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⑧ 또다시 리셋, 셀린느의 브랜드 정체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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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⑧ 또다시 리셋, 셀린느의 브랜드 정체성 찾기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12.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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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수제화 상점에서 출발해 토털 브랜드로 성장한 셀린느
마이클 코어스와 함께 기성복 라인 본격 전개, 스포티 섹시 이미지 어필
피비 파일로가 간결하게 바꿔놓은 분위기, 에디 슬리먼이 다시 원점으로 돌려
셀린느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셀린느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새로운 디자이너를 만날 때마다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셀린느(Celine).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의 아메리칸 럭셔리,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의 부드러운 미니멀리즘으로 모습을 달리했던 셀린느가 이제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을 만났다.

세계 패션계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셀린느는 슬리먼의 분위기에 맞춰 다시 새 단장 중이다.

 

◆ 고급 수제화로 대표되던 브랜드, ‘젯셋’ 룩으로 화려하게 변신

아이를 위한 신발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셀린 비피아나(Céline Vipiana)는 남편과 함께 1945년 아동용 슈즈 샵 ‘셀린느’를 열었다.

예쁘고 편안한 맞춤 수제화들이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셀린느의 매장은 점차 늘어났고, 엄마들을 위한 성인용 슈즈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죽 공장을 마련하고 가방과 벨트, 장갑 등의 가죽 액세서리로 아이템을 확대한 셀린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캐주얼 감각의 기성복 라인을 추가했고, 1972년 브랜드의 상징 ‘트리옹프’ 로고를 발표했다.

이니셜 C와 개선문의 모티브가 결합된 트리옹프(Triomphe, 승리 의미) 로고는 핸드백과 벨트의 장식으로, 블라우스와 원피스 위의 프린트로 활용되며 셀린느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트리옹프의 활약 속에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던 셀린느는 자연스럽게 명품 대기업 LVMH의 레이더에 잡히면서 1996년 그 휘하로 인수되었다.

소속 브랜드들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성복 라인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한 LVMH는 1997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뉴욕의 디자이너들을 차례로 영입했는데, ‘루이 비통(Louis Vuitton)’애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를, 로에베(Loewe)에는 나르시소 로드리게즈(Narciso Rodriguez)를 그리고 셀린느에는 마이클 코어스를 배치했다.

가장 미국적인 럭셔리 룩을 선보여왔던 마이클 코어스는 프랑스 브랜드 셀린느에 특유의 ‘젯셋(Jet-Set)’ 스타일을 가져와 파리에서의 첫 데뷔를 멋지게 완성했다.

‘젯셋’은 자신의 전용 제트기를 타고 세계 곳곳의 휴양지를 여행하며 여유를 즐기는,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칭하는 말.

젯셋족에 어울릴만한 고급스러운 비치웨어와 라운지웨어, 파티 드레스들로 컬렉션을 채운 코어스는 셀린느를 스포티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때 코어스는 해변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젯셋 족을 표현하기 위해 마치 선탠을 한 듯 다갈색 피부의 섹시 모델들을 무대에 올렸는데, 당대 최고의 수퍼모델 지젤 번천(Gisele Bundchen)이 캣워크를 리드하며 새로운 셀린느를 세계 패션계에 각인시켰다.

코어스 자신의 시그니처 브랜드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셀린느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업데이트시킨 그의 성과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왼쪽부터, 셀린느 1960~70년대 광고, 지젤 번천이 등장한 2000년 광고 2컷, 1999년 광고 캠페인, 마이클 코어스 (광고 외 사진=마이클 코어스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셀린느 1960~70년대 광고, 지젤 번천이 등장한 2000년 광고 2컷, 1999년 광고 캠페인, 마이클 코어스 (광고 외 사진=마이클 코어스 인스타그램)

◆ 워킹우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피비 파일로의 디자인

마이클 코어스에 자리를 내주기까지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며 브랜드를 키웠던 셀린 비피아나는 1999년 8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 이후로도 그녀의 브랜드 셀린느는 사파리, 트로피칼 테마와도 어우러지며 인기를 유지했는데, 하지만 2004년 마이클 코어스는 자신의 브랜드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코어스의 빈 자리를 로베르토 메니체티(Roberto Menichetti), 이바나 오마직(Ivana Omazic)으로 채워보았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 셀린느는 더 이상의 시행착오가 없도록 오랜 기간 브랜드를 이끌어본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후임을 물색했고, 결국 2008년 피비 파일로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를 졸업한 파일로는 1997년 끌로에(Chlo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친구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의 부름을 받아 그녀의 오른팔로서 함께 작업했고, 맥카트니의 뒤를 이어 2001년부터 끌로에의 수장을 맡았다.

