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대통령 직선제' 위협하는 연동형 선거법에 ‘숙의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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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대통령 직선제' 위협하는 연동형 선거법에 ‘숙의투표’하자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11.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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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통령 직선제' 무너뜨릴 위험 내포
이라크파병 결정때 '숙의 민주주의` 실천...이번에도 해볼 가치있어
민주당, '의원내각제' 선호정당들 합세할 상황 대비해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내년 총선이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법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 여야는 선거법을 둘러싸고 그 어느 때보다 극한대립과 평행선으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진전이 없는 여야협상속에서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이 지난 11월 27일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되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12월 3일 본회의 표결 전까지 ‘집중협상’을 제안했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무효’를 주장하며 거칠게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늦어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12월 17일 이전에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자유한국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행처리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도입을 수용하면 그때부터 매우 유연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고 실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12월 17일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만큼 그 전에 선거법 합의를 도출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정체불명 선거제, 민심왜곡 선거제, 위헌적 선거제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부의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오늘 또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불법 패스트트랙 폭거가 질주하느냐, 잠시나마 멈추느냐 기로에 선 오늘”이라고 맞섰다.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여야 각당 첨예하게 대립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첨해한 이해관계만큼이나 선거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소수당들도 이해타산을 따지며 총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이끌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11월 26일 언론을 통해서 “합의되지 않은 선거법을 어떤 형태로든 통과시키려고 민주당과 2중대 정당들이 획책하면 필리버스터를 해서라도 끝까지 막아보겠다”고 밝혔다. 정의당과 평화당도 민주당에 동조하며 연동형 선거법 관철을 위해 국회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일방 처리하는 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선거법 개정의 당위성을 외면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자칫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민주당에선 자유한국당에 대해 ‘유연한 협상’ 방침을 밝히고 있고,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일부 협상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주고 선거법 개정안은 막아내자”는 타협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각각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과 ‘패스트트랙 철회’라는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여야협상이 마지막 순간까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빠른 표결처리보다, 충분한 숙의 토론이 중요

앞으로 선거법 통과에 앞서 필리버스터 등 많은 험로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민주당의 책임있는 행동과 지혜가 필요하다. 국회 선진화법의 원래 취지가 ‘빠른 표결처리’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에 따른 대화와 타협’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므로 제1야당을 빼고 강행 처리할 경우 선거 불복 등 정국 혼란이 초래되는 부작용이 있다. 이런 만큼, 민주당이 표결처리에 앞서 필리버스터의 원래 취지대로, 충분한 대화와 협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숙의민주주의에 입각한 ‘숙의투표’를 먼저 실천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숙의민주주의는 고정된 선호와 이익을 열린 학습과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고정된 선호(이익, 정체성)를 가정해 놓고 절충과 타협을 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학습과정을 진행해 고정된 선호가 새로운 선호로 수정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숙의투표’를 지향한다. 투표하기 전에 주요 쟁점을 토론해 이해 당사자 간 충분한 정보 공유와 공감 및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면 설령 그 투표 결과가 자신의 이해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해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숙의투표’의 효과는 ‘2017년 신고리 원전 공약’을 수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 변화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초 고정된 선호의 입장에서 보면 공약 수정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숙의민주주의에서 보면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와 신규 원전 중단’이라는 새로운 선호를 형성함으로써 갈등을 잠재우면서도 탈원전 정책 기조는 유지하게 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선호를 보여준다.

선거법 표결처리에 앞서 여야는, 필리버스터의 원 취지가 의사방해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처럼, ‘국회 전원위원회’를 소집하여 여한이 없도록 토론하고 ‘숙의투표’로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

2003년 3월 28일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8, 29일 이틀간 국회 전원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는 국회 '반전 평화의원 모임' 소속 의원 71명이 28일 오전 박 의장에게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전원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탈원전 정책을 놓고 숙의민주주의를 실행한 적이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대선 공약을 파기하고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와 신규 원전 중단’이라는 새로운 선호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사진= 연합뉴스

숙의투표 해야 하는 이유...'대통령 직선제'와 관련있어 

‘전원위원회’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선거제의 당리당략적 유불리가 아니라 국익과 공공성을 토론할 필요가 있다.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되고 있는 한반도와 주변정세에서 한국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부형태가 대통령 직선제인지, 의원내각제인지를 생각해보고, 이것과 친화적인 선거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특히,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분단과 주변 강대국 속 ‘한국 대통령 직선제’를 위협하는 연동형 선거법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숙의하는 시간을 갖고 그 다음 표결처리에 들어가는 ‘숙의투표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전원위원회의 숙의투표는 당 지도부가 결정하는 ‘당론투표’보다 개개 국회의원 전원의 의원 자율성과 양심을 최고조로 드높이는 투표이다.

다당제와 내각제 친화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분단과 주변 강대국 속 신속하고 효율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87년 민주화의 성과인 “대통령 직선제”의 효과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국익과 공공성보다는 이익단체와 유사한 ‘이익정당’들의 파당정치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이런 만큼, 군소정당의 난립 속에서 강화되는 파당정치의 당리당략을 막고 주변 강대국속에서 분단국가의 비애를 해쳐나갈 “대통령 직선제”의 비전과 효과를 공감하고 재인식하는 계기가 반드시 요구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다당제 만들어 행정부 약화시킬 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체제를 파편화시켜 다당제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다당제는 여소야대의 대통령제를 만들어 국정운영을 주도해야 하는 집권당과 집권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찾아야 할 반대당의 효과적인 여야관계를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

대한민국이 주변 강대국 속에 분단된 나라로 존재하기에 다당제가 불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4대 강국에게 에워싸여 있기에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의원내각제보다는 대통령 직선제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 직선제는 권력의 삼권분립과 함께 일반 시민들의 시민권과 참정권이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서 왕, 귀족, 민중 등 특정한 계급의 권력독점과 부패를 막으면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의 공공선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직선제가 귀족과 시민들의 ‘제한적 시민참여’를 기원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보다 더 우월한 체제이며 공화주의 정신에 더 친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의회내각제는 정당과 내각의 집단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삼권분립의 대통령 직선제보다 민주적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즉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수상은 의회의 정당대표자들이 선출하기 때문에 정치적 기득권이 커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의원내각제는 상대적으로 강한 입법부와 약한 행정부의 구조를 갖게 되어 권력분립이 지켜지기 어려운 단점이 있어서 사법부나 행정부가 입법부의 강력한 권력행사를 제대로 견제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특히,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만 의회 의원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권력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어 견제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대통령 직선제냐 의원내각제냐...숙의 토론할 필요있다

민주당은 자한당과 함께 분단과 강대국 속 한국의 대통령 직선제를 지킬 것인지, 내각제 개헌을 선택할 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민주당은 연동형 선거법 통과이후, 자유한국당이 현행 소선거구제 선거법과 친화적인 대통령 직선제를 포기하고, 내각제 개헌운동을 나서게 하는 극단몰이의 폐해에 대해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원내각제에 찬성하는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평당 등은 연동형 선거법 통과 이후 그 여세를 몰아서 자유한국당과 함께 내각제 개헌을 밀어부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민주당은 외롭게 한국의 대통령 직선제를 지켜내야 하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대통령 직선제를 포기하고 내각제 개헌운동을 선택하도록 하는 극단몰이(내각제에 친화적인 지역구 250, 비례대표 50, 연동형 100%)는 피해야 할 것이다.

연동형 선거법 강행처리에 앞서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함께 분단과 주변 강대국 속 대통령 직선제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자유한국당과 함께 내각제 개헌을 선택할 지 진지하게 고뇌한 뒤 ‘숙의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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