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확산中 중남미 '냄비 시위'..."정치가 망친 경제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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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확산中 중남미 '냄비 시위'..."정치가 망친 경제 살려내라"
  • 김지은 기자
  • 승인 2019.11.29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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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볼리비아·콜롬비아 등 잇따른 민주화 시위
고장난 정치, 결국 고장난 경제로 이어져
잇따른 시위에 중남미 화폐가치 바닥
중남미 국가들의 시위 물결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남미 국가들의 시위 물결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누군가는 '기름 값이 비싸져서'. 누군가는 '지하철 요금이 50원 올라서', 누군가는 '부정선거에 화가 나서' 냄비를 집어들었다. 

이들이 냄비를 집어든 이유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냄비를 두드리며 내는 소리는 같다. 고장난 정치가 경제마저 망가뜨린 데 대한 분노의 소리다.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무능한 정부는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성난 시민들은 텅 빈 냄비만큼 내 뱃속도 텅 비었다며 냄비를 두드리고 있다.  

중남미 카세롤라소 시위 확산..."내 배도 텅 비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에서 '카세롤라소' 시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카세롤라소란 중남미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위의 모습으로 흔히 냄비 시위라고도 부른다. 냄비나 주전자와 같은 주방도구를 두드리는 시위로, 냄비만큼이나 텅 빈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일러텍사스대 중남미 역사학자인 콜린 스나이더는 "시위대는 가장 기본적인 요리 도구들을 통해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힘든지를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부엌에서는 흔히 쓰는 요리 도구일 뿐이지만, 시위대에서 그 영향력은 차원이 다르다. 

스나이더에 따르면, 카세롤라소는 1964년 브라질에서 중산층 주부들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주앙 굴라르(Joao Goulart) 대통령의 좌파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이 올 것으로 우려해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얼마 후 군이 개입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냈다. 

1971년 칠레 여성들도 사회주의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를 상대로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카세롤라소 시위 2년 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장군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를 끌어내린 바 있다. 

스나이더 교수는 "이후에도 냄비 시위는 1980년대 칠레에서 피노체트를 끌어내렸고, 2001년 페르난도 데 라 루아(Fernando de la Rua)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1997~2005년 세 명의 에콰도르 대통령을 내려오게 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도구지만, 그것이 내는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던 것이다. 

냄비시위 도대체 왜?

볼리비아와 칠레, 에콰도르에 이어 최근 콜롬비아까지 냄비시위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볼리비아에서는 2006년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14년간 집권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선거 논란이 확산되면서 그가 지난 10일 사임하고 멕시코로 망명하자 그를 지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칠레는 지하철 요금이 인상된 것이 원인이었다. 에콰도르의 경우 유류 보조금 폐지가 원인이 됐다. 이들 나라들은 실업률이 두자릿대에 이르고 한달 월급이 550달러 수준에 불과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워졌다. 반면 일부 재벌 정치가들이 평화롭게 피자를 먹는 사진이 등장하고, 서민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의미없는 대응책만 내놓자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게 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경제 불평등 해소 등 '경제 민주화'다. 

경제 민주화 요구..그 원인은?

최근 중남미 시위가 뻗어나가고 있는 것과 관련, '국가의 재산은 곧 통치자의 재산'이라는 사고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스페인이 중남미 국가들을 정복할 당시 원래 절대군주제였던 영향으로 중남미 국가들의 자원과 재산을 빼앗다시피했던 것. 이후 스페인은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스페인이 물러간 중남미 국가에서는 토호 유지들이 '국가의 재산이 곧 통치자의 재산'이라는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답습, 오늘날의 독점재벌과 정경유착의 행태를 낳게 된 것이다. 

정권은 무능했지만, 풍부한 자원 덕에 중남미 국가들은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이어왔다.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자 중남미 국가들은 세계 경제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4년 유가 급락과 동시에 이들 국가의 경제력도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은 원자재에 기댄 취약한 경제구조를 개선하지 못했고, 원자재 값이 출렁이면서 중남미 국가들 역시 도미노처럼 크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급한대로 복지를 위해 쏟아내던 자금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팍팍한 삶으로 이어졌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중남미 지역의 실질 GDP 성장률은 0.8%에 그쳤다. 자료=파이낸셜타임즈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중남미 지역의 실질 GDP 성장률은 0.8%에 그쳤다. 자료=파이낸셜타임즈

 

취약한 경제구조 개선 실패.. 소득재분배에만 열중·인프라 투자 전혀 없어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중남미 경제팀장 알베르토 라모스는 "최근 시위의 주된 원인은 취약한 경제"라고 지적했다. 중남미 지역의 지난 6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0.8%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1인당 GDP는 실제로 감소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중남미 상황은 1980년대 채무 위기 이후 중남미 지역경제를 마비시킨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10년간 좌파 성향의 지도자들이 중남미 국가에서 정권을 잡으면서 소득 재분배를 위해 많은 돈을 썼지만, 정작 경제구조 개선을 위한 충분한 인프라나 교육 분야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에 그나마 중남미 국가들을 지탱하고 있던 원자재 가격이 급락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들의 경제력도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했고, 중산층에 속해 있던 수천만명의 국민들도 더이상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은 올해와 내년 중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느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성장률은 3.2%로 추정된다. 

FT는 칠레의 BGO 단체인 라티노바로메트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중남미 국민들은 이 조사가 실행된 23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라가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 비율은 불과 20%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48%는 정체돼 있다고 답했다. 후퇴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28%나 됐다.  

중남미 화폐가치는 바닥 수준

고조되는 정치 불확실성과, 바닥으로 치솟는 경제는 중남미 통화가치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27일(현지시간) 칠레 페소는 한 때 달러당 819.75페소까지 급락하면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볼리비아에서도 페소화는 사상 최저치였다. 아직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브라질 헤알화도 연일 최저점을 경신하고 있으며, 우루과이 페소도 최저점 수준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남미 통화는 올해 들어 신흥국 통화 중 가장 약세가 두드러졌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올해 들어 37% 떨어졌고, 칠레 피소는 15%, 브라질 헤알은 9% 하락했다. 멕시코 페소만이 달러대비 가치가 0.5% 올라, 유일하게 상승했다. 
 
NYT "중남미, 민주주의 위해서는 군 개입 없어야" 

뉴욕타임즈는 중남미 국가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에 나서기 위해서는 군사개입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레빗스키 하버드 교수와 마리아 빅토리아 무릴로 콜롬비아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장은 '쿠테타의 유혹(The Coup Temptation in Latin America)'라는 제목의 글에서 "군사 개입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이 글에 따르면, 중남미 국가는 독립 후 150년간 군인들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거나, 정권을 끌어내리거나 일으켜 세우는 등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것. '군사'는 중남미 국가에서 위기가 있을 때마다 훌륭한 중재자이자 강력한 무기로 자리매김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볼리바아에서는 1920년부터 1980년 사이에 5년에 한번 이상씩 총 13번의 쿠테타가 일어났다. 나라가 불안정할 때마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이같은 움직임은 향후 군의 개입 가능성을 높여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1980년대 이후 쿠테타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는 등 중남미 국가들은 군 개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움직임을 보면 다시 군 개입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이를 찾아나서려는 의지까지 보이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고 평가했다. 

중남미 정치학자인 알프레드 스테판 역시 "1980년대에 이 지역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열쇠는 어느 민간 단체도 군 부대의 문을 두드리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평가했다.

즉, 정치 지도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쿠테타를 추구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 중남미 국가들의 양극화와 불안이 고조되면서 이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가 경제 불평등을 줄이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중남미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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