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② 실험정신으로 계승되는 '발렌시아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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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② 실험정신으로 계승되는 '발렌시아가'의 가치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11.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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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아이디어·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패션 미래 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를 2000년대 최고 인기 브랜드로 끌어올린 '니콜라 게스키에르'
'뎀나 바잘리아'의 스트리트 패션과 만나 재도약하는 발렌시아가 브랜드
발렌시아가 2019 가을 광고캠페인
발렌시아가 2019 가을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같은 시대의 디자이너들로부터 ‘꾸뛰르 계의 예술가’로 칭송 받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작품 하나하나에 온 열정을 쏟았던 그는 그 때문에 다량으로 생산하는 기성복 시스템과는 타협할 수 없었던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그를 떠나 보낸 후, 브랜드의 예술성을 지키는 범위내에서 상업성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해온 발렌시아가 하우스는 그 결과 니콜라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로부터 생명력을 얻은 데 이어 이제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로부터 동력을 얻어 재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완벽을 추구한 꾸뛰리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스페인 북부의 어촌 게타리아 출신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재봉사였던 어머니를 돕다가 옷에 흥미를 느껴 12세때부터 맞춤복 수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실력을 쌓고 나서 1917년 스페인의 대표적 휴양지인 산 세바스티안에 자신의 부틱을 연 그는 우아한 기품이 전해지는 고급스러운 의상들로 귀족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도 매장을 열며 이름을 알려나갔다.

그러던 중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면서 작업을 이어가기 힘들게 되자, 발렌시아가는 오뜨 꾸뛰르의 본거지인 파리로 향했다.

1937년 파리의 아베뉴 조르주 생크에 꾸뛰르 하우스를 열고 첫 패션쇼를 개최한 발렌시아가는 스페인의 바로크 화가 벨라스케스(Velazquez)로부터 영감을 얻은 의상들로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고, 파리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후 파리의 거리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뉴룩(New Look)’으로 장악되었을 때에도 발렌시아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를 택했다.

재킷 뒷부분에 넉넉하게 여유를 준 ‘세미 피티드 재킷 (Semi Fitted Jacket)’, 가느다란 팔과 팔찌를 돋보이게 하는 7부의 ‘브레이슬릿 소매 (Bracelet Sleeves)’, 편하게 허리선을 없앤 ‘튜닉 드레스 (Tunic Dress)’와 누에고치 모양으로 볼록한 ‘코쿤 코트 (Cocoon Coat)’ 등은 전형적인 옷의 형태를 깨뜨리는 발렌시아가의 패션 실험으로 태어난 역사적인 결과물이었다.

스쳐가는 아이디어들이 모두 완벽하게 구현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디자인 스케치에서 패턴, 재단, 재봉까지 옷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 그런 그에게 세계 각국 상류층 고객들로부터의 주문이 이어진 건 당연했다.

꾸뛰리에로서 따라올 자가 없었던 만큼 자부심도 높았던 발렌시아가는 자신의 작품을 카피하는 디자이너들에 신경이 쓰였던 나머지 언론과 취재 시점을 놓고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점차 맞춤복보다 기성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는 장인의 마음으로 의상을 다루던 발렌시아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 결국 창작 의욕을 잃어버린 발렌시아가는 74세였던 1968년 은퇴를 결심했고 1971년 코코 샤넬(Coco Chanel)의 장례식에 모습을 보인 후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났다.

왼쪽부터 Balenciaga Memoirs 북 커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그의 작품 (사진=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Balenciaga Fashion Memoir 북 커버
왼쪽부터 Balenciaga Memoirs 북 커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그의 작품 (사진=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Balenciaga Fashion Memoir 북 커버

◆ 셀럽들의 ‘it’ 브랜드로 변모시킨 니콜라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를 떠나 보내고,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경영진은 미셸 고마(Michel Goma)에 이어 조세푸스 티미스터(Josephus Thimister)에게 디자인을 맡기며 브랜드의 영광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 바람을 실현시켜준 건 조세푸스 티미스터 시대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니콜라 게스키에르.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꾸뛰르만을 고집했던 데 반해, 그의 시대가 저문 후 경영진은 기성복 라인 런칭은 물론 라이선스 사업까지 벌였는데, 그 라이선스 팀에 게스키에르가 들어온 것.

프랑스 출신으로 전문 패션학교에서 수업을 받기 보다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게스키에르는 당시 특정 컨셉의 소규모 컬렉션에서도 재능을 빛내면서 발렌시아가의 희망으로 떠올랐고, 1997년 25세의 나이로 헤드 디자이너의 자리에 올랐다.

