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 더 악화될 수도”…‘부동산 PF 규제’에 억울한 증권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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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 더 악화될 수도”…‘부동산 PF 규제’에 억울한 증권업계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12.2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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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규제에 나서자 증권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금융(IB) 업무의 일환으로 부동산 PF에 자금을 대주면서 벌어들였던 수익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증권사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이 규제에 급급해 자기자본 규모 확대 등 업계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규제로 위험도가 높은 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는 금융당국이 지난 5일 발표한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익스포저) 건전성 관리 방안’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방안에는 내년 2분기부터 증권사의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가 자기자본 대비 100%로 제한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별도의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 비율이 없지만 앞으로 자기자본 이상으로 부동산 PF 사업에 채무보증이 불가능해졌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 반영되는 신용위험액 산정 시 부동산 PF 위험값도 기존 12%에서 18%로 상향 조정됐다. 유동성 위험 관리 측면에서 조정유동성비율(유동성자산에서 유동성부채‧채무보증의 합을 나눈 비율)이 100% 미만으로 하락한 증권사는 실태 점검을 해야 한다.

◆ 부동산 PF 주력한 대형 증권사…대응책 마련 분주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을 통해 발생할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금융사는 조달 자금에 대한 수수료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부동산 매입·개발 자금 등을 적절하게 배분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부동산 경기 악화로 PF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금융사가 이 부채를 떠안아야 하는 위험이 있다. 실제 은행들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PF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부동산 PF 사업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이번 규제의 주요 대상은 은행의 빈자리를 꿰찬 증권업계다. 증권사들은 지난 6월말 기준 전체 부동산 PF 채무보증 잔액(28조1000억원) 중 26조2000억원(93.2%)을 차지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최근 2년 새 IB 부문을 강화하면서 부동산 PF를 주 수익원으로 활용해온 영향이다.

특히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증권사들은 규제 도입 이후 수익구조와 실적에 대한 우려를 받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채무보증 규모가 자기자본을 웃돌아 위험노출액 축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채무보증(부동산 PF 포함) 규모는 42조4000억원으로 자기자본(58조4000억원)의 72.7%다. 자기자본 대비 채무보증 비율은 ▲메리츠종금증권(211.5%) ▲한국투자증권(94.7%) ▲NH투자증권(68.6%) ▲삼성증권(51.0%) ▲미래에셋대우(38.8%) 순이다. 각 증권사 PF 관련 부서와 리스크(위험) 관리 부서에서는 규제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 건전성 확보해 온 증권사들…규제 필요성 ‘의문’

그러나 2016년 금융당국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에 맞춰 자기자본을 늘려온 증권사 입장에선 이번 규제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투자 여력이 커진 만큼 부동산 PF 사업 규모가 확대됐다는 의견이다. 자기자본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채무보증액만 확대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국내 증권사 34곳의 자기자본은 지난 6월말 55조1342억원으로 2015년 말(37조3447억원)보다 47.6%나 늘었다.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삼성증권 등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증권사 8곳의 자기자본도 같은 기간 29조212억원에서 37조7758억원으로 30.1%나 증가했다.

증권사 부동산 PF 사업의 건전성이 악화됐다는 금융당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전성 가늠할 수 있는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2013년 13%에서 올 6월 말 1.6%까지 대폭 줄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NPL)도 같은 기간 16.9%에서 3%로 낮아졌다. 증권사들이 부동산 PF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동안 대출 건전성이 오히려 개선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연체율이 10%대에서 1%대로 급격히 낮아진 만큼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점, 즉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것만으로는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채무보증보다 위험도가 높은 부동산 지분 투자로 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NCR 산정 시 채무보증 신용위험액 산정 위험값을 확대하면 NCR 계산에 유리한 부동산 지분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PF 건전성 개선을 위한 제도가 실질적으로는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규제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 대형 증권사 의 부동산 PF 익스포져가 중소형 증권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언젠가 부동산 PF 규제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지만 그 강도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실무 부서에서도 현 상황에 비해 과도한 규제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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