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거수기 역할이 초래한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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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거수기 역할이 초래한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1.2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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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후 재계는 반시장적 행위라며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3월에 상장사의 주주총회가 시작되기에 당장 사외이사를 새롭게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상당수 기업에서는“교수와 관료 풀(pool)이 한정되어 있기에 적절한 사외이사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재계가 사외이사 임기 제한을 반대하는 이유는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반시장적 제도라는 점에 있다. 특히,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행위 자체가 기업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는 것이 반발의 주된 이유이다. 미국 및 유럽 등 경제 선진국에서 사외이사 임기 제한 국가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당장 이번 개정으로 인해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는 566개사이며 새로 선임될 사외이사도 718명에 달하니 그야말로 사외이사 쟁탈전에 모든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아야 할 형국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기업들로부터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비판 또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강력히 실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사외이사 선임 과정 자체가 불투명한 블랙 박스에 있기에 실제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닌 사외이사가 선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의 시선 때문이다.

둘째, 사외이사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업 총수의 의견에 사외이사가 굴종하는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여론의 흐름도 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불투명한 선임 과정과 굴종하는 사외이사 

사외이사는 말 그대로 기업 밖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장사를 이끄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때로는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장사의 사외이사는 해당 업계에 관한 전문성을 경영자 못지 않게 보유해야 하며 기업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독립성도 유지해야 한다. 대다수 선도 글로벌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경영자(CEO) 출신으로 구성하는 이유이다. 

반면 국내의 사외이사 리스트는 늘 한결같다. 검찰, 법원 출신의 법관 경력을 지닌 변호사, 국세청, 공정위 출신 고위 관료 등은 단골 사외이사 리스트에 포함된다. 대학 교수 역시 사외이사 리스트에 항상 오른다. 모 인사의 경우 식품, 정보통신, 유통 등 다양한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독립성과 전문성은 애초에 사외이사 선임 여부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사외이사가 어떻게 선정되는지 과정 자체가 투명하지 않기에 정말 전문성과 역량을 갖고 있는 인물이 사외이사를 맡는지도 모호하다. 국내는 주로 과거 해당 기업에서 강의했던 교수 또는 법률 및 회계 자문을 맡았던 관료로 사외이사를 구성한다. 또는 대주주 및 총수와 관련된 인물로 선임되다 보니 이들에게 견제 기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에 가깝다. 

사외이사의 거수기 역할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최근 3년간 30대 그룹 소속 상장사의 이사회 안건은 평균적으로 4000건이 넘지만 이중 사외이사가 반대한 안건은 4~5건에 그친다. 99.9%의 기적에 가까운 합의 결과가 매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청문회에서 사외이사 경력을 거친 인사들이 공격을 받는 이유도 대주주의 전횡을 감시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 이상 '허수아비 사외이사'는 곤란하다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굳이 정부가 반시장적 제도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외이사 임기에 관해 정부가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이유는 글로벌 경제 선진국일수록 기업의 CEO는 사외이사의 혹독한 감시와 평가를 견뎌내고 기업을 성장, 혁신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기업에서 사외이사 역할을 맡고 있는 인사들의 불만도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고 지분이 분산되어 있어 사외이사가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CEO를 견제하기 용이한 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경우 그룹 총수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고 이사회의 역할 강화도 원치 않기에 사외이사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불투명한 인맥이 아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도입, 기업 경영에 정말 도움되는 사외이사를 선발·선임하도록 선발 과정 개선에 초점을 기울여야 한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통해 선임된 사외이사만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이사회 진행 시간에 대한 재점검도 필요하다. 분기별로 평균 1회, 1시간 미만의 이사회 진행은 친목 도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외이사가 기업 성과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상장사의 적극적인 정보 제공과 협력이 필요하며 사외이사의 전문성에 대한 기업 차원의 평가 역시 수반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국내 기업의 이사회가 허울뿐이라는 점을 늘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경영자의 역량, 조직문화, 기업 성과 및 장기적 혁신에 대해 사외이사가 심사 숙고해서 평가하는데 비해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인맥 쌓기에 그친다는 것이다. 

임기 제한에 관해 불만을 제기하기보다 허수아비에 머문 거수기 역할이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까지 초래했다는 점을 냉엄히 반성해야 한다. 이미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글로벌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모두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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