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불평등을 강조하는 세상, 그 수혜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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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불평등을 강조하는 세상, 그 수혜자는 누구일까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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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앵글로 한국사회 불평등구조 분석...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 리뷰
불평등 구조 책임소재에 대한 설명없는 세대론...감정에 호소하는 것일뿐
'386세대 희생론'을 정략적, 감정적으로 해석...지양해야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 지성사 펴냄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대형서점 경제경영 분야 매대를 보면 세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요즘은 연말이라는 걸 반영하듯 2020년을 예측하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 사이에서 세대론에 기초한 책들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세대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크게 두 종류다. 젊은 세대를 소재로 한 책들과 386세대를 소재로 한 책들.

젊은 세대를 소재로 한 책들은 그들이 소비를 주도하고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린다. 하지만 그들을 시대의 피해자나 희생양으로도 그린다. 그 이유가 지금 한국의 기득권층인 386세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386세대를 소재로 한 책들은 아예 그 세대 때문에 지금 한국이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젊은 세대를 소재로 했건 386세대를 소재로 했건 세대론을 다룬 책들이 쏜 화살은 386세대 비판으로 향한다.

세대를 다룬 책들은 통계와 분석을 토대로 쓰였겠지만 대개 저자와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경험이 녹여져 있어서 감정에 호소하는 글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런 책들 가운데에서 철저히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으로 지금 한국을 분석했다는 책이 눈에 띄었다.

‘불평등의 세대’. 제목부터 강력한데 저자는 (부제로) 또 외친다.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저자 이철승은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 저자가 한국이 불평등하다고 한 이유는 한 세대가 중요한 자원을 독점하고 아랫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비판이 향하는 곳 역시 386세대다.

이 책은 386세대가 어떻게 국가, 시민사회, 시장을 가로지르는 ‘권력 자원’을 구축했고 세대 간 불평등을 일으켰는지 각종 통계를 근거로 비판한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이 불평등한 사회가 된건 386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사진=unsplash
저자는 지금의 한국이 불평등한 사회가 된건 386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사진=unsplash

공교롭게도 저자는 한때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복지국가 확장과 수호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 연구를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386세대의 기여에 대한 사회과학적 경의의 표시”였다고 술회한다.

그런 저자가 결이 완전히 다른 책을 낸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한국 학교로 옮긴 후 취업 문제 등 학생들의 고민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젊은 세대의 아픔에 공감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을 다독이는 기성세대 리더들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가 비판한 기성세대 리더는 386세대를 의미한다. 물론 그는 386세대의 공도 이야기한다. 386세대가 발전국가가 주도했던 “위로부터의 산업화 전략과 권위주의적 통제 시스템을 공식적인 민주주의 영역에서 밀어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저자는 “386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한국은 불평등한 구조가 더욱 깊어진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그 근거로 각종 통계 수치를 든다. 다른 세대를 압도하는 고위직 장악률과 상층 시장 점유율, 그리고 다른 세대와 비교하여 월등히 높은 근속연수, 임금, 소득점유율, 소득상승률. 그리고 점점 벌어지는 세대 간 소득 격차까지.

책에서 제공한 통계 수치와 저자의 분석만 놓고 보면 지금 한국은 분명 386세대가 점유하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저자는 ‘세대론’을 앵글로 잡아서 불평등을 들여다봤을 뿐이고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며 한 발 뺀다.

 

“(다른) 연구자들의 잇따르는 충고는 ‘세대 간 불평등을 과장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모든 불평등 연구자는 세대 간의 불평등이 크지 않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안다.” (266쪽)

 

저자는 세대의 틀로 모든 불평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다만 세대론을 끌어들여서 드러내고 싶었던 건 ‘위계 구조’였다”고 털어놓는다.

 

그것은 ‘세대 간의 분노와 저항’을 야기하는 발화점이 – 계급 구조라기보다는 –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위계 구조’이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 사회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위계 구조의 문제다.” (274~275쪽)

 

저자가 분석한 한국형 위계 구조와 작동 원리는 세 가지다. 첫째는 나이에 기반한 연공서열 구조, 둘째는 시험에 기반한 관료제 진입과 승급의 원리, 셋째는 이 두 가지 서열에 기반한 세대 내 경쟁과 협력 그리고 리더(승자)의 창출과 권력 집중의 논리다. 여기에 강력한 혈통 상속의 욕구도 포함될 수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저자는 이런 위계 구조에서 제일 위에 있는 리더가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위협하지 않는 후배들만 키우는 상황이라고 비판한다. 그렇게 시작된 정체가 지금의 불평등한 구조로 굳어졌다는 거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위계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다.사진=pixabay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위계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다.사진=pixabay다.”

저자는 특히 386세대가 리더로 있는 지금 한국은 ‘네트워크 위계’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한국 사회가 인적 네트워크와 위계 구조가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며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거다.

저자는 이 책을 다양한 통계 데이터와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을 동원해서 균형감 있게 썼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설명은 설득력 있었지만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용어 혹은 개념 선택이 있었다. 불평등을 이야기하며 균형 잡히지 않은 단어 선택을 한 거다. 저자는 군대 용어를 가져와서 각 세대를 은유했다.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1920년대 출생 지도자들 및 1930년대와 그 아랫세대 병사들로 이루어진 산업화 대(大)세대들 (중략) 386이라는 조직화된 시민의 군대 (중략) 386세대라는 시민군대의 장교들. (중략) 386세대도 한국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의 후배들은 그 반란에 충실히 따르며 ‘시민 군대의 말단 보병’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이다.” (63~64쪽)

 

뒤로 가면 노동자 386세대를 야전군이라고 표현했고, 기업의 부장을 대령으로 임원을 별을 단 장군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저자는 물론 이해하기 쉬운 비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386세대가 군대와 같은 절대적 권위의 조직으로 뇌리에 박히지 않았을까. 저자의 의도는 통했을 거다. 프레임 이론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 의도가 의심되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의도가 의심되니 저자가 각종 증거로 제시한 통계 결과도 해석 방법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 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은 변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걸 안다. 책 후반부쯤 동원한 ‘100대 기업 세대별 이사진 비율과 자본수익률’ 분석을 보고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86세대 임원 비중이 높은 기업은 자본수익률이 낮다고 분석했다. 임원진 세대교체에 실패한 회사가 성적이 나쁘다는 거다. 그런 회사들에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현대미포조선과 같은 건설 제조업 회사와 대한항공 같은 비제조업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그 회사들의 입장과 전문가들의 견해가 궁금해졌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의 단호한 어조가 느껴졌다. 그러나 책 마지막에서 결론을 도출하기에 앞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며 또 한발 뒤로 물러난다.

 

“이 책에서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386세대 내부의 높은 네트워크의 밀도와 강도로 인한 지대 추구 행위가 증대되었다는 ‘실증에 기반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는 없다.” (323쪽)

 

저자 또한 세대론을 논한 다른 작가들처럼 감정에 호소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으로 제시한 저자의 방법론들, 특히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위해서 다시 희생하자”는 선언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저자의 이론이 아직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은 지금 이 책은 어쩌면 기득권층을 향한 많은 경고 중 하나에 그치고 말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저자가 결론에서 주장한 386세대가 아랫세대를 위해서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자기 정략에 맞게 해석하려는 세력이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게 한다.

세상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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