위사실 유포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14년 권은희 공천사건’의 교훈은 매우 값지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내부고발자의 성급한 공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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