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묻지 마’ 합종연횡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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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묻지 마’ 합종연횡의 양면성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9.11.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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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2019년 재계 트랜드의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다.

지난달 국내 최고의 통신사 중 하나인 SK텔레콤이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업 파트너로서의 협력 관계 구축을 넘어 3000억 규모의 지분을 상호 맞교환하며 국가가 아닌 기업도 자본으로 얽힌 혈맹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SK텔레콤에게 카카오톡은 과거 금기(禁忌)와 같은 존재였다. 3개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시지 매출은 매년 1조 5000억을 넘어섰으나 카카오톡은 이를 단번에 파괴했고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대규모 조직개편을 불러일으켰다. 카카오톡이 이동통신사에게 미친 파괴적 혁신 효과는 실로 막대했다. 그런데 이번에 두 회사가 동반자적 관계를 선언한 것이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포털, 메신저와 관련해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역시 자회사 간의 경영통합을 통해 협력적 관계를 구축, 다가올 시장 환경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터넷 시장부터 금융 핀테크 시장까지 치열하게 대립한 두 기업의 상호 협력 관계 구축은 그래서 더 이례적이다. 

스마트폰 특허 침해로 7년간 모든 금액을 쏟아 부으며 치열한 법적 소송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애플의 협력 선언에 대해선 블룸버그 통신조차 ‘상상할 수 없는 거래가 실현되었다’라는 평가를 했을 정도로 파격적인 협력이었다. 혁신의 대명사였던 애플조차도 삼성전자의 스마트TV와 협력했다는 점에서 합종연횡은 이제 재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에 이뤄진 SK텔레콤과 카카오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은 '적과의 동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제공=카카오​
​​​지난 10월에 이뤄진 SK텔레콤과 카카오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은 '적과의 동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제공=카카오​

 

기업간 합종연횡, 도대체 왜 일어날까

다양한 산업에 걸쳐 경쟁 관계에 놓여 있던 기업들의 합종연횡을 지켜 보며 언론에서도 각기 다른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와 산업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기업이 공동 대응 전선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분석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 지역적 시장을 토대로 한 플레이어들이 협력을 제안했다’는 얘기까지 분석의 관점 역시 다양하다.

기업들의 합종연횡에 관한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기업들이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 벗어나 생태계라는 원리에서 플랫폼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경영전략 관점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 경영전략의 핵심은 세계적인 학자 마이클 포터가 내세운 산업 내 공급사슬 관계에서의 수익 최적화에 있었다. 

포터에 의하면 기업은 동종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공급사, 고객사와의 관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포터는 다른 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절대적으로 줄여야 함을 강조했다. 즉, 포터가 바라본 경쟁의 핵심은 동종업계를 장악하기 위한 개별 기업의 성장, 과점 또는 독점에 맞춰져 있었다. 

포터의 관점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는 동종업계의 경쟁 관계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세력이 2000년대 이후 등장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노키아를 제압했고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회사의 대명사인 코닥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므로 산업의 경계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안테나로 시장을 360도 관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이종산업에서 등장한 혁신으로 인해 업계 1위 기업이 몰락하는 현상은 모든 기업에게 생태계와 플랫폼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에 전력을 다하는 기업들은 공동의 전선을 구축, 생태계를 형성하고 생태계 내에서 고객에게 최적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보완재 공급 기업들과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쉽게 말해 플랫폼은 다양한 보완재를 토대로 고객에게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플랫폼을 영위하는 기업과 플랫폼을 토대로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보완재 공급에 올인하는 기업의 합종연횡은 그래서 더욱 필수적이다. 생태계를 구축, 공동 대응하면 다양한 안테나로 급변하는 환경을 경계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합종연횡의 양면성을 봐야 하는 이유 

문제는 ▲삼성과 애플의 협력 ▲카카오와 SK텔레콤의 협력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협력 등이 모두 언론에서 표현한대로 ‘적과의 동침’이라는 데 있다. 플랫폼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며 기업들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열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적과의 동침이기에 '신뢰'라는 변수가 계속 불확실성 속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로 구축된 합종연횡은 그래서 항상 불안함과 초조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역시 한번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면 그 순간 탈퇴와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기에 기업들은 폐쇄적인 관점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고 기술과 지식, 노하우가 유출될 우려 또한 커지게 되어 자유로운 혁신과 창의성은 더욱 줄어든다고 경고하고 있다. 

생존에 대한 절박한 인식으로 인해 적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했지만 언제든지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또 다시 될 수 있기에 ‘적과의 동침’이 언제나 기업의 성장을 유발하는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다양한 경영학 연구는 지적하고 있다. 상호 협력관계에서 누가 더 많은 기술과 정보를 내놓느냐에 관해 치열한 협상과 물밑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2년 게임업계의 양대 산맥이던 엔씨소프트와 넥슨은 전략적 동맹을 맺어 업계를 놀라게 했으나 3년 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김택진(왼쪽)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넥슨 대표. 사진=연합뉴스

대표적 사례가 있다. 2012년 6월, 넥슨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보유주식 14.7%를 인수하며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로 등극, 경쟁 관계였던 두 기업은 향후 글로벌 게임 시장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넥슨은 3년 후, 지분 보유의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하며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에 개입, 동맹은 파국과 분열로 종결됐다.

우버에 맞서기 위해 벤츠와 BMW가 협력을 선언했고 넷플릭스에 맞서기 위해 삼성과 애플이 협력을 선언했다. 해당 협력의 주 목적은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함이다. 과거의 적을 이용하여 현재 또는 미래의 적을 제거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은 역사적으로도 성공보다 더 큰 위험을 불러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합종연횡의 이면을 늘 기업들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어제의 적은 상황이 돌변하면 언제나 하이에나처럼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모두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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