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⑪ 프라다, 밀라노의 전통에 혁신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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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⑪ 프라다, 밀라노의 전통에 혁신을 연결하다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1.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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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 소재 파격사용으로 명품의 고정관념 깨뜨린 프라다
프라다폰 발표하고 문화 공간 세우는 등 실험적인 프로젝트 펼쳐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와 ‘처치스’, ‘마르케시 1892’ 등 보유한 프라다 그룹
프라다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캠페인
프라다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천연가죽 소재임을 강조하던 명품 백들 사이에 합성섬유인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백을 던져 넣으며 럭셔리의 개념을 바꿔버린 '프라다(Prada)'.

할아버지가 설립한 가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시킨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는 이에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식견과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하며 오랜 전통의 패션도시 밀라노를 혁신도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 낙하산용 방수 나일론, 프라다에 의해 명품백으로 재탄생

1913년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는 동생 마르티노(Martino)와 함께 상점 ‘프라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 프라다 형제라는 뜻)’를 열었다.

밀라노 중심가에 위치한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아케이드에 자리를 잡고 좋은 품질의 백과 트렁크, 액세서리를 판매한 이들은 차별화된 퀄리티를 인정받으면서 1919년 이탈리아 왕가의 공식 납품 업체로 선정되었고, 이를 기념해 ‘사보이(Savoy)’ 왕가의 문장과 매듭을 브랜드 로고에 그려 넣었다.

마리오 프라다가 세상을 떠난 1958년부터 가업은 그의 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에 의해 운영되었고, 1970년엔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합류했다.

우선 제품 생산 공정부터 배우기 시작한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 과정에서 가죽 관련 사업을 하고 있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를 만나 그를 경영 파트너로 영입했고, 1978년 본격적으로 프라다의 지휘를 맡았다.

프라다 브랜드를 조금씩 현대적으로 변화시켜가던 중, 미우치아 프라다의 눈에 들어온 ‘포코노 나일론(Pocono Nylon)’.

튼튼하면서 방수기능도 있어 주로 군용 낙하산이나 텐트에 쓰이던 포코노 나일론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손을 거쳐 백팩과 토트백으로 태어났고, 이 나일론 소재의 패션 아이템들은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핸드백은 천연가죽 소재여야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나일론 백의 등장은 럭셔리 마켓의 전통과 기준을 흔들어버렸고, 또한 요란한 문양이나 큼지막한 로고도 없이, 브랜드네임이 새겨진 작은 금속만이 부착된 심플한 모습은 기존 명품 백들을 비웃으며 시크하게 다가왔던 것.

나일론 백의 활약으로 프라다는 실용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혁신적인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987년 베르텔리와 결혼한 미우치아 프라다는 다음 해부터 여성복 컬렉션을 전개했다.

핸드백의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제안된 프라다의 의상들은 모던하고 세련된 매력을 어필하며 호평을 받았다. 프라다의 일등공신인 나일론도 아우터, 원피스의 소재로서 당당히 패션쇼 무대에 올라 여성복 라인의 안착을 도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미니멀 트렌드와 시너지를 일으킨 프라다는 유럽을 넘어 일본, 중국, 미국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에 위치한 프라다 매장, 초창기 프라다 상점과 창업주 모습, 2007년 광고, 2018년 광고, 미우치아 프라다, 2005년 광고, 2011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 = 프라다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에 위치한 프라다 매장, 초창기 프라다 상점과 창업주 모습, 2007년 광고, 2018년 광고, 미우치아 프라다, 2005년 광고, 2011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 = 프라다 홈페이지)

◆ 예술과 테크놀로지, 친환경 이슈로 이어지는 프라다의 혁신

나일론을 포함한 다양한 소재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컬렉션을 다채롭게 구성하며 프라다를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키워낸 미우치아 프라다는 예술을 향한 애정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1993년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을 설립해 현대미술계의 신진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함께 전시, 건축, 영화 등의 아트 프로젝트들을 진행한 미우치아 프라다.

패션에 문화 공간을 결합한 ‘에피센터(Epicenter, 진원지라는 뜻)’ 프로젝트를 펼친 데 이어 2009년엔 패션과 필름, 전시, 문화 등 종합 이벤트를 담은 움직이는 4면체 건축물,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를 서울 경희궁에 설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한 재능 있는 건축가와 손을 잡고 매장은 물론 본사 건물도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프라다는 2015년엔 밀라노의 오랜 양조장을 프라다 재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하며 밀라노의 도시 풍경까지 혁신적인 분위기로 바꾸어가고 있다.

프라다의 실험은 런웨이와 전시회 밖에서도 이루어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2007년 LG와 함께 제작한 ‘프라다폰’.

