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언론에 망신당한 일본 사법제도...곤 前회장, 도망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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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언론에 망신당한 일본 사법제도...곤 前회장, 도망갈 수 밖에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1.03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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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수사로 재구속 무한정 가능..최장 23일 구금 의미없어
변호인 입회 불허는 '인권경시'라는 지적도
일본 내부에서도 성찰의 목소리 높아
한국 검찰, 툭하면 별건수사로 피의자 옥좨 '닮은 꼴'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입국한 후 일본의 불합리한 사법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입국한 후 일본의 불합리한 사법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나는 더 이상 차별이 만연하고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부정(不正)한 일본 사법 제도의 인질이 아니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기업금융범죄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일본을 탈출, 레바논에 입국한 후 대리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곤 전 회장의 영화 같은 탈출국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그가 주장하는 '불합리한 일본의 사법제도' 역시 서방 언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조차 사법제도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일본 사법체계를 그대로 답습한 한국이 검찰개혁, 사법개혁 요구를 받고 있지만. 일본은 개혁 목소리조차 없었다.  

일본, 1심 유죄율 무려 99%..자백비율도 85%

일본의 사법제도는 해외 언론은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서조차 '인질사법(人質司法)'이라고 지적하며 후진적인 일본 사법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용의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기본으로 하는데, 검찰은 기소 전 용의자를 48시간동안 구금할 수 있고, 변호사 입회가 불가능하다. 이후 최장 23일까지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으며, 구속 기간 연장을 위해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는 별건수사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다. 한국 검찰도 이를 배워, 툭하면 별건수사로 피의자를 옥죄는 관행이 만연하다. 

일본 검찰은 구속기간중 피의자에 대해 압박심문을 하고, 억지 자백을 유도한다. 일본에서는 피의자의 자백 비율이 85%에 달한다. 일본 검찰의 1심 유죄율 역시 무려 99%다.  

일본 검찰 측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때만 기소하기 때문에 유죄 판결율이 높은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일본 변호사협회 등 일본 내부에서조차 구식 시스템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별건수사 구속, 시계는 계속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해외 언론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별건수사'다. 곤 前회장이 인질이 되기 싫다고 말한 것도 일본 검찰의 '별건수사' 관행을 두고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별건수사란 수사기관이 의도하고 있는 사건의 수사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사건으로 피의자를 다시 구속하는 것을 뜻한다. 

일본 검찰은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를 최초 체포후 최장 23일간 구속할 수 있는데, 새로운 혐의의 심문을 위한 재구속도 가능하다. 이 경우 다시 최대 20일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반드시 새로운 혐의일 필요도 없고, 같은 범죄를 분리해 추가 기소도 가능하다. 

23일간 혐의를 찾지 못하면 다시 시계를 앞으로 되돌릴 수 있고, 이 '되돌림'은 무한정 가능하다. 따라서 '최장 23일'이라는 제한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별건수사는 일본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관행이다. 서방 언론은 곤 前회장 사건을 계기로 이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23일의 무혐의 구속 기간도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긴데다, 별건수사라는 제도 자체가 선진국에서는 생소하기 때문이다. 

외교 전문지인 더디플로맷은 "예를 들어 시체가 발견되면 용의자는 '시체유기' 혐의로 구금된 후 최장 23일 후 '살인죄'로 다시 체포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실제로 곤 전 회장에게도 일어난 일이다. 곤 전 회장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의 소득 50억엔(약 500억원)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지난 2018년 11월19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전격 체포된 후, 수사 과정에서 보수 축소 액수가 늘어나고 특별배임 등 별건 혐의가 추가, 총 53일간 구금된 뒤 정식 기소됐다.

FT "과거 올림푸스 분식회계 사건에서도 같은 방식"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 올림푸스 분식회계 사건을 소개하며, 일본 사법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했다. 

한 때 '노무라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번 증권맨'으로 통했던 요코 노부마사(橫尾宣政)는 1980~1990년대 증권맨으로 승승장구하다 투자회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올림푸스 분식회계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재판 전 무려 966일간 수감됐다.

올림푸스 사건은 카메라 회사인 올림푸스가 무리한 투자로 인해 1000억엔의 손실을 본 뒤 이를 숨기려다 들통이 난 사건으로, 요코 노부마사는 올림푸스 경영진을 도와 장기간 장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요코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을 전혀 모르지만 검사들이 한 가지 혐의로 체포한 다음 다른 혐의로 다시 체포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질질 끌었다는 점에서 나의 (올림푸스) 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2년반이 넘는 구금기간 동안 가족을 만난 시간은 단 세시간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요코의 가족은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결함이 있는 법 제도에 의해 끔찍한 대우를 경험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에 대한 '캐나다 수사'와 대비 

특히 카를로스 곤 전 회장에 대한 일본의 수사 방식은 중국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 부회장에 대한 캐나다의 수사방식과 더욱 대비된다.

미국의 대이란제재 위반 혐의로 캐나다 공항에서 체포됐던 멍완저우 부회장은 보석 요청이 캐나다 법원에 받아들여져 보석금 1000만캐나다달러(약 84억원) 납부와 함께 전자발찌 착용, 사립 경호기업의 감시 및 여권 압수 등의 조건으로 열흘 만에 풀려났다.

현재 멍완저우 부회장은 전자발찌를 차고 캐나다에서 1년째 감시를 받고 있다. 

BBC방송은 멍 부회장이 독서와 유화 그리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자신의 딸인 멍 부회장이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낸 것과 관련, "칭찬받을 만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 이어져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폭로로 일본 수사방식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 내부에서도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공산주의 중국의 사건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일본이다'(월스트리트저널), '변호사 입회 없이 매일 계속되는 조사'(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등 서방 언론의 헤드라인을 소개하며, 해외 미디어가 일본의 사법제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7개국 중 변호사 입회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특히 프랑스는 변호인 입회가 없으면 조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미국은 심문하기 전에 묵비권이나 변호사 입회를 요구할 권리를 피의자에게 알리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변호사 입회는 세계의 흐름"이라며 "가족 등의 접견이 금지된 상황을 포함해 (일본의 사법제도는) 해외 미디어에 '인권 경시' 측면으로 비쳐질 것 같다"고 보도했다.

특히 구속 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강하다. 일본에서는 피의자 측이 보석을 요구해도, 검찰 측이 '증거 인멸의 우려'를 이유로 반대해 법원이 보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한 사법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소 시점에서 판결 때까지 보석허가된 비율은 30%대에 불과하고, 특히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기소 이후에도 구속이 장기간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키타 마사시 변호사는 "국제기준에 비춰볼 때, (일본의 사법제도가) 비정상적인 것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며 "범죄의 성패와는 별개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를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경제사건 조차 장기 구금이 가능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면 비즈니스를 위해 일본을 방문하려는 외국인은 줄어들 것"이라며 경제적 측면에서의 해외 투자 감소를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 사법제도가 무리한 구속, 별건 수사 관행 등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일본처럼 해외로부터 조롱을 받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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