5년 간 리더의 역량을 보여주며 끌로에를 성장시킨 후,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일을 그만둔 그녀는 출산하고 나서 가족과의 시간을 갖고 있던 중 셀린느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것.

파일로가 가족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디자인 작업을 런던에서 하게끔 배려해주며, 셀린느는 그녀가 브랜드를 다시 일으켜주기만을 기대했다.

그렇게 준비한 2010 봄 컬렉션에서 피비 파일로는 이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분위기의 미니멀 패션을 발표했는데, 클린한 재단의 모던한 디자인이었지만 여성스럽고 부드럽게 표현했고, 차분한 뉴트럴 컬러를 기본 색조로 풀어냈다.

파일로가 규정한 셀린느 룩은 그녀와 같은 바쁜 워킹우먼들이 반가워할 만한, 편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

실용성을 겸비한 백들도 환영을 받으면서 파일로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더욱 늘어났고, 이러한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그녀는 10년간 셀린느를 지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T매거진 커버를 장식한 피비 파일로, 셀린느 2011년 가을 광고 2컷, 2011년 봄 광고, 2010년 봄 광고 3컷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T매거진 커버를 장식한 피비 파일로, 셀린느 2011년 가을 광고 2컷, 2011년 봄 광고, 2010년 봄 광고 3컷

◆ 이번엔 셀린느의 차례, ‘리셋 마스터’ 에디 슬리먼의 입성

피비 파일로가 떠난다는 소식에 그녀의 팬들이 상심에 빠진 가운데 셀린느는 에디 슬리먼의 영입을 알리면서 패션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슬리먼은 초특급 인기의 스타 디자이너인 반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너무나 확고해서 그가 거쳐간 브랜드들은 모두 비슷한 록 시크 이미지로 바뀌었기 때문.

그 시작은 ‘디올 옴므(Dior Homme)’의 리런칭이었다.

2000년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선택된 슬리먼은 가느다란 스키니 핏의 남성복을 내놓으며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한 건 유명한 일화.

슬리먼은 ‘디올 므슈(Dior Monsieur)’라는 이름도 ‘디올 옴므’로 리브랜딩했는데, 어차피 디올은 남성복으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좋은 판단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2012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으로 옮긴 그가 ‘이브’를 없앤 ‘생 로랑 파리’로 브랜드네임을 변경하고 컬렉션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지난 해 셀린느에 입성해서도 역시 그는 일관성을 보이며 로고부터 손보았다.

이번엔 셀린느의 각 글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É’를 불어식 액센트가 없는 영어식 ‘E’로 대체했다.

이에 대해 슬리먼은 셀린느 창립 초기엔 액센트를 빼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는대,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나마 이브 생 로랑에서만큼 충격적인 변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피비 파일로가 고수했던 로고를 바꿔버린 데 대해 안 그래도 심기 불편했던 파일로의 팬들이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 고객들과의 이별은 감수하기로 한 셀린느는 슬리먼에게 아티스틱, 크리에이티브, 이미지 디렉터라는 직함을 부여하며 전권을 주었다.

셀린느에서 준비한 첫 패션쇼에서 슬리먼은 블랙 컬러를 주조로 미니드레스, 슬림 팬츠, 가죽 재킷 등 예상을 그다지 벗어나지 않은 의상들을 내놓아 반가움보다는 실망감을 안겼는데, 다행히 두 번째 시즌인 2019 가을 패션쇼에서는 1960, 70년대 오리지널 셀린느에서 영감을 얻은 활동적인 파리지엔느 룩을 펼쳐 보여 셀린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혔다.

셀린느의 파리 아틀리에 주소에서 이름을 딴 ‘16’ 백과 ‘70년대 로고를 적극 활용한 ‘트리옹프’ 백도 선보이며 슬리먼은 지금 셀린느 클래식과의 연결을 적극 시도하는 중.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입비스트 커버를 장식한 에디 슬리먼, 셀린느 2019 봄 컬렉션 2컷,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중 3컷 (커버, 광고 외 사진=셀린느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입비스트 커버를 장식한 에디 슬리먼, 셀린느 2019 봄 컬렉션 2컷,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중 3컷 (커버, 광고 외 사진=셀린느 홈페이지)

디자이너마다의 매력으로 어필하며 인기는 더해왔지만 별개의 역사가 나열된 듯한 셀린느.

에디 슬리먼에 의해 셀린느 브랜드는 또 한번 리셋되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건 슬리먼이 셀린 비피아나의 올드 스타일에 꽂힌 덕분에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점.

셀린느는 에디 슬리먼과 함께 다시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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