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⑩ 미래를 향해 펼쳐진 '발렌티노'의 레드카펫
상태바
[세계의 명품 스토리] ⑩ 미래를 향해 펼쳐진 '발렌티노'의 레드카펫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1.11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래머러스한 레드카펫 드레스로 대표되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액세서리를 맡았던 디자이너 듀오, 발렌티노 브랜드를 혁신시켜
젊고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피엘파올로 피치올리
발렌티노 2020 프리스프링 시즌 액세서리 광고 캠페인
발렌티노 2020 프리스프링 시즌 액세서리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레드카펫 위에서 누구보다 빛날 수 있도록 드레스를 만들어준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그리고 발렌티노 브랜드가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와 피엘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

시대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해온 발렌티노는 이제 스트리트 트렌드까지 흡수하며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로마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 파리 패션계의 찬사 받다

이탈리아 북부 보게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옷에 대한 관심을 키운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집 부근의 부틱에서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고, 보다 전문적인 수업을 받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미술학교와 파리의상조합학교에서 공부한 후 ‘장 데세(Jean Dessès)’의 부틱에 인턴으로 취직한 가라바니는 그 곳에서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며 함께 일하던 친구, 기 라로쉬(Guy Laroche)가 1957년 작은 샵을 열자 2년간 그의 작업을 도우며 지냈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1959년 로마의 콘도티 거리에 자신만의 부틱을 마련한 가라바니.

파리에서 보고 배운 대로 아름다운 꾸뛰르 의상들을 선보인 그는 특히 매혹적인 레드 컬러의 드레스들을 내놓아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 주홍빛에 가까운 선명한 레드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컬러 ‘발렌티노 레드’가 되었다.

신인 디자이너 가라바니는 로마를 중심으로 빠르게 이름을 알려나갔고, 1962년 ‘살라 비앙카(Sala Bianca, 하얀 방 의미)’에 정식 초청되는 기회를 잡았다. 살라 비앙카는 파리에 집중되어 있던 세계 패션계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의 패션 도시 피렌체에서 기획한 이벤트.

수많은 취재진과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첫 꾸뛰르 쇼를 멋지게 치러낸 가라바니는 이탈리아 패션의 선두주자로 떠올랐고, 유럽 왕가와 배우, 셀럽들로부터의 주문도 이어지며 명성을 쌓아가게 되었다.

미국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는 지인이 입고 있던 발렌티노 의상을 본 후 고객이 되어 1968년 그리스 선박왕 애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와의 재혼을 준비하며 웨딩드레스를 의뢰했고,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는 이탈리아에서 영화 촬영 중 발렌티노의 부틱을 발견하면서 팬이 되었다고.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도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 본 가라바니는 1969년 밀라노에 첫 기성복 매장을 오픈했고, 곧 이어 로마와 뉴욕에도 매장을, 그리고 남성복 매장도 열며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도, 최고의 패션 도시는 여전히 파리라고 판단한 가라바니.

1975년 이탈리아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패션 위크 ‘쁘레따뽀르떼(Prêt à Porter)’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기로 한 그는 우아하고 섬세한 파리 스타일에 감각적이고 글래머러스한 이탈리아의 매력을 조화시킨 의상들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기성복 라인이 순항하는 동안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그에게 레드카펫 드레스를 부탁하는 고객 리스트를 꾸준히 늘렸고,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로도 화제를 모으며 디자이너로서의 인기를 구가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68년 발렌티노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재클린 오나시스, 1995년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샤론 스톤, 2001년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고 오스카를 수상한 줄리아 로버츠, 1990년대 패션쇼에서의 가라바니, 2006년 광고 2컷, 2008년 가라바니의 마지막 패션쇼 피날레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가라바니 뮤지엄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68년 발렌티노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재클린 오나시스, 1995년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샤론 스톤, 2001년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고 오스카를 수상한 줄리아 로버츠, 1990년대 패션쇼에서의 가라바니, 2006년 광고 2컷, 2008년 가라바니의 마지막 패션쇼 피날레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가라바니 뮤지엄 홈페이지)

◆ 가라바니의 화려한 피날레, 그리고 디자이너 듀오의 등장

1998년 패션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탈리아의 미디어 그룹 ‘HdP’에 인수된 발렌티노 브랜드는 하지만 성장세가 꺾이면서 2002년 밀라노의 직물 기업 ‘마르조또(Marzotto)’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도 하우스를 지켰던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결국 2007년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마지막 오뜨 꾸뛰르 쇼를 펼친 가라바니는 레드 드레스의 퍼레이드로 화려한 피날레를 완성했다.

그를 떠나 보낸 후 '구찌(Gucci)' 출신의 알레산드라 파키네티(Alessandra Facchinetti)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의욕을 보인 발렌티노 하우스. 그러나 서로의 시각 차이만을 확인한 채 두 시즌 만에 헤어졌고, 그 빈 자리는 액세서리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치올리로 채워졌다. 또 다른 영입으로 모험을 하기보단 발렌티노와 함께 성장 중인 디자이너들에게 기대를 걸기로 한 것.

당시 패션계엔 생소한 이름이었던 이들은 데뷔 무대인 2009 봄 시즌 오뜨 꾸뛰르 패션쇼에서 1960년대의 경쾌한 느낌을 담은 코트와 원피스, 부드러운 실루엣의 이브닝 드레스들을 선보여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긍정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키우리와 피치올리는 자신 있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발렌티노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 ‘락스터드(Rockstud)’.

