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CEO]② ‘새벽배송’ 시대를 연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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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CEO]② ‘새벽배송’ 시대를 연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12.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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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사진=연합뉴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올해 유통업계 키워드 중 하나는 ‘새벽배송’이다. SSG닷컴‧롯데홈쇼핑 등 유통 대기업에서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미 ‘로켓배송(자정 전 주문 시 이튿날 배송)’으로 온라인쇼핑업계에 돌풍을 불러일으킨 쿠팡까지 새벽배송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유통업계 강자들 사이에서도 ‘원조(元祖)’는 굳건했다. 2015년 신선식품 새벽배송서비스 ‘샛별배송’을 처음 선보인 마켓컬리 이야기다. 샛별배송은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오전 7시에 현관 앞으로 상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샛별배송이 시작된 지 4년 만에 새벽배송 서비스 시장은 연 4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만큼 경쟁자도 늘어났지만 마켓컬리는 점유율 40%를 유지하며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켓컬리 매출은 2015년 30억원에서 지난해 1560억원으로 불었다. 샛별배송 건수는 같은 기간 9만여건에서 하루 평균 1만여건으로 증가했다. 현재 샛별배송 가능 지역은 서울과 경기·인천 일부에 불과하지만 하루 주문량은 3만~4만건에 달한다. 마켓컬리 회원수는 300만명이나 된다.

◆Performance(성과)

마켓컬리는 유력한 국내 12번째 유니콘 기업(자산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후보로 꼽힌다. 지난 4월 기존 투자처로부터 1000억원을 추가 투자 받았고 한 달 뒤 중국 투자전문회사 힐하우스캐피털에서 35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마켓컬리의 기업가치는 6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마켓컬리를 예비 유니콘기업에 선정한 바 있다. 국내 유통업계를 이야기할 때 더 이상 마켓컬리를 빼놓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마켓컬리를 이끄는 건 글로벌 투자은행(IB)‧컨설팅기업 출신 김슬아(36) 대표다. 김 대표는 민족사관고 졸업 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보스턴 소재 웰슬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후 골드만삭스 홍콩, 맥킨지 홍콩, 싱가포르 테마섹, 베인앤드컴퍼니 서울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골드만삭스에서 승진하는 날 사표를 냈다는 김 대표의 일화도 유명하다. 앞으로 1년간 편하게 일하라는 상사의 말에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의 연봉은 그냥 억대 연봉도 아닌 수억대 연봉이었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떠나 유통업계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였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판매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는 성인이 된 후에도 늘 잘 챙겨먹는 일에 신경 썼다. 평소 채소, 고기, 과일 등 품목별로 좋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마트를 순회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찾으려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양질의 식재료를 한 곳에서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켓컬리를 만들었다. 마트마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을 다 갖다놓고 고객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마켓컬리는 직접 신선한 식재료를 선별해 가장 완벽한 상태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식재료 큐레이션 서비스인 셈이다.

◆Leadership(리더십·경영철학)

마켓컬리 상품 판매 과정을 보면 김 대표의 이러한 경영 철학이 묻어난다. 상품 자체의 경쟁력은 단연 품질이다. 김 대표는 고품질 상품만 취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상품 기획자(MD)들은 산지를 방문해 상품 생산 과정을 꼼꼼히 살펴 판매 후보에 올린다.

매주 열리는 상품위원회에서는 MD뿐 아니라 마케팅, 고객서비스(CS) 부문 직원들이 함께 상품 출시 여부를 결정한다. 이 위원회를 거쳐야만 홈페이지에 상품을 올릴 수 있다. 상품 출시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1년가량이 걸리기도 한다.

상품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매일 검수팀이 상품 질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판매를 포기한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켓컬리와 거래를 처음 하는 생산자들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대신 김 대표는 생산자에게 믿음을 주기로 했다. 기준만 통과하면 마켓컬리와 오래 거래할 수 있었고 100% 직매입 원칙과 무(無)반품 원칙을 고수하며 생산자의 재고 부담을 덜어줬다. 생산자들로서는 마켓컬리와의 거래를 선호할 만한 동기가 되는 셈이다. 생산자들과의 신뢰를 통해 마켓컬리가 단독으로 판매하는 ‘컬리온리’ 상품도 출시할 수 있었다.

마켓컬리 홈페이지.
마켓컬리 홈페이지.

샛별배송 역시 신선한 식재료, 즉 좋은 상품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김 대표의 의지로 시작됐다. 대형마트는 농산물 수확 후 평균 48시간 이후 진열하지만 마켓컬리는 골든타임을 24시간으로 잡았다. 가장 신선한 상태로 배송하려면 새벽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켓컬리의 모든 유통과정은 각 상품별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풀 콜드 체인(Full Cold Chain)’으로 이뤄진다. 상품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김 대표가 창업 초기부터 고수해 온 시스템이다.

◆Episode(조직애·인재관)

김 대표는 이러한 마켓컬리의 유통 과정이 가능한 핵심 경쟁력으로 ‘데이터 분석’을 꼽는다. 상품을 수확하면서부터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는 항상 데이터가 함께한다. 데이터를 통해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상품을 매입, 판매하기 때문이다. 

