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 이해하기①치료가 먼저인가 평가가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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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 이해하기①치료가 먼저인가 평가가 먼저인가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1.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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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의사,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치료 전념
현대의학 발달, 연명치료 결정을 의사가 판단해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연명의료결정법 재정 계기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생의 마지막을 대부분 병원 중환자실에서 맞이하게 된다. 일반인은 그것을 자연스러운 사망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의사로서는 질병으로 인하여 병사라고 보게 된다.

예컨대, 나이가 90이 넘은 분이 열이 나고 몸이 부어서 의식이 저하된 상태로 병원을 찾게 된다면, 일반인들은 노인이 이제 돌아가시겠구나라고 짐작을 하지만, 의사는 방사선 촬영을 하고 혈액 검사를 하면서 폐부종으로 폐렴이 왔고, 신장 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투석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의료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교육받게 됐다.

의사 역할, 생명을 연장할 것인가 Vs 진료 중단을 결정할 것인가

하지만, 현대 의료의 발달로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기존 의료가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면,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의료의 발달은 환자를 먼저 평가하고, 질병을 치료할지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치료 결정 이전에 환자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거나 의학적 상태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다면, 의사는 생명 연장이라는 기존의 가치를 충실하게 수행하였음에도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의료집착적' 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진료중단한 의사가 처벌받는 보라매병원 사건

우리 사회와 의료계에 이 문제가 큰 반향을 일으킨 계기가 된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겠다.

첫째 사건은 1997년 겨울에 발생한 소위 ‘보라매 병원’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대법원 2002도995 판결)

1997년 12월 4일,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58세의 남자가 실려왔다. 넘어지면서 발생한 뇌출혈로 인하여 의식을 잃고 119 구급차에 실려온 환자였다. 의료진은 응급 수술을 실시했는데, 수술 중에 다량의 수혈이 있었지만, 무사히 수술은 마쳤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환자에게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는 바람에 의식이 회복되지 않았고 회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음 날 오후 환자 부인이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응급실로 데려올 때는 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데려왔고 긴급한 상황이라 부인의 동의 없이 수술이 진행된 것이었다.

담당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다며 퇴원을 만류했지만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담당 의사는 현재 환자의 상황(퇴원 시 사망 가능성)을 환자 부인에게 주지시킨 다음 귀가서약서(환자 또는 환자 가족이 의료진의 의사에 반해 퇴원할 경우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환자 또는 가족이 책임지겠다는 내용)에 서명을 받도록 지시했다.

전공의는 이 지시에 따라 12월 6일 환자 보호자로부터 서명을 받았고, 당일 오후 2시 병원 구급차로 환자를 퇴원시켰다. 당시 환자는 간이형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호흡을 보조하고 있었으나, 집에 도착한 후 환자 가족의 요청에 의하여 이를 제거했으나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부인에 대해 살인죄의 정범을 인정했고, 담당 의사에 대해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했다. 법원은 치료를 계속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 퇴원과 관련해 살인죄로 처벌받게 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의사들은 검찰의 기소과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의료계는 이 사건 이후 연명 치료 중지 문제를 고민하였고, 윤리 위원회가 대형 병원에 자발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연명 치료를 중지하지 않으면 의사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연명치료 중지해달라고 의사가 소송당한 '김할머니 사건'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연명 치료를 중지해 달라는 소송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2008년 발생한 소위 ‘김 할머니’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대법원 2009다17417 판결)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18일 폐암 진단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기관지 과다출혈로 인한 기관지 폐쇄로 호흡 뇌손상이 와서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했으나 병원 측은 의식을 회복하고 살아날 확률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환자 측은 이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에 대비해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 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퇴원했으나, 자가 호흡이 돌아오면서 수개월동안 생존하다 사망했다.

두 사건을 거치면서 의료계는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자에 대한 평가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2013년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입법을 권고했으며 2015년 국회에서 여러 입장을 가진 법안이 제안됐다. 의료계에서도 사회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2016년 최종적으로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 시행됐다.

이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법률 시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됐다. 다음 편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의 내용과 문제점들을 살펴보겠다. ②에서 계속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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