각이 진 모양의 금속 징 장식, 락스터드는 백과 슈즈는 물론 의상에도 부착되면서 발렌티노가 모던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재인식되도록 도와주었다.

이와 함께 남성복에는 군복 문양 ‘카모플라쥬(Camouflage)로 스트리트 감각을 불어넣고 스니커즈의 디자인도 다양하게 확대하면서 키우리와 피치올리는 브랜드 가치를 다시 상승시켰고, 이에 발렌티노는 2012년 카타르 왕가 소유의 사모펀드 ‘메이훌라(Mayhoola)’에 인수되며 재도약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바로크 회화나 팝아트를 접목하고 자연 모티브를 넣는 등 매 시즌 신선한 시도를 이어가며 호평을 이끌어낸 키우리와 피치올리는 2015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인터내셔널상 수상으로 발렌티노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CFDA 시상식에서의 피엘파올로 피치올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발렌티노 2012년 봄 광고, 2015년 광고, 락스터드 장식을 선보인 2013년 봄 광고 2컷, 2012년 가을 광고, 2013년 가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가라바니 뮤지엄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CFDA 시상식에서의 피엘파올로 피치올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발렌티노 2012년 봄 광고, 2015년 광고, 락스터드 장식을 선보인 2013년 봄 광고 2컷, 2012년 가을 광고, 2013년 가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가라바니 뮤지엄 홈페이지)

◆ 듀오의 해체, 그러나 더욱 빛을 발하는 피엘파올로 피치올리

발렌티노의 성장에 패션계가 주목하면서 키우리와 피치올리, 두 디자이너의 주가도 치솟았고, 2016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발렌티노의 단독 디렉터로서 시험대에 오른 피엘파올로 피치올리.

로마 근교의 네투노 출신인 피치올리는 어린 시절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패션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관심을 키웠고, 고교 졸업 후 로마의 에우로뻬오 디자인 학교(IED)에서 패션과 액세서리 디자인을 공부했다.

같은 학교 출신인 키우리와 친구가 된 피치올리는 먼저 '펜디(Fendi)'에 입사한 키우리의 추천으로 1990년 액세서리 팀에 합류했고, 1999년 발렌티노에 함께 이직해 핸드백과 아이웨어의 개발 임무를 부여 받았다.

발렌티노 하우스의 신임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피치올리와 키우리는 곧 액세서리 전반을 모두 맡은 데 이어 2003년엔 발렌티노의 영 브랜드 ‘레드 발렌티노(REDValentino)’를, 그리고 2008년엔 발렌티노 전체 라인을 총괄하는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17년간 발렌티노 듀오로서 활동한 후, 혼자 남은 피치올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우스의 전통과 철학을 만나보고 해석하는 과제부터 풀어갔다.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혁신도 없다고 생각한 것.

그 결과 2017 봄 시즌에 첫 선을 보인 피치올리의 발렌티노는 시그니처 레드와 러블리한 핑크가 믹스되고, 한결 가볍고 로맨틱한 스타일로 연출되면서 듀오의 해체에 대한 패션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리고 피치올리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실어준 ‘VLTN’ 로고.

스포티 아이템들을 준비하던 피치올리는 1980년대 발렌티노 룩에 잠시 등장했었던 ‘VLTN’ 로고를 시험적으로 사용해보았는데,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고, 이에 발렌티노 하우스는 이 로고를 내세운 스포츠 테마의 팝업 스토어를 세계 곳곳에 열며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했다.

VLTN의 성공으로 스포티 스트리트 패션의 열기를 확인한 피치올리는 ‘언더커버(Undercover)’의 디자이너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와의 협업으로 남성복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적극 추진하며 계속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이다.

이렇게 트렌디하고 웨어러블한 기성복으로 어필하면서도 동시에 꾸뛰르의 작품성 역시 인정받고 있는 피치올리는 자신의 본래 장기인 액세서리 디자인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오리지널 V 로고에 링과 리본을 결합시킨 ‘V 링’ 백으로 새로운 잇 백의 탄생을 알렸고, 좀더 간결한 V 슬링 백을 후발주자로 출격시킨 상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피엘파올로 피치올리, 2017 봄 컬렉션, 2020 봄 컬렉션, 2019 오뜨 꾸뛰르, V링 백을 선보인 2019년 광고, 언더커버와의 콜라보레이션, VLTN 로고가 등장한 광고 캠페인 2컷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피엘파올로 피치올리, 2017 봄 컬렉션, 2020 봄 컬렉션, 2019 오뜨 꾸뛰르, V링 백을 선보인 2019년 광고, 언더커버와의 콜라보레이션, VLTN 로고가 등장한 광고 캠페인 2컷 (광고 외 사진=발렌티노 홈페이지)

밀라노에 본사를 둔 발렌티노는 디자인 작업은 로마에서, 그리고 패션쇼는 파리에서 발표한다.

발렌티노의 역사가 숨쉬는 로마 아틀리에를 기반으로 창작을 하고,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 밀라노에서 마케팅 전략을 세우며, 가장 많은 패션미디어가 모이는 파리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다.

세 도시가 연결된 발렌티노의 세계 속에서 피엘파울로 피치올리가 브랜드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한편, 자신의 이름을 빛내주는 후계자 덕분에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오페라 무대 의상과 웨딩드레스 등을 디자인하며 개인적인 창작 활동을 느긋하게 이어가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