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책임 있을것”...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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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책임 있을것”...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 김이나
  • 승인 2015.10.16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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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 위기가 온다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

미국에 2년 반 남짓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흥미있게 들었던 얘기가 있다.

 

영어가 짧은 한인들이 꼭 알아야하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I didn’t do anything.” 직역하면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어떤 사고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문장 한 마디는 완벽히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무결하게 자신이 무죄라는 걸 주장함을 의미한다. 물론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때 말이다.

 

우린, 다시말해 우리나라 국민은 어떤 갑작스런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 당황한 나머지 “It’s my fault.” 즉 ‘내 잘못이다’, 아님 적어도 ‘나도 책임이 있다’ 혹은 ‘내가 부주의 했다’ 고 할 때가 많았다.

 

내가 법적으로 책임은 없지만 즉 “guilty” 가 아니지만 연대감이 강하다보니 심정적으로 공동 책임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다. 물론 법정에 가면 확실히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어설픈 자백이 유죄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져 위압적인 미국 경찰로부터 수갑이 채워지기도 하고 곤궁에 빠지기도 하는 일이 그간 종종 있었다는 것.

 

오래 전도 아니다. 정말 얼마 전만 해도 자식이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키면 부모가 달려가 교사에게 사과하고 교장에게 사과하고 피해 학생에게, 그 부모에게도 사과를 하던 때가 있었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 끼리 그저 복도에서 어깨를 부딪쳐 몇 마디 오가다 주먹다짐한 상황이었을 뿐 이었는데도 “다 저희 잘못이다. 저희가 잘못 키워서다.”라며 백배사죄 했던 우리 부모들이다.

아이의 교육을 책임져야할 부모의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고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차원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이런 행동들이 때론 과해도 문제가 된다. 사실 살다보면 내 잘못인지 누구의 잘못인지가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된다.

좋은 일 일 때는 다들 숟가락 얹고 싶어 하지만, 나쁜 일 일 땐 다들 발뺌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잘 잘못은 확실히 가려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

 

▲ 상대를 탓한다면 해결될 수가 없다 / unsplash

 

협의이혼을 상담하러 내담자가 왔다. 부부가 각자 상담을 한 번씩 받은 상태였다. 각자 노력하기로 하고 돌아간 후 5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저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반찬도 신경쓰고, 일하느라 소홀하다고 할까봐 반찬에도 특별히 신경쓰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여행도 가자고 했어요. 잠자리도 제가 먼저 갖자고 했어요. 하지만 그 사람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할 만큼 했다’였다.

안타까웠다. 정말 노력했슴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타까운 게 그것만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언젠가 이에 대한 잘 잘못을 가릴 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잘못은 없다, 내 탓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행동들이라는 생각.

 

이른 바 가정 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려야 할 때를 대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즉 “유책”을 가려야 할 때를 대비한 노력들 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필자도 냉전 중일 때는 오히려 밥상을 더 잘 차려주는 경향이 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땐 누가 먼저인지가 그리 중요하지가 않았다. 누가 얼마나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늘 처음이고 늘 부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래 그냥 그렇게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만든 윤기 나던 도자기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누가 먼저 였는지, 누가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해졌다.

 

‘내 잘못이야. 내 탓이야’는 이제 없다.

‘난 잘 해왔어. 난 잘못한 게 없어. 난 최선을 다했고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한 도자기는 이제 어떻게 할까. 부숴 버릴까? 아님 순간접착제로 붙여볼까?

 

결정은 부부만이 할 수 있다.

대신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나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한 번만 해봐도 늦지 않다.

 

단언컨대 흔들리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공 들였지 않나…그럼 흔들리다 말지도 모른다.

 

부부 공히 무너지길 바라지만 않는다면.

 

 

김이나 ▲디보싱 상담센터 양재점/ 이혼플래너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jasmin_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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