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연동형 선거법, 국회 전원위원회 숙의투표로 결론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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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연동형 선거법, 국회 전원위원회 숙의투표로 결론내자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12.13 16: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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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여야의 합의처리가 아닌 ‘4+1협의체’의 예산강행 처리로 결국 파행국회로 막을 내렸다.

예산처리에서 패싱을 당한 자유한국당은 ‘날치기’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20대 국회의 이 같은 파행은 그동안 목이 달도록 강조해왔던 ‘국회선진화’ 그리고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숙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줘서 씁쓸함을 자아낸다.

작동 실패한 국회선진화법, 멀어진 숙의민주주의

2012년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처리와 물리적 충돌 방지, 필리버스터를 통한 소수의견 개진 기회 보장, 패스트트랙을 활용한 효율적인 법안 심의 도모 등 개정 취지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살리기 힘들었다는 게 입증되었다.

이러한 파국의 배경에는 지난 4월 30일 여야의 육탄전 속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연동형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이 있었다. 이런 파행사례는 국회선진화법의 작동실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국회선진화법의 원래 취지는 ‘빠른 표결처리’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에 따른 원만한 대화와 타협’이었다.

숙의 기간을 갖자는 ‘패스트트랙’이 그 취지와는 정반대로 대화와 타협의 시간을 건너뛰는 ‘패싱 트랙’으로 악용되었다. 즉, 여야의견이 맞설 경우 대화와 협상을 통해 타협안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허송세월을 보내는 쪽으로 직무가 유기되었다.

즉, ‘패스트트랙 지정(또는 안건조정위) 회부로 시작해 아무런 협상 없이 경과 기간만 소요하다가 경과 기간 종료 후 자동 부의에 따라서 일방적인 표결(또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게 되는 ‘파국의 경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파국의 경로는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 소수당의 육탄 저지로 상징되는 ‘동물 국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무적인 협상 기간을 설정한 국회선진화법의 원래 취지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안건조정위 심의 기간(최장 90일)과 패스트트랙 심의 기간(상임위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60일 등 최장 330일)은 협상을 위한 시간이 아닌 그저 때우기만 하거나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식물국회’의 시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경로와 같은 맥락에서 필리버스터도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무제한 토론’에서 ‘의사진행방해’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필리버스터는 당초 다수파의 일방적인 강행처리가 아니라 소수파에게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서 그들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여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숙의의 시간을 갖자는 취지였다.    

국민들은 비록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는 실패했지만 선거법과 공수처 법안을 처리하는 임시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의 원래 취지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당연,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권의 책임있는 태도이다. 

황교안 당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청 입구 로텐더홀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황교안 당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청 입구 로텐더홀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선거법, 검찰개혁법안 놓고 여야 대치 극심해질 우려

민주당이 이끄는 ‘4+1협의체’는 예산안의 강행 처리에 이어서 임시국회에서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자유한국당이 패싱을 당하는 상황이어서 여야 대치와 총력전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질 전망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2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좌파독재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고 예산안 날치기 처리는 일종의 발맞추기 예행연습이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공수처법도 이렇게 날치기 처리하겠다는 예고로 보인다”고 비판하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황교안 대표가 “의회쿠데타가 임박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이 국회선진화법은 자유한국당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며 “더 이상 억지 부리지 말고 필리버스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응대하라”고 요구했다.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은 13일 ‘4+1 협의체’의 법안 강행 처리 움직임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막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12월 13일 선거법과 공수처 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거듭 예고한 바 있다. 특히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경우 똑같이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당정책조정회의에서 “검찰개혁과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더이상 대화와 타협만으로 정국을 해결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제 민주당도 우리의 길을 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선거법 등이 쟁점 법안인 만큼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거나 방해하지 않겠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되면 우리도 당당히 토론에 임하겠다”며 “토론을 통해 검찰개혁과 선거제 개혁이 왜 필요한지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호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선거법 통과에 앞서 물리적 충돌과 필리버스터 등 많은 험로가 예상된다. 특히, ‘4+1 협의체’ 내부도 본회의에 상정할 선거법 합의안을 놓고 ‘연동형캡과 석패율제’ 등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50석 중 절반인 25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고 나머지 25석은 현행 선거법대로 병립형으로 배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야당들은 “캡을 씌우는 안은 누더기 선거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비례대표 1석을 주는 ‘봉쇄 조항’을 두고도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은 군소 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기준을 5%로 상향하자고 주장했지만, 정의당이 반대하고 있다.

