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 이해하기②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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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 이해하기②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조건들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1.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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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명의료결정법,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 중단 인정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연명의료 결정법에 의하여 삶의 종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여야 한다.

첫째는 연명의료 종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이다. 자기 결정권의 근거를 인간의 행복추구권에서 찾은 김 할머니 사건이나 프라이버시권에서 찾은 미국의 '카렌 퀸란(Karen Ann Quinlan)' 사건에서 죽음에 대한 결정을 본인이 하여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

문제는 환자가 이미 의식을 잃고 있어서, 법원이 그 생각을 물어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법원 심리 과정에서 환자의 삶에 대한 평소 생각, 종교적 신념 등에 대한 질문을 증인에게 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연명 치료 중단을 법원에 신청한 가족들이 증인이 될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가족들로서는 환자가 평소에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했다는 증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카렌 퀸란' 판결에 대해 법원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증언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방안으로, 연명 치료 중단 결정에 대한 환자의 생각을 미리 문서에 기록해두는 방식이다. '사전지시서(Advance directives)'라는 이름의 문서가 고안되는데, 주 법에 따라 법원의 공증을 요구하거나, 증인의 서명을 요구하거나 유언장에 준하도록 하는 등 다수의 형식이 제안됐다. 일반적으로 본인과 증인이 함께 서명하도록 하는 방식이 채택돼 1991년 미연방 정부는 '환자자기결정법(Patient self determination act)'을 제정해 병원이 이 문서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우리 연명의료결정법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에 살던 21세의 카렌 퀸란은 1975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폐소생술 끝에 생명을 구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식물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미국 사회는 카렌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것인가를 놓고 윤리 논쟁에 빠졌다. 사진은 이 문제를 보도한 1975년 뉴스위크 잡지의 표지.
미국 뉴저지주에 살던 21세의 카렌 퀸란은 1975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심폐소생술 끝에 생명을 구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식물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미국 사회는 카렌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것인가를 놓고 윤리 논쟁에 빠졌다. 사진은 이 문제를 보도한 1975년 뉴스위크 잡지의 표지.

 

만일 환자가 생각을 바꿀 경우에는

하지만 어렵고 복잡한 의료적 상황을 일반인 환자들이 모두 이해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나아가 기본적으로 문서에 기록한 환자의 의사라는 것이 과연 바뀌지 않을 정도로 견고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여러 관련 논문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입원 초기와 다른 의사 결정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노년 세대나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율성(autonomy)’이라는 것은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신이 인식한 사실에 근거해 자기의 신체, 생명에 대한 결정을 한다는 합리적 인간상에 근거한 도덕 원리이다. 하지만 인간이 합리적인가라는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기준이기도 하다. 인간은 신이 정해준 범위내에서만 자율적일 수 있다는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기결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 환자 가족들 합의에 의한 연명 치료 중단 역시 마찬가지다.

환자 자율성 대신 치료방법 선택의 문제라면

그렇기 때문에, 서양에서 이 문제는 환자의 자율성 문제라기보다 과연 어느 정도의 치료를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치료 방법의 선택이라는 문제로 논의됐다. 1957년 이태리의 마취과 의학회가 교황청에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환자가 깊은 혼수 상태에 빠진 경우, 비록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만, 기계식 호흡기를 제거하면 곧 사망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기계적 환기를 중단할 수 있는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가톨릭 신자들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치료를 하는데 있어, 그 정도는 일반적인 수단(ordinary means)을 사용헤야 하며,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특별한 수단(extraordinary means)’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판단은 '자연 이성(natural reason)'과 '기독교 도덕(christian morality)'에 근거하며, 구체적으로 특별하거나 비례적이지 않고 과다하여 환자나 가족에게 이를 시행하여 환자를 돌보도록(care)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의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는 이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기준은 명확한 것 같지만, 다양한 해석을 요구하는 규범적인 내용이다. 질문한 환자의 ‘깊은 혼수 상태’라는 것이 ‘지속적 식물 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를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76년 카렌 사건에서 병원 측은 생존해 있는, 또는 회생의 가능성이 아주 미약하게 존재하는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인공호흡기 중단을 거부했다. 이에 반해 가족들이 중단을 요구했다.반면 카톨릭 교계에서는 대형 인공호흡기가 ‘특별한 수단’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중단하는 것이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증언을 본당 신부를 통해 법원에서 진술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이 사건에서 뉴저지주 최고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의 인공호흡기를 환자에게 계속 적용하는 것은 치료 목적에 비춰 부당하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하지만 자율성을 판결 기초에 넣었기 때문에, 이제는 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중단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 6월 미연방최고법원이 크루잔(Nancy Cruzan) 사건에서 지속적 식물 상태인 크루잔에게 급식관(feeding tube)을 통한 인공 급식을 중단할 수 있다고 했는데, 15년이 지난 2005년, 미연방최고법원은 테리 시아보(Terri Schiavo)에게 인공 급식관 제거를 인정하는 명시적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4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는 국제가톨릭병원협회 회의에서 ‘원칙적으로(in principle)으로 일반적 수단은 환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면서 인공적 영양(artificial nutrition)과 수분(hydration)은 시행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수단에 해당한다’고 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연명의료 중단이 우선하는가? 아니면 제공해야 할 연명의료의 종류를 환자가 결정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김할머니 사건과 미국 판결들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지만, 이를 입법화한 우리의 연명의료결정법은 후자의 입장이다.

환자가 연명의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 결정법’이 지난 2018년 2월부터 국내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사진=연합뉴스
환자가 연명의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 결정법’이 지난 2018년 2월부터 국내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연명의료결정 내용들은

우리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상태를 임종기 환자와 말기 환자로 구분한 다음에,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 중단을 인정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첫째, '임종과정'이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둘째,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이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을 말한다. 셋째, '말기환자(末期患者)'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넷째,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잘 살펴보면, 말기환자가 상태가 더 나빠져서 임종과정에 들어간 경우에만 연명의료중단이 가능하고, 이 한도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되고 있다. 이 부분은 연명의료결정법 입법 과정에서 의료계와 가톨릭 교계가 첨예하게 대립이 되었던 부분이다. 결론적으로는 가톨릭 교계의 입장이 거의 완벽하게 입법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김할머니 사건이나 카렌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 우리 법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지 못할 가능성을 높여놓은 것이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후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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