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인지언어학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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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인지언어학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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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세상 보는 방식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인가
미국 보수진영, 진보진영보다 정치담론 잘 구성...모든 쟁점을 프레임화 했기 때문
“타다는 불법”이라 언론이 쓰면 국민은 그렇게 생각할 밖에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와이즈베리 펴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와이즈베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지난 3주 동안 난 ‘세대 담론’을 담은 책들을 소개했다. 그 책들이 주장하는 각각은 ‘청년은 시대의 희생자다’, ‘386세대가 모든 걸 독점한다’ 혹은 ‘모든 세대 담론은 정치적이다’라는 걸로 요약할 수 있다.

세 권 책 모두 ‘세대 담론’을 이야기하면서도 관점들은 각기 달랐다. 청년 관점에서 본 세상, 기성세대 비판 관점에서 본 세상, 그런 관점들을 비판하면서 본 세상 등 모두 다른 세상을 이야기했지만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다. 저자가 ‘세대’를 바라보는 방식 즉 ‘프레임’이 그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세대 담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뉴스에 담겨서 그만의 목적을 위해서 작동한다.

프레임(Frame)을 물체가 아닌 정신적 개념으로 정의한 책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대표적이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로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정치 담론의 프레임 구성에 대한 전문가로 현재 UC버클리 교수로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책에서 미국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보다 정치 담론을 잘 구성해 왔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를 1960년대부터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에 대응하는 두뇌집단을 키운 것에서 찾았다.

저자는 보수 진영이 그 두뇌집단을 통해 프레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모든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법을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는 현상을 공략했다고.

책에서는 그 대표적 예를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든다. 최근의 예는 트럼프에게 투표한 백인 블루칼라 계층에서 찾을 수 있다.

2004년에 나온 이 책은 당시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에서도 참패한 진보 진영에 많은 깨달음을 줬다. 그 결과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재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저자는 공평하고 도덕적이라고 평가받는 진보 진영의 정책들이 보수 진영의 프레임 공격으로 유권자들에게 오해를 사는 과정들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창시한 인지언어학을 적용한다.

 

"매일 터져 나오는 수많은 뉴스가 우리에게 의미를 주려면 우리 뇌에 이미 자리 잡은 개념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매일 터져 나오는 수많은 뉴스가 우리에게 의미를 주려면 우리 뇌에 이미 자리 잡은 개념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조지 레이코프에 의하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극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언제부턴가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국기가 아니라 극우 집단을 일컫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억지 주장이 어느덧 프레임으로 자리 잡아서 우리 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작용한 것이다. 그 세력이 의도했든 안 했든 엄청난 결과를 끌어냈다.

이렇듯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 태극기의 사례처럼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까지도 바꾸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라고 말한다. 어떤 생각이 뇌에 작용하여 정착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프레임 재구성은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접근하여 이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이 대중의 담론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무의식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설명처럼 단순한 과정은 아니다.

 

“신경과학에 의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개념들, 우리의 사고 구조를 이루는 장기적인 개념들은 우리 뇌의 시냅스에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개념들은 누가 사실을 알려준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47쪽)

예를 들어 매일 터져 나오는 수많은 뉴스가 우리에게 의미를 주려면 우리 뇌에 이미 자리 잡은 개념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과 맞지 않는다면 우리 귀에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태블릿이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 탄핵이 불법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사실과 증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에 의하면 정치적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저자는 미국에서 보수 진영 지지층이 35~40%이고, 진보 진영 지지층이 35~40%라고 봤다. 나머지 20~30%는 중도로 봤다. 한국도 엇비슷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도가 선거의 방향을 결정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도가 중요한 이유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들의 성향을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로 정의했다. 이들은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의 정책 방향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를 교차해서 지지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을 잘 보살피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레이코프.사진=georelakoff.dom
조지 레이코프.사진=georelakoff.dom

조지 레이코프는 책 전체에서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한다. 그의 바람은 다양한 가치를 제각기 외치는 진보 진영이 한데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정책과 프로그램만을 강조한 진보 세력의 지난 오류를 지적한다. 이제부터는 가치와 원칙과 방향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적 담론에서는 가치가 정책을 이기고, 원칙이 정책을 이기고, 정책 방향이 구체적 프로그램들을 이긴다.” (241쪽)

 

저자는 진보 진영이 가진 개념들이 그에 반대하고 방해하는 어떤 것보다 상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중들 머릿속에 그 개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책 전체에 걸쳐서 외친다. 당장에 쓸 슬로건, 혹은 구호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정치권과 그 주변에서 퍼뜨리고자 하는 프레임을 잘 파악하고 대중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인과 기득권 세력들에게 프레임을 만들어서 갖다 바치는 모습이다.

이 책 제목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은유하는 바가 그런 모습이다. 교수가 강의 중에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학생들은 이미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한국으로 가지고 오면 어떤 모습일까.

언론이 ‘종북 좌파 정권’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한 순간 이미 국민은 이 정권과 종북 좌파를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흘린 “타다는 불법”이라는 의견을 언론에서 받아쓰면 국민은 타다가 불법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지난 10여 년 한국에서 선거철이면 찾아오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정치계나 언론계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숨겨진 프레임을 바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나는 원래 내년 총선 즈음 이 책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왠지 지금 쓰고 싶어졌다.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조지 레이코프가 프레임이 작동하는 구조를 쉽게 설명한 책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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