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日 정치 거목 나카소네 전 총리 별세..韓과 인연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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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日 정치 거목 나카소네 전 총리 별세..韓과 인연도 눈길
  • 김지은 기자
  • 승인 2019.11.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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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5년간 총리 역임...일본철도 민영화 등 성과 이뤄
日 총리로서 한국 첫 방문..경협자금 지원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가 29일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가 29일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 전 일본 총리가 29일 101세로 사망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1947년 28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당선, 정계에 입문한 이후 2003년 은퇴까지 56년을 정치계에 몸담은 정치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이후 1982년11월부터 1987년 11월까지 5년간 71·72·73대 총리를 지냈다. '전후 정치 총결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격적인 움직임에 나선 일본의 우파 정치인은 외교는 물론 행정개혁에서도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재임 당시 그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론·야스 관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할 만큼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또한 내정 면에서도 성과를 이뤘다. 가장 알려진 성과는 일본 철도의 민영화다. 그는 일본국유철도를 JR 계열 7개 회사 등으로 분할, 민영화했다. 

나카소네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정권 비판의 선두에 서 있었지만 1967년 사토 내각의 교통장관으로 올라서면서 '풍향계'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그를 지지하는 자들은 '풍향계'라는 말을 그가 남다른 정치 감각으로 일본 정가의 향방을 제시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저서 '명상록'에서 '미래 총리를 목표로 하기 위한 파벌전략'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총리 퇴임 이후로도 현역 의원으로 활동했지만 2003년 1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당시 총리가 비례대표 후보자 정년을 73세로 규정하면서 정계를 은퇴한 바 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자민당 신헌법기초위원회의 소위원장으로 헌법 개정 문제에 임하는 등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65년 체결된 한일 국교 정상화 및 청구권 협정 관련 막후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초반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막후 특사 자격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위해 일본에 체류했던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도 인연을 쌓아, 포항제철 건설때도 여러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983년 전두환 정권 시절 일본 총리 중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은 일본 측에 방위 및 안전보장을 명목으로 60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 자금을 요구했고 나카소네 전 총리는 40억 달러 규모를 지원, 한일 관계 역시 급속도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방문 당시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본 지도자로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보였다. 그는 "한일 양국간에는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는 이것을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반성하는 견지에서"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나카소네 전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서 한국과 중국 등으로부터 반발을 받아 참배를 보류하기도 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지난 1985년 8월15일 총리로서 최초로 공식 참배에 나섰다. 이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郎),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 등이 줄줄이 참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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