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제적 금융 요충지로 번성...요르단 내전 이후 PLO 거점 옮기며 정치혼란
곤 전르노회장 도피 이어 헤즈볼라, 이란 등 美와 갈등으로 '관심' 쏠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마치 영화와 같이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입국했다. 우리나라의 경기도만한 크기에 약 600만명이 사는 작은 나라 레바논. 다소 생소한 중동의 국가이지만, 최근 곤 전 회장이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으로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곤 전 회장은 어린시절을 레바논에서 보낸 레바논 시민권자로, 레바논 국민들에게는 '성공한 기업인'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과 이란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인접국가인 레바논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레바논은 친이란 시아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거점이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피습과 관련, "미국은 레바논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독립성과 저항군, 헤즈볼라를 빼앗아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레바논을 무력화시키고 싶어한다"며 "헤즈볼라는 나날이 강해졌고, 오늘날 레바논의 손과 눈은 모두 헤즈볼라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기업가와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가 공존하는 레바논은 어떤 나라일까.
'모자이크 국가' 레바논..마론파·수니파·시아파 공존하는 독특한 정치권
레바논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식어 중 하나는 '모자이크 국가'다.
레바논은 1923년 시리아 등과 함께 프랑스 위임통치령이 됐다가 시리아에서 분리된 후 1943년 완전 독립하게 된다. 레바논은 기독교 마론파와 이슬람의 수니파, 시아파 등 총 18개 이상의 종교종파가 혼재되고 있어 '모자이크 국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양한 종파 속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대통령직은 기독교 마론파, 수상직은 수니파, 국회의장직은 시아파가 맡고 있다. 현재 레바논 인구 중 절반 가량이 기독교 인구이고, 이 중 약 30%가 마론파여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직을 마론파가 맡게 됐다.
마이니치신문은 주 레바논 대사가 곤 전 회장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을 면담한 것 역시 레바논계 부모를 둔 곤 전 회장이 마론파로 분류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과거 한때 '중동의 스위스'로 불리며 국제적 금융 요충지로 번성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 요르단 내전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정세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1975년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 이스라엘, 미국·영국·프랑스 등 다국적군, 이란 등이 차례로 개입하게 되고, 이 때 이란의 개입으로 시아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여기서 세력을 키워가게 된다.
레바논의 내전은 1990년 마무리가 됐지만 레바논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진행중이다. 지난해 10월 사드 하리리 전 총리가 총리직에서 사퇴한 이후 12월20일 하산 디아브 신임 총리가 지명되기까지 약 두 달이 소요됐는데, 신임총리는 이제서야 내각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와 관련,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정치'가 일반적인 형태가 됐다"며 "최근에는 레바논 정부가 기능부전에 빠져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레바논의 정치권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헤즈볼라의 영향력은 건재한 상황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란혁명수비대는 지난 8일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미국과 한 몸이라고 성명을 냈다"며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헤즈볼라를 활용하는 방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친미 이스라엘과 친이란의 헤즈볼라의 대립은 미국과 이란의 대리 전쟁으로 발전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카를로스 곤 회장은 왜 레바논으로 향했나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에게 있어 레바논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브라질 태생의 곤 전 회장은 레바논에서 자라 레바논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님과 전·현 부인 모두 레바논 출신이다. 곤 전 회장은 레바논 내에서는 성공한 기업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레바논으로 입국한 또다른 이유 중 하나로 레바논과 일본이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지 않고 있는 점도 거론된다. 레바논은 일본이 요청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협력할 수는 있지만, 자국 시민권을 가진 곤 전 회장을 일본에 직접 넘겨야 할 의무는 없다.
곤 전 회장은 8일(현지시각)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도쿄지방검찰청은 정치검찰"이라며 "일본 검찰과의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고, 변호사 입회도 거부당했으며, 일본 검찰이 지난 14개월동안 나의 영혼을 파괴했다"고 주장, 기자회견 내내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이에 모리 마사코 일본 법무장관은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주장할 것이 있으면 우리나라(일본)의 공정한 형사 사법제도 아래 정정당당하게 법원의 판단을 받기를 강력히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인 9일 오전 0시45분(현지시간)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나라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며 "그것(불법출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를 향해 우리나라(일본)의 법 제도 및 운용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고의로 퍼뜨리는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레바논 내에서도 옹호와 비판 목소리 나뉘어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보석기간 중 일본에서 빠져나와 레바논으로 입국한 것을 두고, 레바논 내에서도 옹호와 비판의 목소리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레바논의 저명한 언론인인 다이애나 무카레드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곤 전 회장은 자금과 힘이 있기에 입국할 수 있었고, 이것은 특권층 사람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우한다고 간주될 경우 그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더 강화된다"며 "레바논 정부의 대응에 따라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젊은이들의 항의 시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과 관련, 일본 측의 인터폴 수배 요청에 대해 "요청을 접수했으며 레바논 검찰이 관련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레바논검찰 측은 9일(현지시간) 곤 전 회장의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 "곤 전 회장, 레바논에서도 안전하지 않아"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이 곤 전 회장에게 그리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곤 전 회장이 친미 국가인 이스라엘을 방문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3일(현지시각) 곤 전 회장이 레바논에서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레바논의 일부 변호사들은 지난 2일(현지시각) "곤 전 회장이 지난 2008년 르노 회장직을 맡고 있던 당시 이스라엘을 방문한 전력이 있다"며 "곤 전 회장이 이스라엘과 교류했음에도 우리 경제를 구할 국가적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은 2008년 당시 르노와 이스라엘간 전기자동차 생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레바논에서 적과의 협력은 일본에서의 혐의보다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인식된다"며 "유죄로 판명될 경우 곤 전 회장은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곤 전 회장의 이스라엘 방문이 공소시효 10년을 넘어 기소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곤 전 회장이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한 검찰의 말을 인용, "레바논 검찰 측은 이를 조사해 9일(현지시각)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곤 전 회장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한편 레바논 법에서는 레바논 국적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 국적자와 접촉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지난 2015년 미스 레바논으로 뽑혀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한 여성이 미스 이스라엘 등과 사진을 찍었다가 자격이 박탈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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