1998 봄 시즌 의상부터 준비하게 된 그는 발렌시아가 클래식을 가져오면서도 보다 부드럽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발렌시아가 특유의 풍성한 볼륨의 탑을 스키니 팬츠와 매치하거나 타이트한 점프수트에 부풀어오른 소매를 연결하는 등 그에 의해 현대적으로 업데이트된 발렌시아가 룩은 패션계의 시선을 붙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게스키에르는 새로운 발렌시아가를 각인시키는 핫 아이템을 내놓았는데, 바로 모터사이클 ‘CITY’ 백이다.

터프한 지퍼와 금속 디테일, 가죽 끈이 달린 디자인으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라이더를 연상하게 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죽 소재로 편하고 여유로운 사용감을 느끼게 해준 이 백은 순식간에 셀럽들 사이에서 ‘잇백’으로 떠올랐고, 발렌시아가도 ‘잇브랜드’로 등극할 수 있었다.

2001년 구찌(Gucci),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등을 인수하며 럭셔리 사업을 확장하던 케링(Kering) 그룹에 합류하게 된 발렌시아가는 게스키에르의 디자인과 함께 더욱 커나갔고, 디자이너 개인으로서의 주가도 올리게 된 게스키에르는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와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의 아카데미 시상식 드레스,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의 투어 의상을 제작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멋지게 동반 성장한 발렌시아가 하우스와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15년 역사는 하지만 2012년 게스키에르가 루이 비통(Louis Vuitton)으로 떠나며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니콜라 게스키에르 (사진=게스키에르 인스타그램), 2002년 광고 2컷, 모터사이클 ‘Classic City’ 백, 2006년 광고 캠페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니콜라 게스키에르 (사진=게스키에르 인스타그램), 2002년 광고 2컷, 모터사이클 ‘Classic City’ 백, 2006년 광고 캠페인

◆ 희미해진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뎀나 바잘리아

발렌시아가 하우스는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공백을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이 채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알렉산더 왕은 도회적이고 시크한 룩으로 뉴욕 패션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디자이너.

하지만 그와 만난 발렌시아가는 현대적이고 트렌디하게 변모한 반면 혁신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추구했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정신과는 멀어 보였고, 결국 전임자와는 대비되는, 3년이란 짧은 기간 만에 알렉산더 왕은 발렌시아가를 떠나게 되었다.

결단을 내린 발렌시아가 하우스는 그 후임자 선정에 있어서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했다.

그 주인공은 스트리트 스타일의 하이 패션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으로 패션계를 놀라게 한 신진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

조지아(구 소련에서 독립)에서 태어난 바잘리아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 수업을 받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루이 비통에서 경험을 쌓은 후 2014년 베트멍을 런칭했다.

베트멍의 의상들이 캐주얼한 스트리트 패션이지만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데에 주목한 발렌시아가 하우스는 바잘리아에게 브랜드의 방향을 되돌려줄 것을 부탁했다.

2016 가을 시즌에 맞춰 발렌시아가에서의 첫 컬렉션을 발표한 바잘리아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기뻐할 만한 과감한 재단의 아방가르드 수트, 코트들과 함께 자신의 장기를 살린 스포티한 스트리트 룩을 믹스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게스키에르가 핸드백으로 인기를 모았듯 바잘리아도 핫 아이템을 준비했다. 발목까지 양말처럼 감싸는 ‘스피드 트레이너(Speed Trainer)’와 독창적인 면 분할이 돋보이는 '트리플 S(Triple S)’ 등의 스포츠 슈즈들이다.

트렌디한 슈즈들로 젊은 고객들을 확보하면서 한껏 고무된 발렌시아가는 미래를 향한 재도약을 꿈꾸며 2017년 브랜드 로고도 새롭게 다듬었다. 이전보다 더 두껍고 강직한 느낌.

2019 가을 컬렉션에서 날렵한 수트와 볼륨 아우터, 조형적인 디자인의 블라우스와 코트로 호평을 받은 바잘리아는 2020 봄 시즌을 위해선 넓은 어깨의 수트와 드레스들, 팝아트 적인 콜라쥬 프린트들을 내놓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신의 개성과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유산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뎀나 바잘리아는 현재의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왼쪽부터 뎀나 바잘리아 (사진=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스피드 러너와 스피드 트레이너,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20 봄 컬렉션 2컷 (사진=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왼쪽부터 뎀나 바잘리아 (사진=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트리플 S와 스피드 트레이너, 2019 가을 컬렉션 2컷, 2020 봄 컬렉션 2컷 (사진=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거침없는 패션 실험을 통해 마치 스페인의 건축물과 같은 예술 작품으로 의상을 승화시킨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그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디자인들은 그의 뒤를 잇는 발렌시아가 디자이너들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며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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