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성과주의에 함몰된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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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성과주의에 함몰된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9.11.15 15: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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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를 차분하게 느끼는 반면 국내 대기업의 임원들은 11월부터 진행되는 임원 인사를 앞두고 불안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매년 그룹을 이끄는 이른바 오너, CEO는 신성장동력 확보와 혁신문화 조성을 위한 명분으로 대폭 물갈이에 기반을 둔 임원 인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동일한 직무를 오래 맡은 임원일수록 불안함의 강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아는 대기업의 임원들 역시 연말 약속을 거의 잡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임원 인사는 인사팀에서 뚜껑을 열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기에 송년회 모임을 약속하기가 섣부르고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자동차 그룹 등 일부 대기업은 올해 초부터 임원 인사를 연말에 진행하지 않고 연중 수시 인사체제로 전환했다. 미래 시장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당하는 임원들은 1년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대기업의 임원을 흔히 '재계의 별'이라고 칭하며 이들이 받는 고액 연봉과 임원을 위한 별도의 복지 제도가 종종 언론에 공개되며 화제를 낳기도 하지만 임원들은 자기들을 향해 ‘임시 직원’의 줄임말이라며 자신의 처지도 어렵다는 점을 누누이 밝힌다. 특히 임원 인사가 공정하거나 투명하게 해당 평가 과정이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일방 통보에 그치다 보니 승진을 한 이도, 좌천된 이들도 모두 인사 제도에 대해 일정 부분 불만을 갖고 있다. 

성과에만 유독 포커스를 맞춘 국내 임원 인사

대기업의 임원 인사는 빠르면 10월 말부터 시작되어 늦어도 그 다음해 1월 초에 완료되는 것이 보통이다. 11월쯤 되면 이미 각 사업부문의 성과가 뚜렷하게 드러나기에 누가 승진이 되고 더 좋은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관해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가 철저하게 임원이 지닌 역량보다 업적 평가, 즉 1년 간의 단기 성과를 토대로 평가가 이루어지기에 사업 실적이 좋지 못한 임원은 10월부터 불안함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임원 인사에 있어서 성과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원까지 오른 인물이라면 이미 실무적 능력이나 역량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되기에 임원 인사는 철저하게 성과로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놀랍게도 기업뿐만 아니라 경영학 교수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무진 시절 보여준 역량과 조직을 이끄는 임원의 역량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2013년 세계적인 경영학술지(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발표된 메릴랜드 대학 마틴(Marti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단기간에 성과를 끌어올리기에는 리더의 일방적인 지시적 리더십이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그러나 구성원의 선제적 대응 능력과 장기적으로 성과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눈치보기와 단기적 평가가 매우 좋지 않음을 시사한 연구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임원이 국내 기업의 임원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는 임원이 된 이후에도 사업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곧바로 좌천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업 환경, 정부 정책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로 업계 호황·불황이 좌우될 가능성도 있기에 개개인이 지닌 역량과 리더십을 더욱 더 심사숙고해서 판단하는 것이 글로벌 기업 임원 인사의 특성이다. 1년 내내 그들이 별도의 독립기관인 평가센터(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는 이유이다.

반면 국내 기업의 임원들은 성과에 의해서만 평가 받기에 마틴 교수가 언급한 장기적 관점의 미래 투자와 신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없다. 당장 올해 농사를 망치면 연말에 자리에서 쫓겨나기에 국내 기업의 임원들은 그룹 회장과 다르게 단기적 시각에 함몰되고 신사업을 통한 가치 창출보다 기존 사업을 쥐어 짜내어 수익을 창출하는데 몰입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 역량이 부족한 이유는 단기적 관점의 임원 평가 및 인사 탓도 크다.

장기적 관점과 역량 반영한 임원 인사의 필요성 

새로 임원이 되면 웃지 못할 얘기들을 기존 임원들과 신임 임원들이 상호 공유한다. 첫째, 절대로 그룹 회장에게 이견이나 반론을 제기하지 말 것. 둘째, 미래 비전 또는 투자와 같은 장기적 성과보다 눈 앞에 보이는 단기 성과 달성에 집중할 것. 셋째, 수시로 인사팀이 임원 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니 인사팀장과 친하게 지낼 것.

결과적으로 윗사람에게 충성하고 단기 성과에 몰입하고 인사팀과 친밀하면 임원으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뼈 아픈 조언이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임원 인사 시스템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그래픽=연합뉴스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임원 인사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내 기업의 오너들이 가장 염려하는 그룹의 중장기 경쟁력이나 혁신 능력을 절대로 함양할 수 없다. 1년마다 '파리 목숨'이 되지 않으려면 눈 앞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해야 하기에 임원이 된 이후에도 평소 포부로 생각해 온 미래 설계나 신사업 추진은 절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적어도 임원이 된 이후 3년간의 중장기 실적을 두고 평가, 적정 임기를 임원에게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둘째, 성과에만 집착할 경우 임원과 구성원의 조직을 바라보는 간극은 더욱 넓어지는 기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단기 성과를 토대로 평가 받아야 하는 임원에게 워라밸, 52시간 근무는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함께 하는 구성원들에게 성과 달성을 집요하게 강조하는 임원과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주장하는 구성원들의 간극은 기업 차원에서 임원에게 역량은 배제하고 성과만을 강조해온 평가 제도가 유발한 측면도 매우 크다. 

국내 기업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항은 단기 성과가 아닌 혁신 능력, 미래 설계 능력이다. 단기적 관점의 임원 인사를 추진하면서도 그룹의 최고경영진(CEO)들은 여전히 임원들에게 혁신과 미래 가치 창출을 요구한다.

정량적 성과가 아닌 정성적인 가치 및 혁신 등을 창출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통찰력과 혜안을 갖고 있는지 임원들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역량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임원에게는 미래 설계 역량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임원 평가 및 인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임원에게 최소한의 적정임기(ex: 3년 등)를 보장한 후 객관적인 임원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두어 이들의 성과 창출을 단기에서 장기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평가 제도 자체를 개선, 설계해야 한다.

수십 년 이어지고 있는 단기 성과 중심의 임원 인사가 바뀌지 않는 한 국내 기업의 혁신은 계속 퇴보할 것이다. 장기적 성과와 함께 역량을 토대로 한 임원 인사의 획기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모두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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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19-11-16 12:04:32
성과평가는 기업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가치에
기반하여 자기만의 평가시스템을 구축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음. 서구식 성과평가 도입으로 실패한 기업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