프라다폰은 세계 최초의 풀터치 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패션과 전자의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모바일 폰의 역사를 새로 쓴 상징적 모델. ‘프라다2’, ‘프라다 3.0’ 버전이 뒤따르며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예술, 그리고 테크놀로지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어느 브랜드보다 앞서 가는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한 프라다는 이를 발판으로 패션 디자인에서의 새로운 시도에 다시 착수했다.

2018년 한층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가볍고 견고한 소재로 미래적인 스포츠 라인 '리네아 로사(Linea Rossa)'를 리런칭했고, 2019년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와 함께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으며 스트리트 패션 트렌드에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고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어 준 나일론을 다시 돌아본 프라다는 위기의 환경 문제를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

바다에 버려진 낚시 그물이나 각종 폐기물을 재활용한 재생나일론 소재, ‘에코닐(ECONYL®)’로 제품을 만들기로 한 프라다는 2021년 말까지 기존 프라다의 나일론 제품들을 모두 에코닐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앞으로 모피의 사용도 중단하기로 해 동물애호가들의 환영을 받기도.

이러한 친환경적 시각을 의상 디자인에도 적용한 프라다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오래 입을 수 있도록 고급 소재의 정제된 스타일로 최신 컬렉션을 채웠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라다 재단 모습, 프라다폰 광고, 리나일론 프로젝트 이미지 2컷, 프라다X아디다스 이미지 컷, 리네아 로사 이미지 컷, 2020 봄 컬렉션 3컷 (광고 외 사진=프라다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라다 재단 모습, 프라다폰 광고, 리나일론 프로젝트 이미지 2컷, 프라다X아디다스 이미지 컷, 리네아 로사 이미지 컷, 2020 봄 컬렉션 3컷 (광고 외 사진=프라다 홈페이지)

◆ ‘미우미우’ 런칭, ‘처치스’ 인수하며 프라다 그룹으로

프라다 브랜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1993년 여동생 격인 ‘미우미우(Miu Miu)’를 런칭했다.

미우미우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어릴 적에 불리던 닉네임.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자아, 혹은 가상의 친구를 떠올린 미우치아 프라다는 보다 자유롭고 발랄한 느낌의 걸리쉬 룩으로 미우미우를 규정했다.

단순히 프라다보다 가격이 낮지만, 보급형 버전이 아닌, 독자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미우미우는 인기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았고, 브랜드의 출발점인 밀라노를 지키는 프라다와의 차별화를 위해 미우치아 프라다는 1995년 미우미우의 첫 패션쇼 무대를 뉴욕으로 정했다.

당시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던 뉴욕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미우미우는 1997년엔 독창적인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런던으로 무대를 옮겨 변화를 주었고, 2006년부터는 파리에 정착해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의상들을 발표하는 중이다.

최근 2020 리조트 컬렉션에서는 퍼프 소매의 블라우스와 하이웨이스트 쇼츠, 복고풍 프린트의 미니 원피스들로 개성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걸리쉬 룩을 제안해 시선을 모았다.

프라다의 남성복 라인과 미우미우를 안착시키고, 슈즈와 아이웨어, 향수로 제품 구성을 확대하며 비즈니스 규모를 키운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계속해서 프라다, 미우미우의 매장을 늘리기보다 사업 다각화로 포커스를 맞췄다.

1873년에 설립된 영국의 고급 수제화 브랜드 ‘처치스(Church’s), 그리고 편안한 로퍼로 명성을 쌓은 이탈리아의 드라이빙 슈즈 전문 브랜드 ‘카 슈(Car Shoe)’를 인수하며 그룹사의 면모를 갖춘 프라다.

오랜 전통의 고급 브랜드들을 보유하며 품격도 한 단계 올린 프라다 그룹은 2014년엔 밀라노의 가장 오래된 디저트 카페 ‘파스티체리아 마르케시(Pasticceria Marchesi, 일명 마르케시 1824)’를 품에 안았다.

프라다의 감각으로 새 단장된 ‘마르케시 1824’는 패션계의 관심을 끌며 밀라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고, 런던에도 추가로 매장이 오픈되어 밀라노의 달콤한 맛을 전파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라다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속 남성복, 미우미우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2컷, 마르케시 1824 이미지 2컷, 처치스 이미지 컷, 카슈X람보르기니 리미티드 에디션 이미지 컷 (광고 외 사진=프라다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라다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속 남성복, 미우미우 2020 리조트 컬렉션 광고 2컷, 마르케시 1824 이미지 2컷, 처치스 이미지 컷, 카슈X람보르기니 리미티드 에디션 이미지 컷 (광고 외 사진=프라다 홈페이지)

201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미우치아 프라다의 불가능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두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이탈리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각각 철학과 정치학이라는, 패션과 거리가 먼 학문을 전공한 공통점을 지닌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와 미우치아 프라다.

예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코코 샤넬(Coco Chanel)의 라이벌로 맞섰던 스키아파렐리와 달리 미우치아 프라다는 나일론 소재의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이탈리아 패션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파급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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