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18세 투표권 살릴 초당적인 ‘보이텔스바흐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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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18세 투표권 살릴 초당적인 ‘보이텔스바흐 원칙’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1.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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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참정권 보장됐으나, 편향성 없는 선거교육 없어
진영논리 찌든 기성정치 답습않을 '청년정치의 비전' 필요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로 학교교육서 이념성· 편향성 배제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에 따라 선거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이에 오는 21대 4·15 총선부터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21대 총선에 첫 투표를 하게 될 18세 유권자는 전국적으로 약 50만 명 정도이며, 그중 중·고등학생은 약 14만명이 된다.

그동안 18세 선거연령 인하를 놓고 정치권과 교육계에서 ‘환영’과 ‘우려’가 교차했던 게 사실하다. 여당인 민주당은 “만 18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로 선거연령 하향이 청년 정치 확대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은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 등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고 교육현장이 정치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4월 총선, 18세 유권자 50만명 투표참여 가능해져 

교육계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전교조는 “선거연령 하향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의 목표와 부합하는 것으로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위해 학생들에게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교총 등은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에 이른 학생은 투표와 선거운동을 하고 정당에 가입할 수 있게 허용돼 교실이 ‘정치의 장’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면서 “국회는 누구도 학교에서 선거운동이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당장 이번 4·15총선부터 고3 학생이 유권자에 포함됨에 따라 이들이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학기 시작 전 보급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도 모의선거 수업으로 ‘유권자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별도의 선거법 교육도 추진할 계획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만 18세 유권자를 위한 참정권 교육이 시급하다”며 “선거교육에서 우려하는 정치편향성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조 교육감은 “현재 모의선거교육 경험과 역량을 갖고 있는 곳이 YMCA나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정도다”라며 “YMCA의 모의선거교육 가이드라인을 주요 준거로 해서 정치편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도 1월 5일 ‘고등학교 3학년생 유권자’가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학생 및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선거 교육 콘텐츠 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새내기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교재에는 유권자의 의미와 역할, 선거 절차와 방법, 새내기 유권자가 알아야 할 선거법, 올바른 선택을 위해 알아야 할 정보 등이 담긴다”고 밝혔다.

18세 청년정치 분위기 미성숙...올바른 선거법 학습부터

18세 선거연령 인하는 OECD 선진국가가 대체로 17세 이하로 낮아지고 있는 만큼,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도 발을 맞춰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성숙한 1표를 선택할 수 있는 18세 청년정치의 분위기가 제대로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18세 참정권 보장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교실의 정치화, 깜깜이 투표 등 각종 우려를 제기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만큼, 당연히 18세 선거연령 인하에 따른 논란과 혼선을 줄일 당국의 대책과 함께 현장 당사자들의 지혜와 대처가 필요하다. 특히, 18세 유권자들이 진영논리에 찌든 기성정치의 틀에 물들지 않기 위한 10대 유권자의 새로운 청년정치의 비전이 필요하다. 18세 유권자로서 투표에 임하는 자세와 함께 투표권 행사를 위한 균형 잡힌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학습 그리고 올바른 선거법 학습이 필요하다.

이 참에 보수진보의 진영논리를 떠나서 10대들의 정치참여의 긍정성뿐만 아니라 부정성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속에서 10대들의 정치참여가 기성정치에 의해 희생양으로 악용된 사례에 대해서도 폭넓게 공유하고 이를 제어할 방도나 비전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것들을 미리 찾아서 대비하지 못한다면, 인헌고등학교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10들이 기성정치에 희생된 참혹한 사례들이 다수 있다. 독재자 히틀러는 10대들로 나치의 청소년단 조직인 유겐트(Hitler-jugend)를 만들어 시위와 선동에 악용했다. 유겐트는 나치당의 선전선동의 앞잡이가 되어 2차 대전에서 희생되었다.