직매입‧무반품 원칙 아래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 재고·폐기 비용이 늘어난다. 상품의 신선함을 위해 먼저 판매한 뒤 상품을 수확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밤에 오징어를 잡아 새벽에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요·생산 등의 추산 과정이 어긋나면 고객에게 상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데이터 분석 결과가 정확하면 실패 비용이 줄고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 상품 가격도 낮출 수 있다. 이는 고객을 끌어들이고 데이터 확보의 기반이 된다. 데이터가 많아지면 데이터 분석 결과는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선순환 효과인 셈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데이터 관련 투자는 비용이 아닌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수집‧분석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이 조직 곳곳에 스며들면서 직원들도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창업 초기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이 이뤄지지 않던 시절 직원들 모두 문제점을 발견하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대응했다.

직원이 400명으로 늘어난 지금도 김 대표는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살핀다. 주변 지역 맛집 탐방으로는 부족하다. 전국으로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닐 정도는 돼야 한다.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부의 마음’처럼 성실함과 정직함은 기본이다.

김 대표는 새벽에 직접 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기사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을 쏟았다. 배송기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노동 환경과 처우를 고민했다.

배송기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고정적이지 않은 급여였다. 통상 택배 배송기사들의 급여는 배송 건당 비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배송 건수가 적으면 급여도 그만큼 줄어든다.

김 대표는 배송기사와 매월 일정 수준의 급여를 보장하는 고정 급여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새벽배송 서비스의 지속하려면 배송기사 역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했다.

◆Challenge(도전)

올해 마켓컬리의 눈에 띄는 행보 중 하나는 광고모델로 배우 전지현을 발탁한 것이다. 전지현이 마켓컬리의 고객이라는 소식을 들은 김 대표가 마케팅팀 직원의 인맥을 통해 섭외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고객층인 30대 육아를 하는 주부이면서 식재료 등 먹거리에 관심을 가진 최적의 모델이었다.

김 대표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일명 ‘전지현 효과’는 두 말할 것 없었다. 마켓컬리 광고에 전지현이 등장하자마자 홈페이지 동시접속자가 평균보다 10배나 증가했다. 서버 다운을 막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고생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배우 전지현이 출연한 마켓컬리 광고. 사진제공=마켓컬리
배우 전지현이 출연한 마켓컬리 광고. 사진제공=마켓컬리

물론 김 대표가 갈 길은 멀다. 가장 우려를 받는 건 마켓컬리 실적이다. 매출이 증가하는 동안 손실 규모도 늘어났다. 2015년 54억원 영업손실을 냈으나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는 337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 또한 61억원에서 350억원으로 불었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적자의 형태를 봐달라고 한다. 물류‧데이터‧인력 등 투자성 비용이 적자로 잡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업 효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는 만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수익성 확보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주문량이 하루 1만건으로 늘어난 지난해에도 재고폐기율은 1%대를 유지했다.

환경 문제도 김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상품을 신선하게 배송하기 위해 포장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 문제는 이 포장재들이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선 김 대표는 지난 9월 ‘올 페이퍼 챌린지(All Paper Challenge)’,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교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박스 안쪽의 포장재는 물론 비닐 파우치, 박스 테이프, 완충포장재도 모두 종이로 변경한다. 냉매도 젤 아이스팩에서 100% 워터팩으로 바뀐다.

‘트리플래닛’이라는 회사와 함께 마켓컬리 상품을 배송받은 박스를 문 앞에 내놓으면 다시 수거해 판매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수익금은 초등학교 내 숲을 조성하는 데 쓰인다. 

◆Quotation(어록)

“사과 농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과수원은 한 20년 해야 잘 한다고 한다. 40, 50년은 기본이다. 단기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으려 한다.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는 농부들의 성실함에서 오는 결실들을 배웠다” (2019.04.26. 한국경제 인터뷰)

“배수진을 치면 안 된다. 극한까지 다다른 사람은 악수(惡手)를 둔다. 예를 들어 안 좋은 품질의 상품까지 내놓는 것이다. 여유가 없을 때 내린 잘못된 판단은 전부를 망가뜨린다” (2019.06.11. tvN ‘물오른 식탁’ 방송에서)

“투자자와 어떻게 보면 연애 기간처럼 서로 가치관 등 많은 것을 공유한다. 단순하게 돈만 받으려면 빨리 진행할 수 있지만 보통 6개월 간의 대화를 거친 뒤 투자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투자했던 분들이 추가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2019.07.11. 더인베스터와의 인터뷰)

“고객에게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한 가지 불만이라도 접수되면 100으로 덤빈다. 우리에겐 하나의 불만이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쇼핑 경험이기 때문이다” (2019.09.23. 포브스 인터뷰)

“처음부터 돈을 버는 회사가 이상하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당연히 투자가 필요하고 데이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문에 대한 투자로 적자를 내고 있다. 적자의 형태가 중요하다. 장기적인 투자 기간이 끝나고 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2019.09.24.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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