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③ '지방시'의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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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③ '지방시'의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뮤즈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11.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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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뮤즈, 오드리 헵번과 함께 패션 역사를 장식한 위베르 드 지방시
지방시에 엣지를 더한 리카르도 티시와 모델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를 새로운 얼굴로 선택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걸린 지방시의 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 (사진=지방시 인스타그램)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걸린 지방시의 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 (사진=지방시 인스타그램)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씬에서 지방시(Givenchy)의 블랙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그 모습이 지방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오랫동안 기억되면서 동시에 깨뜨리기 힘든 틀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그의 뮤즈의 도움으로 그 틀을 과감히 깼고, 그의 뒤를 이은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는 팝 디바와 함께 밝은 에너지를 지방시에 가져오고 있다.

 

◆ 오드리 헵번과 함께 빛난 위베르 드 지방시의 디자인

프랑스 보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17세때 예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향했고, 그림을 공부하면서 쟈크 파트(Jacques Fath),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등 꾸뛰르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도왔다.

1952년 지방시 하우스를 열고 자신만의 첫 컬렉션을 발표한 그는 풍성하고 우아한 블라우스와 입기 편한 스커트를 매치해 ‘세퍼레이츠 룩(Separates Look)’이라는, 투피스의 컨셉을 선보이면서 파리 패션계의 찬사를 받았다.

당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 주도하던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파격적인 변화였기 때문.

이에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 지방시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는데, 이때 오드리 헵번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영화 ‘사브리나’의 의상을 고민하던 오드리 헵번이 지방시를 소개받은 것.

귀여운 얼굴과 가녀린 실루엣의 헵번에게서 영감을 얻은 지방시와, 간결하고 로맨틱한 지방시의 드레스가 잘 어울렸던 헵번은 ‘사브리나’를 멋지게 완성했고, 이후 헵번은 ‘하오의 연정’, ‘티파니에서 아침을’, ‘샤레이드’ 등 영화 속에서는 물론 각종 시상식과 사적인 자리에서도 지방시 의상을 즐겨 입으며 위베르 드 지방시와의 우정을 이어갔다.

지방시는 자신의 뮤즈인 그녀만을 위한 향수 ‘랑테르니(L’Interdit)’를 선물하기도 했는데, 이 향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1년 후 그녀의 향수는 상품으로 출시됐고 헵번이 당연히 모델이 되어주었다. 이는 스타가 향수의 광고 모델로 나서는 첫 사례였다고.

한편 헵번과 만났던 그 즈음 위베르 드 지방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친구이자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존경하던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

발렌시아가 부틱의 맞은 편으로 자신의 부틱도 옮길 정도로 그를 따랐던 지방시는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며 더욱 성장했다. 비록 발렌시아가는 기성복 트렌드를 거부하고 은퇴했지만, 그와 달리 시대의 흐름에 긍정적이었던 위베르 드 지방시는 여성 기성복은 물론 남성복과 슈즈, 주얼리, 테이블웨어 등으로 상품 라인을 확대하며 브랜드를 키워갔다. 힐튼 호텔의 인테리어, 포드 자동차의 디자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적 감각을 발휘하며 명성도 높여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위베르 드 지방시 (사진=지방시 홈페이지), 영화 ‘샤레이드’,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이미지 컷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위베르 드 지방시 (사진=지방시 홈페이지), 영화 ‘샤레이드’,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이미지 컷

◆ 리카르도 티시와 그의 수호천사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1988년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 LVMH에 인수된 지방시 하우스는 재도약을 위해 노력했지만,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95년 자리에서 물러나 예술 애호가의 삶을 가지기로 했다.

이에 경영진은 당시 주목 받던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 즉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줄리언 맥도날드(Julien Macdonald)를 차례로 영입했지만 이들 모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2005년에 입성한 리카르도 티시가 이후 12년간 자리를 지키며 지방시를 재건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의 뮤즈, 마리아칼라 보스코노(Mariacarla Boscono)가 있었다.

리카르도 티시는 런던 세인트 마틴즈 스쿨에서의 마지막 해,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며 당시 신인 모델이었던 보스코노를 만났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시절,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보스코노를 만나 급속하게 친해진 티시는 그녀에게서 가족애를 느꼈다고.