모택동도 1966년부터 10년 동안 계속된 문화대혁명이란 광란에 10대 홍위병을 동원했다. 정치선동에 휘둘린 홍위병은 문화대혁명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박해하는 오명을 남겼다. 캄보디아 폴 포트 공산정권도 1970년대 말 10대의 손에 총을 쥐어줘 동족 200만 명을 학살하는 데 이용했다. 또한 북한의 조선소년단은 조선로동당의 피오네르 운동(공산주의 후비대) 조직으로, 북한 독재정권의 전위대이자, 희생물이 되고 있다.

우리도 18세 유권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다. 자율적인 판단과 저항력을 가진 18세 시민이 되도록 하는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희생물이 될 수 있다. 선전선동에 취약한 18세 유권자들을 기성정치에 쉽게 이끌리도록 하거나 양극화된 진영정치에 밀어 넣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기성정치에 맞서는 청년정치의 비전을 갖지 못하는 10대들이 정당 활동에 조기(早期)에 참여함으로, 자칫 정당들의 선전선동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좌우극단으로 달리는 한국 기성정치에 희생물이 될 게 뻔하다.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관악구 소재 인헌고에서 혁신학교와 공교육 강화를 주장해온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관악구 소재 인헌고에서 혁신학교와 공교육 강화를 주장해온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인헌고 사태, 교사에 의한 불필요한 진영논리 학습 부작용

최근 서울 관악구 인헌고 사태는 우리 10대 청소년들도 기성정치를 흉내내다가 희생당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헌고에서 일부 학생들이 ‘정치편향 교육’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또 다른 단체를 결성하고 반박에 나서, 이번 논란으로 학생들이 양분되는 양상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인헌고 학생사회의 분열에 대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가 ‘학교는 민주주의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학교가 ‘여의도의 축소판’이 된 것 같다”며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데, 갈등을 그대로 표출하며 조정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10대 청소년들과 18세 유권자들이 살고 있는 학교현장은 기성 정치권의 갈등과 반목이 고3 교실로 고스란히 옮아가서 생각이 다른 친구에 대한 공격이 진영논리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조희현 교육감도 편향교육 논란이 되고 있는 인헌고 사태와 관련해서 “일부 교사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듯이, 청년정치의 비전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학생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사에 의해, 또는 정치권에 의해 불필요한 진영논리가 학생들에게 학습될 가능성도 크다.

10대들이 주도하는 청년정치의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18세 투표권 확대와 관련한 정치편향성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렇다면, 적절한 방법이 없을까? 하나의 방법으로 한나 아렌트의 식견과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편향적인 전체주의 교육에 찌든 아돌프 아이히만의 언행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고발하면서 교육의 본질로 ‘시민의 탄생성’을 강조하였다. 아렌트는 '교육의 위기'라는 글에서 학교교육에서 각 개성과 차이를 지닌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전제로 하는 ‘시민의 탄생성’을 강조하였다.

만약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복수성(plurality) 때문에 존재하는 공적영역인 정치가 획일적인 정치편향성으로 주입되거나 망각된다면 아이들이 이전 세계에서 다음 세대로의 변화나 혁신은 물론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렌트는 새로운 세대인 아이들의 탄생에 대하여 이전 세대의 어른들이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과 정치편향성 교육에 의해 다양성과 개성이 깨지지 않도록 그들을 사랑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학교현장서 시민교육시키는 대원칙

나치즘에 의한 유대인학살을 경험한 독일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기성정치의 정치편향성을 배제하면서 합리적인 토론이 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결과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따른 세 가지 대원칙을 정했다. 이 세가지 원칙은 독일이 시민교육에서 이념성과 편향성의 문제를 배제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보여준다.

그 대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화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둘째, 현재 논쟁적인 내용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구성한다. 셋째, 현재 정치 상황을 분석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우리의 정치교육과 시민교육 역시도 이러한 대원칙을 수용하고 보충하여 어느 정파가 집권을 하더라도 정치편향성에 빠지지 않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통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초당적인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교육의 대원칙으로 제도화되고, 학교현장에서 시민교육이 전면적으로 도입,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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