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위성정당’ 꼼수에 허 찔린 연동형 선거법 '난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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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위성정당’ 꼼수에 허 찔린 연동형 선거법 '난맥상'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12.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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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꼼수' 막을 묘안 없어
민주당, "정치개혁에 부합했나" 진솔한 평가해야...보완사항 필요
소수파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선거법 개정' 멈출 필요있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 마침내 ‘여야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평당·대안신당)가 상정한 연동형 선거법 합의안이 12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통과가 예상되는 ‘4+1 선거법’은 국회 의석 구조를 현행(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 총 300석)대로 유지하되,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안이다.

12월 27일 선거법 합의안이 자유한국당의 반대속에서 표결로 통과되어도, 합의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후유증과 함께 더 큰 문제가 예상돼 씁쓸하다. 선거법 강행처리 시 곧바로 자유한국당이 엄포를 놓았던 ‘위성정당’ 창당이 착수되고, 통과된 선거법에 대한 위헌소송과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추진돼 여야공방은 종료될 것 같지 않다.

‘위성정당’이 현실화되면, 통과된 연동형 선거법의 취지는 사라지고 모든 정당이 비례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난립하는 ‘누더기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성정당의 출현은 민심을 왜곡하고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바꿔놓아 선거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이런 ‘위성정당’의 꼼수를 막아 낼 묘수가 없다는 점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위성정당 꼼수' 막는 묘수 없어

24일 자유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수없이 경고했지만, 반헌법적인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며 “이번에 통과를 획책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해괴한 선거법이 얼마나 반헌법·반문명적인지 차기 총선에서 만천하에 공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물론 선거법 합의안을 만든 ‘4+1 협의체’는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 선언에 대해 “반개혁적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게엔 무력하다. 민주당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비례한국당을 만든다는 것은 오직 한국당의 이익 외에는 어떠한 정치개혁에도 관심이 없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로운보수당 창당을 준비 중인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비례한국당은 정말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정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일종의 변태적인 정당이 나오도록 만든 건 민주당과 2중대의 책임”이라며 여당과 범여권으로 책임을 돌렸다.

정의당 유상진 대변인은 “반드시 실행에 옮겨서 자기 꾀에 넘어간 여우 마냥 한국당의 우스운 꼴을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비꼬았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을 창당하겠다며 탈법과 꼼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고, 대안신당 김정현 대변인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역행하려는 반개혁적 꼼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4+1 협의체’가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으로 비례한국당을 만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가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비례한국당이 등장하면, 시뮬레이션 상 비례대표 47석 중 30석 안팎을 확보하게 되어 정의당과 같은 소수당의 의석수는 종전대로 돌아간다.

비례한국당이 현실화되면 이에 맞서 비례민주당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 마침 24일 민주당 이원욱 원내수석이 비례민주당의 필요성을 거론한 문자메시지를 보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어서 민주당도 비례민주당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례한국당과 비례민주당이 경쟁하게 되면 정의당은 선거법 개혁의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 16일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여당이 ‘중진 구제용’으로 규정하고 반대해온 석폐율제를 정의당과 군소정당이 고집하면서 ‘누더기 선거법’이라는 국민적 비난이 일자 선거법 개정안 ‘원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이 꺼내든 선거법 개정안 원안 상정은 부결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선거법 개혁의 원칙에 충실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원안’을 대신하는 ‘4+1 선거법 합의안’이 타결되었다. 이렇게 타결로 급진전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동안 선거법 처리의 두 가지 걸림돌로 등장했던 ‘석폐율제’와 ‘위성정당’문제 중 석폐율제가 먼저 해결됐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소수정당이 선거법 개정안 원안을 상정하겠다는 민주당의 압력과 원안 상정시 부결을 우려하여 석폐율제를 스스로 포기했다.

물론 ‘선거법 개정안 원안’은 ‘지역구 축소’를 반대하는 호남지역 의원들을 유인하기 위해 비례대표에 석폐율제 도입을 당연시 했었다. 막판에 민주당이 석폐율제를 거부하고, 이것을 고집하는 것을 기득권으로 비판하였는데, 공격을 받은 정의당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의당은 애초부터 석폐율제를 거부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이 평소 석폐율제는 ‘중진 구제용’이라고 반대했던 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석폐율제가 노회찬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는 정의당의 당론이 되어 선거법 개정 원안으로 까지 갈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진상규명과 자성이 필요하다.

선거법 통과시 민주당의 과제와 반성할 대목은

그렇다면 선거법 통과를 앞두고 민주당의 마지막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최후 순간까지 자유한국당과의 합의안 처리 타진과 함께 이의 불발 시 엄포를 받았던 위성정당의 출현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처리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집권여당으로서 민주당은, 본회의에 상정된 ‘4+1 선거법 합의안’이 선거법 개정안 원안보다 ‘누더기 선거법’으로 전락되어서 차라리 통과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식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법안 통과의 마지막 순간과 그 이후까지 최선의 판단과 대안적 방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최선의 판단과 대안적 방책을 구하기 위해, 법안 통과여부와 상관없이 ‘4+1선거법 합의안’이 진정으로 정치개혁에 부합했는지에 대해 진솔한 평가를 전제로 난맥상을 보여준 연동형 선거법 합의안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후 보완사항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번 선거법이 어쩌다 ‘원칙적인 원안’에서 벗어나 ‘당리당략적인 누더기 선거법’으로 전락했으며, 마침내 위성정당의 부조리를 허용하는 허점을 보이게 되었는지를 깊이 따져볼 필요도 있다. 특히, 당초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호남지역의 지역구 축소를 명분으로 제시됐던 ‘225석 지역구 축소안’이 어떻게 막판에 현행 253석 지역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밥그릇 챙기기’로 후퇴하였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정말 어쩌다가 이번 연동형 선거법은 누더기와 밥그릇 지키기에 더해서 위성정당의 문제를 허용하는 난맥상을 보이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것의 핵심적 원인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던 측면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과 풍토가 다른 나라에서는 ‘정당간 담합전략’으로 연동형 비례제의 비례성이 훼손되고 불비례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에 신중한 도입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처리한 측면이 있다.

둘째는 공수처 법 등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선거법을 활용해 여야합의 처리의 관행을 깨도록 만든 측면이다. 정치권이 선거법의 합의처리의 관행을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4+1 협의체’가 다수결의 논리와 정파적인 이해관계로 소홀히 다룬 측면이 있다. 

2018년 11월 14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제도 개혁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 당시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알바니아(Albania)와 레소토(Lesotho)를 예로 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장점은 비례성의 증대지만, 비례성은 정당들의 담합 전략에 의해서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지역주의가 강한 지역구에서는 A정당이 다수제로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정당투표는 A정당의 연합 파트너인 B정당을 지지하도록 동원함으로서 정당 간 담합에 따른 불비례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여야 합의 처리가 '상식'

선거법은 ‘게임의 룰’로써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것이 ‘관행’이며 ‘상식’이었음에도 그것이 공수처법의 도구적 수단으로 연계되면서 이러한 원칙들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은 점이다. 이런 배경에는 상대가 동의하는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을 시 무리하게 다수파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보다는 멈춰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무시된 측면이 있다. 

칸트는 자신이 따라야 하는 행동준칙이 다른 사람의 인간적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수결이 아닌 보편성과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정언명령(“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을 주장하였다.

이 같은 칸트의 정언명령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파를 배제한 다수파 연합이 만든 합의 내용들이 곧바로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의사결정에서 다수파는 소수파가 동의하지 않는 무리한 결정을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고, 소수파가 동의하지 않을 때는 멈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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