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②삼성의 준법감시위, '실험 가치'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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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②삼성의 준법감시위, '실험 가치' 충분하다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20.01.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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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방법원 35년전부터 기업 자율감시체계 운영...우리도 배울 필요있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 실효성 있다면 사후조치라도 큰 의미있어
'삼성부터 적용' 여론 부담있지만, 한국 기업문화 바꾸는 계기 삼아야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우리 기업은 아직도 정부(정권)리스크와 오너 리스크를 떠안고 경영을 해야 한다. 정부관료나 정치인이 불법자금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대표이사는 갈등 상황에 빠지고, 그 결과에 관해서 대표 또는 오너가 모든 불법행위를 책임지는 구조다. 이런 현상과 기업문화를 바꾸어야할 시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 양형기준, 미국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양형기준은 이런 점을 감안하고 있을까. 미국과 대비되는 우리의 양형 기준부터 살펴보자.

우리 대법원은 지난 2007년부터 산하에 양형위원회를 두고 양형기준을 만들어 운용중이다.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①범죄의 죄질 및 범정(범죄의 정황)과 피고인의 책임의 정도를 반영할 것 ②범죄의 일반예방 및 피고인의 재범 방지와 사회복귀를 고려할 것 ③동종 또는 유사한 범죄에 대하여는 고려하여야 할 양형요소에 차이가 없는 한 양형에 있어 상이하게 취급하지 아니할 것 ④피고인의 국적·종교 및 양심·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양형상 차별을 하지 아니할 것 등 4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법원조직법 제81조의6 제2항)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키워드는 '일반예방', '사회복귀', '재범방지'다. 범죄행위를 했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 형사사법의 핵심은 응보(보복)감정에 입각해 처벌을 내세우기보다, 재범을 방지하고 범죄자를 재사회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35년전부터 기업에 관해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점차 줄이고 자율감시체계를 도입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어가며 사회 전체의 사법비용과 비효율을 줄여온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기업은 전세계적으로도 정부 관료나 정치인에 불법자금을 제공하지 않는 좋은 이미지를 얻었다. 우리는 이제라도 미국과 같은 형사사법 체계의 변환이 필요하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 사건 파기환송심, 준법감시제도 적용 문제없나

그렇다면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준법감시제도를 이유로 양형을 하는 것에  어떤 쟁점이 있고,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인가?

첫번째, 우리는 미국의 연방 양형기준과 같은 규정이 없는데 재판부가 임의로 양형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대법원도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운영하고 있고 그 목적중 하나가 '재범방지'와 '재사회화'다. 또한 대법원의 양형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갖지 않고 권고적 기준에 해당한다. 미연방 양형기준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양형은 재판부 고유의 권한인데,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 사법부의 고무줄 양형에 관한 비판이 극에 달한 시기에 대법원에서 자체적으로 양형기준(권고안)을 마련한 것이다.

양형은 범죄자의 개별적인 특수성이 많이 반영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형사정책적 고려도 반영되어야 한다.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지,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지가 주된 고려요소다. 재판부는 양형기준에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고 하더라도 재량의 범위 내에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양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미 연방 양형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기업'의 범죄에 관해서 적용되는 기준인데, '대표나 오너 개인'의 범죄에 관해서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다.

미 연방 양형기준은 기업의 범죄에 관해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번 파기환송심의 피고인은 삼성이 아니라 이 부회장이므로 연방 양형기준과 일단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범죄의 성격을 보면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 소위 국정농단과 관련된 '뇌물'이 주된 범죄인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연방 양형기준에 ‘자율준수 및 윤리프로그램’이 도입된 이유가 정부관료 또는 정치인에 대한 뇌물 등 불법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기업에 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어떤가? 오너 기업의 경우 그 오너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아직 많다. 반대로 이 부회장이 부회장 자신을 위해 뇌물을 건넨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힘들다. 간접적으로 오너의 이익을 위했더라도 직접적으로는 삼성그룹을 위한 것이었으니 ‘기업‘ 범죄에 적용되는 미연방 양형기준을 오너가 기업을 위해 행한 범죄에 적용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연방 양형기준은 준법감시제도를 지금까지 잘 운영해온 기업이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 양형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인데, 범죄 행위 이후에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양형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 여부다.
 
필자는 이 부분이 법리적으로나 국민의 법감정상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를 이유로 그 이전에 행해진 범죄의 양형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은 준법감시제도를 잘 유지해오던 회사가 범죄행위를 했을 경우에 양형에 반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는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뒤에는 삼성 변호인단이 이 부회장에게 조언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사실 형사재판의 과정을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형사재판의 과정에서 범죄를 인정한 피고인은 결국 양형에 목숨을 걸게 되는데, 이 경우 흔히 피해를 회복했다는 ‘합의서’를 제출하거나, ‘반성문’을 제출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다.

주된 내용은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처절하게 반성을 하고 있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주위 사람들도 이런 내용을 보증한다는 내용이다.

삼성과 이 부회장이 양형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또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법원이 우리 양형기준에서 내세우는 키워드도 일반예방(사회 일반인의 범죄를 예방), 사회복귀, 재범방지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사후적이라 하더라도 기업의 문화를 바꿔 삼성 등 기업들의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 삼성과 이 부회장 또한 다시는 유사한 범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상의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인 것인지, 실질적으로 설립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는지를 어떻게 판단할지 문제다.

기업에 대한 형사사법 방향도 고민해야

이 사건 이후 '치료적 사법의 가치'와 우리 형사사법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지도 곰곰히 생각해볼 사안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기업의 범죄행위에 관해서, 포토라인에 세우고 단죄를 하며 망신주기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이런 관행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거창하게 '치료사법'이라는 이름을 차치하고서라도 형벌과 단죄는 많은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을 낳는다. 지금부터라도 기업들이 스스로 감시 통제하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준수한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해, 기업 스스로 정부(권력)과 정치인에 휘둘리지 않는 원칙과 절차를 유지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업이 스스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치료사법도 좋고, 일반예방, 재사회화도 좋은데, 왜 그것이 삼성부터냐고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문화를 돌이켜보면 삼성이 주도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꼭 삼성일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시작의 처음에 삼성이 있었던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이번 사안도 비슷해 보인다. 새로운 기업범죄의 양형기준, 새로운 형사사법의 시작에 꼭 삼성이 있어야할 이유는 없다. 그런 변화의 시도를 삼성(삼성의 변호인단)이 한 것이고, 이번 파기환송심의 판결로 새로운 기업문화가 시작될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본다.

●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IT기업 준법팀장을 거쳐 법무법인 로베이스 파트너변호사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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