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⑦ '압도적 인기'로 명품시장 주도하는 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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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⑦ '압도적 인기'로 명품시장 주도하는 루이 비통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12.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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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장인으로 명성 쌓은 루이 비통, 브랜드 토대 마련
모에 헤네시와의 합병을 통해 초대형 럭셔리 그룹 LVMH 탄생시켜
마크 제이콥스에 이어 니콜라 게스키에르가 가져온 변화의 바람
루이 비통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루이 비통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명품에 관심이 없어도 모를 수 없는, 가장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Louis Vuitton).

뛰어난 품질의 트렁크 메이커로 출발한 루이 비통은 LVMH그룹을 형성해 힘을 키우고 마크 제이콥스의 디자인으로 인기를 더하면서 세계적인 럭셔리 라벨로 성장했다.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며 경쟁 브랜드들을 따돌리고 있는 루이 비통은 이제 니콜라 게스키에르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 품질로 인정 받은 트렁크 메이커, 차별화 위해 문양 개발

프랑스 동부 작은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16세 때 일자리를 찾기 위해 파리로 향했고, 므슈 마레샬(Monsieur Maréchal)의 견습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레샬은 여행을 준비하는 상류층 고객들을 위해 옷과 귀중품을 잘 넣을 수 있는 박스 케이스를 제작해주던 장인. 나무를 다루어봤던 만큼 빠르게 실력을 쌓으며 고객 리스트를 늘려간 루이 비통은 1854년 결혼과 함께 자신의 상점을 가지기로 결심하고 방돔 광장 근처의 뇌브 데 카퓌신 4번가에 첫 매장을 열었다.

차별화된 퀄리티와 디자인의 트렁크로 승부를 건 루이 비통.

당시엔 무거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윗부분이 둥근 트렁크가 대부분이었는데, 일단 무게를 줄이기로 한 그는 포플러 목재에 면 캔버스를 씌워 사용했고, 1858년 캔버스 표면에 풀을 먹여 방수 기능을 첨가한 트리아농 캔버스(Trianon Canvas) 소재를 개발했다. 그리고 짐칸에 여러 개의 트렁크를 쌓아도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바닥과 상단 모두 평평하게 바꾸었다.

그의 트렁크들이 품격 있는 여행을 위한 필수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주문이 줄을 잇자 루이 비통은 1859년 매장과 별도로 파리 근교의 아니에르에 공방을 마련해 품질에 더욱 공을 들였고, 튼튼한 잠금 장치도 추가하며 고객들의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유명해진 만큼 모조품들이 생겨나는 부작용이 따랐는데,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특유의 문양을 넣기로 한 루이 비통은 1876년부터 베이지와 브라운 색 줄무늬를, 1888년부터는 루이 비통의 클래식 패턴으로 남게 된 바둑판 모양의 다미에(Damier)를 트렁크 위에 입혔다.

그리고 루이 비통의 뒤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도 1896년 또 하나의 새로운 문양을 내놓았는데, 바로 모노그램(monogram)이다.

모노그램은 루이 비통의 이니셜인 L, V와 단순화된 꽃, 별 그림이 반복, 배열된 디자인으로, 현재까지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패턴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와 함께 조르주 비통은 기차와 배를 이용하던 장기여행보다 자동차로 떠나는 단기여행이 많아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보다 작고 가벼운 백으로 제품 종류를 확대했다. 그 결과 191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상품 스토어를 샹젤리제 거리에 세웠고, 이후 세계 각지에도 매장을 늘렸다.

1936년부터 경영을 맡은 3대손 가스통-루이 비통(Gaston-Louis Vuitton) 역시 전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제품 다양화를 추구했는데, 캔버스 외에 가죽 등 다른 소재도 적극 활용하며 여행뿐만 아닌 일상에서도 필요한 지갑, 카드 홀더와 주얼리 등을 선보이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창기 아니에르 공방 모습, 빈티지 트렁크들의 이미지 컷, 모노그램 트렁크, 다미에 트렁크 2컷, 회색 트리아농 캔버스 트렁크 (사진=루이 비통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초창기 아니에르 공방 모습, 빈티지 트렁크들의 이미지 컷, 모노그램 트렁크, 다미에 트렁크 2컷, 회색 트리아농 캔버스 트렁크 (사진=루이 비통 홈페이지)

◆ 럭셔리 제국 LVMH의 탄생과 마크 제이콥스의 활약

1970년 가스통-루이 비통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유지되던 루이 비통 브랜드는 1977년부터 가스통-루이의 사위인 앙리 라카미에(Henry Racamier)가 이끌게 되었다.

국제 비즈니스 경험을 갖고 있던 그는 유통 전략을 새로 수립하고 세계 무대로의 확장을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샴페인과 꼬냑 전문 브랜드 모에 샹동(Moët & Chandon)과 헤네시(Hennessy)가 합해진 모에 헤네시와의 합병을 진행해, 1987년 ‘LVMH(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라는 명품 대기업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마찰이 계속 이어졌던 두 기업. 이때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을 인수하며 명품 분야에 뛰어들었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LVMH의 주식을 사들였고, 결국 1989년 1월 아르노에게 LVMH의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후 현재까지 아르노는 LVMH 울타리 안으로 명품 라벨들을 계속해서 들여오고 있는 중.

