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⑮: 양심의 자유의 의의와 시급한 대체복무법안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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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⑮: 양심의 자유의 의의와 시급한 대체복무법안 제정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11.2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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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기초에 양심의 자유 있어...그 보장에 추가적인 증명 필요없을 만큼 명확
병역의무 실현, 양심의 자유 따라 대체복무제 허용...많은 나라들 이미 채택중
대체복무 허용않는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12월말 시한 앞두고 병역법 개정 '차일피일'
분단체제 빌미로 한 병역거부자에 대한 단죄는 논리모순...국회는 하루빨리 병역법 개정 마쳐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는 명문으로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요소인 인민의 자유를 예시하면서 신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신서·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자유의 대명사가 양심이 아니라 신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인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접근은 오히려 정상적이다.

기본적 인권의 기초인 양심의 자유

민주공화제가 발전한 서구에서 중세는 신(神)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였다. 특히 로마대제국에서 가톨릭교가 국교가 된 이래 서구는 가톨릭이 모든 질서의 중심에 있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서 제한된 인격의 소유자로 인정될 뿐이었다. 종교개혁으로 상징되는 신교의 자유의 쟁취마저도 새로운 기독교적 세계관 즉 프로테스탄티즘과 기성기독교인 가톨릭의 경쟁관계를 의미할 뿐 유일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은 여전하였다. 따라서 근대 시민혁명기의 인권목록에서도 정신적 내면생활의 중심에는 신교의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계몽주의철학의 발전으로 신교 외에 세속적 인간중심의 내면적 형성 또한 중요한 인권의 대상으로 확인받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국교설정을 포기하고 정교분리 즉, 국가와 종교의 구별이 대세가 되면서 세속적 양심의 자유가 신교의 자유와 자리바꿈하여 정신적 자유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민주공화제란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오로지 스스로의 선악에 대한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인민들의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를 추구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은 타인 혹은 다수의 가치관에 아랑곳없이 스스로의 인격을 걸고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에 있다. 따라서 모든 인권의 기초에 양심의 자유가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양심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최대한의 보장을 받아야 함 또한 굳이 추가적인 증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것이다.

근현대사에서 장식으로 전락한 양심의 자유

민주공화체제에서 너무나 자명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엄격한 보호 원칙을 철저히 국가후견적, 사회후견적 관점에서 무시해 온 것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양심을 다수의 판단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가의 법질서와 사회의 도덕률에 따라 단죄해 온 것이다.

이런 경향은 87년 민주화이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신앙이나 양심에 기초하여 인명살상용 총기사용을 거부하고 병역소집을 거부해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대표적이다.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양심을 지키기 위해 형사처벌마저도 감수하도록 강제하는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가 인권의 기초라는 명제가 옳다고 강변해온 셈이다.

국가 및 사회후견적 체제에 대한 근본적 옹호론에는 인권보장과 병행하는 국방의 의무가 있다. 복잡한 쟁점을 단순화하자면, 권리와 의무가 긴장관계에 있게 될 때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최고법인 헌법의 통일적 실현을 위한 제일원칙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국방은 단순히 군대조직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병역의무를 실현하는 방법 또한 다양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헌법이나 법률로 병역의무를 대신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대체복무제가 대표적이며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채택하고 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양심의 자유의 복원과 헌법적 명령이 된 대체복무제

이런 취지에서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이전의 선례를 번복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곧바로 병역법을 무효로 했을 때 병역체제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2019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계속 적용하고 그 기간 동안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도록 하였다. 2018년 11월에는 대법원도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여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유가 병역소집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므로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이어졌고, 수감 중이던 거부자들은 가석방되기도 하였다.

시급한 대체복무법 제정과 병역법 개정

그러나 정작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는 국회는 개정시한을 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까지 병역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대체복무제 도입법안과 병역법 개정안이 국방위 소위원회를 겨우 통과한 상태이다. 검찰 개혁과 선거제 개혁 논의 때문에 극단적 대치를 보이고 있는 현 국회의 상황에서 앞으로 국방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기한 내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사실 입법은 시작에 불과하고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기 위해 시행령 등 후속입법이나 관련 집행체제를 정비하자면 이미 너무 늦은 상태이다. 자칫하면 병무행정에 대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는 위중한 상황인데도 국회가 너무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법안마저도 양심의 자유의 중요성이나 특수성을 소홀히 다루면서 심사기준과 방법,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버젓이 제시되고 있다. 양심이란 다수의 가치판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수의 양심이 그 본질임에도 병역면탈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양심의 진정성을 다수자의 관점에서 판정하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그 와중에 아직도 90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형사재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외에 비폭력주의나 평화주의의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에 대하여는 여전히 형사처벌이 강제되는 상황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방의 의무도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존재할 때라야 의미가 있다.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의 핵심인 양심의 자유가 분단체제를 빌미로 한 국가지상주의의 유산아래 여전히 헌법의 장식조항으로 취급되는 한 국방의 의무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에 대한 단죄는 논리모순에 불과하다. 국회는 하루빨리 위헌 선언된 병역법을 개정하고 대체복무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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