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필요한 건 ‘royalty’가 아니라 ‘loy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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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게 필요한 건 ‘royalty’가 아니라 ‘loyalty’
  • 김이나
  • 승인 2015.10.23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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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충북 청주 남이초등학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전원 시상제를 실시했다고 한다. 전원 시상제는 담임 교사가 반 학생 모두를 시상하는 것으로 성적에 상관없이 학생들의 꿈과 개성에 맞게 상을 수여했는데,‘ 바름이상’, ‘리더상’, ‘체육왕상’, ‘어린이 신사임당상’, ‘밝은 미소상’ 등 아이들 각각에게 어울리는 특색 있는 상장을 수여해 학생들에게 기쁨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고 한다.(http://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335)

 

과거에는 주로 졸업식 때 우등상, 모범상, 교장상 등을 소수 아이들에게만 시상했다. 졸업장 외에 그나마 개근상이라도 건지면 훌륭했고, 그나마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짜장면을 먹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 셈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 우리 부모들은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고등학교에 가면 더 잘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엔 이런 광고 문구도 통하지 않았나.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어쨌든 공부는 못해도 솔선 수범하는 아이들,눈에 띄지 않아도 묵묵히 궃은 일을 도맡아 하는 아이들이 상을 받는 다는 건 참 바람직하다. 칭찬 한 마디로는 사실 부족하다. 상을 주어야 한다.

상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인정받는 것이고 그 보상을 받는 것이다.

 

상(賞) 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 이다.

즉 거꾸로 말하면 그런 증서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받은 사람은 “뛰어난 업적,잘한 행위”가 인정받는 것이다.

 

나이가 솔찬히 들다보니, 주변에 결혼 20년을 채우는 친구들이 많아진다. 드물게는 25주년이 된 친구들도 있다. 다들 근사한데서 외식을 하거나 여행도 가고, 추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도 기획하고 서로에게 선물도 주고 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 어찌 됐든 잘 버텨왔지 않은가.

 

한데 가끔 남자동창들의 볼멘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왜 남자가 늘 선물을 준비해야하는 거야? 와이프는 뭐 해 줄거냐고 한 달 전부터 조르는데…평소에도 신용카드로 옷이며 가방이며 늘 사는데 뭐가 더 필요하단건지..”

 

반면 여자동창들은 다르다.

“이제껏 살아줬는데. 알 반지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냐? 아님 명품 백이라도. 호텔 가서 근사한 디너도 즐기고..다른 남편들은 미리 미리 준비하던데.”

 

 

집에 가서 배우자 앞에서 대놓고 어깃장을 놓지는 못하니까 이렇게 친구들에게 푸념을 하는 것 같다. 남편의 말도 맞고 아내의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일단 여자 입장에선 이런 것이다.

 

요즘 20~30대들은 프로포즈 때부터 대단한 이벤트를 한다고 하는데, 예전만 해도 프로포즈 받은 여자는 정말 드물었다. 손 한 번 잡혔다가(?) 결혼 까지 간 커플도 많았고 커플로 주변에 소문이 나면 “국수는 언제 먹여 줄꺼야”라는 - 지금 젊은 세대가 들으면 참 썰렁한 - 덕담을 한 백번쯤 듣고 나서 “다음 주에 양가 상견례 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랬던 까닭에, 우리 중년 여성들은 결혼기념일만이라도 좀 떠받듦을 당해보자, 닭살쯤은 각오할 테니 좀 달달한 멘트라도 해봐라. 하는 마음인 것이다.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 내 아이를 낳아줘서 고마워.

“난 평생 당신을 여왕처럼 모시고 살겠어” 머 이런 류의 멘트들 말이다.

 

이런 멘트와 함께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아내에게 내민다면 이건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앞에서 말했지 않은가. 상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인정받는 거라고.

 

그런데 남편 입장에선 왜 그런 상을 아내만 받아야 하는지 불만인거다.

 

‘나도 지금껏 잘 참고 살아줬는데... 아침 밥 안 줘도 눈 감아주고, 세탁소에 드라이 맡긴 양복을 안 찾아와도 참아 주고, 초저녁 부터 머리 아프다며 코 골고 자는 아내가 잠이 깰까 조용히 침대로 기어들어갔는데... 억울해!’

 

 

좋다.그럼 따져보자.우리가 서로 상을 받을 만 한지. 물론 비교 할 대상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옆집 호동이 아빠, 초등학교 동창 미선이가 비교의 대상이 되선 절대 안 된다)

 

치사하게 계산기를 꺼내 들지는 말자.

계산기는 집어넣고 한 번 시간여행을 해보는 거다.

 

남편이 상사에게 스트레스 받을 때 아내가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아내가 아이들 교육 문제로 속앓이를 할 때 남편은 힘이 되어 주었는지.

 

주말마다 밖으로 도는 남편 탓만 했지 취미생활을 함께 하려고 시도는 해 봤는지,

 

가사 노동에 지친 아내를 위해 청소를 하고, 부엌에 들어가 간단한 요리를 해본 적은 있는지.

 

아주 후하게 점수를 준다면 분명 그 부부는 상을 받을 만한 부부일 것이고, 반면 배수진을 치고 상대방의 점수를 박하게 주었다면 이 부부는 결코 상을 받을 수 없는 부부일 것이다.

 

그런데도 서로에게 상을, 아니면 적어도 ‘로열티(royalty)’를 요구하는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부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인정받는 것이고 보상을 받는 것임엔 틀림없지만 우린 부부니까 ‘증서나 돈이나 물건’보다 다른 걸 요구하자. 또 다른 로열티(loyalty) 즉, 충성(충실)을 보여달라고.

내가 병들고 아프고 위로가 필요할 때 내 곁을 지켜줄 배우자의 존재는 그 어떤 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에게 필요한 건 로열티(royalty)가 아니라 로열티(loyalty)다.

 

김이나 ▲디보싱 상담센터 양재점/ 이혼플래너  ▲서울대학교 대학원졸 (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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