루이 비통의 성장 속도를 올리는데 성공한 아르노는 기성복 라인을 추가하기로 하고 1997년 뉴욕의 스타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를 영입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첫 패션쇼에서 모던하고 간결한 디자인으로 루이 비통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호평을 받았고, 매 시즌 새로운 아이디어와 캐주얼한 감각을 가미하면서 루이 비통을 패셔너블한 브랜드로 바꾸어놓았다.

제이콥스는 또한 루이 비통의 전통적인 문양에도 새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는데, 2001년 스티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와 함께 루이 비통 레터링을 낙서처럼 흘려 쓴 그래피티 시리즈를 발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02년엔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와 함께 밝은 컬러의 모노그램을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무라카미의 모노그램은 체리, 벚꽃, 만화 캐릭터와도 멋진 조화를 이루며 오랜 기간 사랑 받았다.

제이콥스의 협업 파트너는 미술계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2008년엔 힙합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손을 잡고 선글래스와 주얼리를, 다음해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와 슈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마크 제이콥스,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 핸드백을 선보이는 2005년 광고와 2002년 광고 2컷,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콜라보 백을 선보이는 2001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마크 제이콥스 인스타그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마크 제이콥스,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 핸드백을 선보이는 2005년 광고와 2002년 광고 2컷,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콜라보 백을 선보이는 2001년 광고 캠페인 (광고 외 사진=마크 제이콥스 인스타그램)

◆ 새로운 수장, 니콜라 게스키에르를 향한 파리 패션계의 기대

2013년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루이 비통과의 16년을 뒤로 하고 이별을 결심했다. 크게 보이던 그의 빈 자리는 니콜라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로 채워졌다.

게스키에르는 침체되어있던 발렌시아가(Balenciaga)를 혁신적으로 탈바꿈시킨 디자이너. 그가 발렌시아가와 헤어지자 루이 비통이 러브콜을 보냈고, 게스키에르는 새로운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이콥스의 도움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니, 프랑스 출신 게스키에르가 보다 예술적인 감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켜주기를 루이 비통은 기대한 것.

또한 제이콥스가 매력적인 의상들로 시선을 모았음에도 여전히 가방 류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게스키에르가 과연 의상에서 선전을 보일지 아니면 발렌시아가에서처럼 ‘잇 백’으로 히트를 기록할 지도 패션계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일단 그의 발렌시아가 룩에 매료되었던 셀럽 팬들이 그의 이직 소식을 듣자마자 이미 루이 비통의 고객이 된 가운데, 게스키에르는 1960년대 풍의 A라인 미니 코트, 드레스들과 함께 루이 비통에서의 첫 패션쇼를 경쾌하게 시작했다.

이날 그가 루이 비통을 위해 디자인한 첫 번째 백 ‘쁘띠뜨 말(Petite Malle)’도 무대에 함께 올랐는데, 루이 비통 전통의 트렁크를 미니어처로 만든 듯한 모양의 쁘띠뜨 말은 뜨거운 호응 속에 다양한 버전으로 전개되며 새로운 시그니처로 안착했다.

올 가을 시즌엔 1980년대 스타일의 록 시크를, 내년 봄 시즌을 위해선 1970년대 복고풍의 블라우스와 롱팬츠 룩을 제안하며 매 시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스키에르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온라인 게임과의 결합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6 봄 시즌 광고 캠페인에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데 이어 올해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을 위한 스킨을 제작하고 ‘LVx LOL’ 캡슐 컬렉션까지 내놓았다.

게스키에르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루이 비통의 남성복에도 이어졌다.

2017년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놀랄만한 성과를 얻어낸 루이 비통은 스트리트 스타일의 명품 라벨 ‘오프-화이트(Off-White)’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영입해 본격적으로 젊은 층 공략에 나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니콜라 게스키에르, 루이 비통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20 봄 컬렉션 2컷,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속 쁘띠뜨 말, 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 광고 이미지, 루이 비통의 LOL 스킨 (광고 외 사진=루이 비통 홈페이지와 게스키에르 인스타그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니콜라 게스키에르, 루이 비통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20 봄 컬렉션 2컷,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속 쁘띠뜨 말, 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 광고 이미지, 루이 비통의 LOL 스킨 (광고 외 사진=루이 비통 홈페이지와 게스키에르 인스타그램)

브랜드 설립자 루이 비통이 운영했던 아니에르 공방은 지금까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각종 스페셜 오더들을 직접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이 중심을 지키는 가운데 루이 비통 브랜드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지휘에 따라 세력을 확장하며, 리서치 기관들이 발표하는 명품 브랜드 자산 평가 순위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만큼, 가장 많이 위조된 명품 1위이기도 한 루이 비통.

설립 초기부터 모조품을 의식하며 각종 문양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비통의 가짜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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