졸업 후 여러 패션 브랜드에서 일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지 못하자 인도 여행을 떠났던 티시는, 밀라노에서 다시 만난 보스코노로부터 용기를 얻어 자신의 첫 패션쇼를 열기로 했다. 탑모델이 된 보스코노는 티시를 위해 직접 동료 모델들을 섭외하고 초대장을 돌리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친 티시는 두 번째 컬렉션으로 지방시의 눈에 띌 수 있었다.

잠재력이 보였다 하더라도 신인이었던 리카르도 티시를 발탁한 건 지방시 하우스의 모험이었다. 티시로서도 영광스럽지만 어려운 제안이었는데, 위베르 드 지방시를 직접 만나고 그의 작품들을 둘러본 티시는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지방시의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를 꺼내 보이기로 디자인 방향을 정했다.

리카르도 티시에 의해 엣지있는 고딕 장르로 다시 태어난 지방시는 어두우면서도 로맨틱한,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대체불가의 매력으로 패션계를 사로잡았다. 티시가 그렇게 지방시를 바꾸어가는 동안 마리아칼라 보스코노는 지방시의 패션쇼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향수와 코스메틱 라인의 광고 모델로도 나서며 맹활약했다.

새로워진 지방시에 매료된 셀럽들이 마돈나(Madonna), 리아나(Rihanna),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등으로 점차 늘어나면서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리카르도 티시는 나이키(Nike)와 콜라보 작업을 하는 등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갔고, 결국 2017년 또 다른 도전을 하기 위해 지방시와의 결별을 택했다.

왼쪽부터, 리카르도 티시 (사진=티시 인스타그램), 보스코노 모델의 지방시 달리아 느와르 향수 광고, 2014 가을 지방시 광고 캠페인
왼쪽부터, 리카르도 티시 (사진=티시 인스타그램), 보스코노 모델의 지방시 달리아 느와르 향수 광고, 2014 가을 지방시 광고 캠페인

◆ ‘뉴 헵번’으로 아리아나 그란데를 선택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

티시의 후임은 클레어 웨이트 켈러, 첫 여성 리더로 결정되었다.

영국 버밍햄 출신으로 런던 왕립예술학교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랄프 로렌(Ralph Lauren)을 거쳐 구찌(Gucci)에 합류해 실력을 키웠다.

2005년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Pringle of Scotland)’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되어 역량을 인정 받은 그녀는 2011년 ‘끌로에(Chloe)’에 영입되어 역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2017년부터 리카르도 티시가 떠난 지방시를 책임지게 되었다.

지방시에서의 첫 컬렉션에서 켈러는 위베르 드 지방시와 리카르도 티시로 이어지는 차분한 모노톤의 기조를 지켜가면서도 선명한 레드 색상과 세련된 그래픽 무늬를 가미해 한층 가볍고 생동감 있는 지방시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켈러의 지방시에 대한 전망이 밝아진 가운데, 2018년 3월 위베르 드 지방시는 91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브랜드 설립자가 세상을 떠난 그 해, 켈러는 영국의 해리 왕자와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메건 마클의 웨딩드레스 디자인을 맡으면서 지방시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빛내기도.

지방시의 꾸뛰르와 남녀 기성복, 액세서리 등 전체적인 라인을 점차 안정시키는 한편 켈러는 블랙드레스를 입은 모델의 뒷모습 이미지를 공개하며 새로운 뮤즈의 등장을 예고했는데, 베일을 벗은 주인공은 바로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였다.

오드리 헵번을 닮은 듯 깜찍한 외모와 포니테일 헤어로 ‘팝의 요정’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반전 매력을 발산하는 팝 디바 아리아나 그란데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억6천만여명에 이르는 글로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녀가 지방시의 모델임이 밝혀졌을 때 해시태그 #Arivenchy가 SNS를 채웠을 정도.

올 가을을 앞두고 공개된 지방시의 광고 캠페인 속에서 그란데는 꽃무늬 주름 드레스, 봉긋한 어깨의 재킷, 오프 숄더의 이브닝 룩 등을 소화하며 켈러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했다.

왼쪽부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 지방시 2019 가을 컬렉션, 2020 봄 컬렉션 (사진=지방시 홈페이지), 아리아나 그란데 (사진=지방시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 지방시 2019 가을 컬렉션, 2020 봄 컬렉션 (사진=지방시 홈페이지), 아리아나 그란데 (사진=지방시 인스타그램)

오드리 헵번은 스크린에서 위베르 드 지방시의 디자인을 빛내주었고, 마리아칼라 보스코노는 리카르도 티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아리아나 그란데는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가 새로운 세대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날개가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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