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칼럼] '펭수'와 대통령의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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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칼럼] '펭수'와 대통령의 신년사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 승인 2020.01.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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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해마다 한 해를 대표하는 상품이 등장한다.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해 최고 히트상품을 떠올릴 때 빠지지 않을 후보가 '펭수'다.

교육방송인 EBS의 캐릭터로 탄생한 '펭수'는 단 시간내 2030 직장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로 등극했다. 남극으로부터 떠내려 온 2미터가 넘는 자이언트 펭귄에 밀레니엄 세대는 열광했다.

흔히들 동물과 관련된 캐릭터는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익숙한 현상이다. 그런데 '펭수'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세대가 아니라 성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 시절 큰 사랑을 주었던 뽀로로 역시 펭귄이다. 아기 펭귄이다. 누구나 거부감없이 사랑하게 되는 동물이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그래서 더 애틋한 펭귄이다.

뽀로로는 단지 귀여운 수준에 그쳤다면 '펭수'는 밀레니엄 세대의 아픔과 슬픔을 대변해 준다. 직장생활의 고통과 어려움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공감해 준다. 2030 세대의 일상적인 애환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펭수'의 태도를 일컬어 현실감각이라고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또는 그 이상으로 대변하는 까닭이다.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들어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무려 30분이 넘는 시간을 읽어 내려갈 정도의 긴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무엇보다 ‘공정’을 강조했다. 지난해 가장 강조했던 ‘포용’을 포함해 ‘혁신’을 국정 키워드로 삼아 ‘확실한 변화’를 내세웠다. 경제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공정을 깊이 뿌리내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신년사는 경제 뿐만 아니라 부동산 정책, 신성장 동력, 노사 관계,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안들을 모두 포함했다. 신년사 내용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어떤 국정 운영 방향을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문제는 현실 감각이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가 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메시지가 되려면 현장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먼저 올해 국정 운영의 핵심인 ‘공정’은 현 정부의 인사에서부터 무너졌다. 대통령의 간판 공약인 검찰 개혁의 선구자를 자처했던 조국 전 장관은 곳곳에서 불공정 시비에 시달렸다. 진영에 따라 평가는 엇갈리지만 논란의 내용만으로 공정을 운운할 자격은 못된다.

대통령의 신년사 직후 이어진 검찰 인사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청와대와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수사의 핵심 인사들이 교체됐다. 이 인사를 두고 공정을 논하는 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것)’와 다름없다.

가장 현실 감각을 상실한 신년사 내용은 경제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대해 후한 평가를 신년사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현실 인식은 천양지차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달 17~19일 실시한 조사에서 ‘앞으로 1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현재에 비해 어떨 것으로 보는지’ 물어본 결과 ‘나빠질 것’이라는 의견이 46%로 절반에 육박했다. 특히 지난 한해 지옥같은 경기 침체의 터널을 통과한 자영업층에서는 ‘비관적 전망’이 54%로 절반을 넘겼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의무제’의 지속적 추진을 강조했다. 이 제도의 집중적 타격을 받아온 자영업층에서 곡소리가 난지 이미 오래다. 

지난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성인 캐릭터인 ‘펭수’의 성공은 우리 현실을 잘 대변한 데 있다. 직장 상사로부터 호된 갑질을 당하고도 마음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세대에게 '펭수'는 후련한 사이다 같은 존재가 됐다.

‘펭수’가 대박 존재가 되는데 있어 일등공신은 현실 감각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후반기 신년사가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는 공허한 메아리였기 때문이다. 정권에 취했는지 청와대 생활에 취했는지 몰라도 점점 현장과는 다른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신년사를 접했지만 감동은 동반되지 않는다. 지난해 대박 상품인 ‘펭수’와 올해 대통령 신년사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현실 감각이다. 현실 감각을 놓치면 국민으로부터도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된 관심은 대통령 지지율과 국정 리더십이다. 한국교육개발원·국가경영전략연구원·한길리서치에서 근무하고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을 거친 여론조사 전문가다. 현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을 맡아 리서치뿐 아니라 빅데이터·유튜브까지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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