필리버스터 인정하고 '숙의 투표'로 결론내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여야 정치권이 국회파행을 막고 협의하여 처리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 어느 때보다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의 책임있는 행동과 지혜가 필요하다.

여야의 팽팽한 대치국면 속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및 정의당이 필리버스터 강행과 맞대응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과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진행하더라도 표결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서 합리적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여야 모두가 무제한 토론으로 필리버스터를 고려하고 있는 만큼, 이것을 긍정적인 분위기로 반전시켜서 변형하는 안으로 ‘국회 전원위원회’를 소집하여 여한이 없도록 함께 토론하고 경청하면서 ‘숙의투표’로 결론을 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의원들은 당리당략적인 당론을 떠나서 분단과 주변 강대국 속 ‘대통령 직선제’를 위협하는 연동형 선거법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숙의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당제와 내각제 친화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분단과 주변 강대국 속 신속하고 효율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87년 민주화의 성과인 “대통령 직선제”의 효과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국익과 공공성보다는 이익단체와 유사한 ‘이익정당’들의 파당정치를 부추기는 측면을 숙고해야 한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므로 제1야당을 빼고 강행 처리할 경우 선거 불복 등 부작용이 큰 만큼, 민주당이 표결처리에 앞서 국회 전원위원회를 통해 충분한 토론을 진행하고 표결처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숙의민주주의에 입각한 ‘숙의투표’를 실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숙의민주주의는 다수파와 소수파간에 고정된 선호와 이익을 ‘의원들 간 열린 학습과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당론으로 고정된 선호(이익, 정체성)를 가정해 놓고 절충과 타협을 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의원들간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학습과정을 진행해 고정된 선호가 새로운 선호로 수정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숙의투표’는 투표 결과보다는 투표하기 전에 주요 쟁점을 토론해 이해 당사자 간 충분한 정보 공유와 공감 및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설령 그 투표 결과가 자신의 이해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해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유투표, 교차투표도 할수 있게 하자

선거법의 본회의 표결에 앞서서 국회 전원위원회를 소집하여 의원 전체가 참여하는 무제한 토론을 거쳐 국회의원 각자의 양심에 따른 ‘자유투표’와 여야간 ‘교차투표’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안에도 연동형 선거제를 반대하는 분들이 있고 자유한국당 안에도 연동형 선거제를 찬성하는 분들이 있다.

이들의 자유로운 선호가 표결에 반영되도록 여야 지도부는 자유투표와 교차투표의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자유투표’는 당론으로 입장을 강제하지도 않고, 당 지도부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이유로 공천 불이익의 위협을 가하지 않는 게 기본 상식이다. 오로지 동료 국회의원들의 양심과 의원자율성에 따른 판단을 믿고 숙의의 결과에 승복하는 책임있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는 각종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거나 위원회가 제안한 의안(議案) 가운데 정부조직에 관한 법률안이나 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률안에 대해 의원 전원이 심사할 수 있도록 만든 숙의민주주의의 전형이다.

의원 전원이 참석한다는 점에서는 본회의와 같지만 기능이나 성격은 다르다. 본회의에서는 의안을 최종 확정하지만 전원위원회는 각종 위원회 등을 거친 의안에 대한 수정안을 의결할 수 있다. 이것은 본회의에선 법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르는 의원들이 상임위 의견을 존중하거나 당론에 따라 이를 그대로 추인하는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숙의민주주의의 꽃에 해당한다.

여야 정치권은 양심에 따라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파행국회를 막고 대화와 타협으로 선거법을 합의처리하라는 국민의 기대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파행국회의 주범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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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monkeystar 2019-12-13 17:28:50
일종의 취업청탁이고 불공정한 일감몰아주기인가?
원하는 것을 주면
너희들의 국가 단기계약 취업자가 늘 수 있도록 하여
세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