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국민프로듀서 우습게 본 '부정 오디션', 프로듀서X101
상태바
[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국민프로듀서 우습게 본 '부정 오디션', 프로듀서X101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11.14 21:1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연기를 하던 시기, 참 많은 오디션을 봤다. 힘 있는 기획사도, 이렇다할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거라곤 공개경쟁의 장인 오디션 뿐 이었다.

이미 합격자가 정해져 있다는 풍문(?)을 애써 외면하기도 했고, 제대로 된 빽(!) 하나 없는 상황에 한숨을 쉰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결국 연기를 관두게 된 건 실력부족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해서라기보다 ‘정해진 주인공을 위해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어느 순간 몇 천 대 일이라는 경쟁률의 머릿수가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 쯤으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맨 땅에 헤딩하기’를 종료한 셈이다.

물론 모든 오디션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실력과 가능성을 갖춘 이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 발굴하고 조련해내어 꽤 멋진 상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착한(?) 오디션의 긍정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엠넷’의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서X101’의 투표조작 사건은 아주 오래 전 풍문이 세월을 거슬러 다시금 재현되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정해져 있는 오디션. 썩어버린 관행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

프로듀스X101 [사진 출처 : CJ ENM]
프로듀스X101. 사진제공= CJ ENM

◆ 공정성 상실한 오디션에 매스 들이댄 ‘국민프로듀서’ 

그동안 TV오디션마다 이따금씩 심사위원의 자질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극히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지원자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높은 점수를 주어 시청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기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그러나 ‘프듀’는 ‘시청자’가 심사위원이었다. 시청자에게 부여된 ‘국민프로듀서’라는 이름은 ‘공정성’을 담보로 할 수 있는 최적의 오디션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에 충분했다. 국민프로듀서들은 ‘매의 눈’으로 참가자들을 선별했고, 매 순간 실력자들이 경쟁의 룰을 통과해 보는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했다.

이 과정을 거쳐 선발된 아이돌을 향한 3040세대 이모 팬들의 팬덤이 형성되는 기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높은 시청률, 그리고 오디션을 통과해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으로 대중 앞에 서게 된 이들의 엄청난 인기는 ‘프듀’의 시즌제 제작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는 이제야 비로소 벗겨진 ‘공정성’의 가면. 첫 시즌부터 지난 7월 끝난 네 번째 시즌까지 제작진에 의해 시청자들이 보낸 문자 투표가 지속적으로 조작돼 왔음이 드러났다.

먼저 네 번째 시즌 마지막 생방송에서 참가자들의 문자 투표 득표수 사이에 일정패턴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데뷔가 가능한 실력자들이 탈락한 데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 것. ‘실력’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매우 보편타당한 것이기에 주관적일 수가 없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오디션에 매스를 들이댄 건 바로 프듀 제작진에게 사기를 당한 ‘국민프로듀서’다. 한마디로 시청자 우습게 보다 그들에게 덜미를 잡힌 셈. 

프듀의 연출자 안모PD가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고 있는 동안 공정경쟁을 믿고 노력했을 참가자들은 얼마나 허탈할까. 검찰에 넘겨진 안모PD와 김모CP외에 조직적으로 연루된 윗선은 또 얼마나 되며 이를 온전히 다 밝혀 낼 수는 있을까. 조작으로 인해 경쟁의 순위가 뒤바뀌어 억울한 피해자가 된 이들에 대한 구제책은 있을까. 방송사의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조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가장 중요한 건 이 ‘불공정함’을 제대로 수술할 방법이 있는가의 문제다.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 실천 없는 구호에 불과한 우리 사회 화두, ‘공정성’

몇몇 책임자의 처벌, 방송사에 부과될 (그들에겐 거둬들인 수익에 비해 껌 값에 불과한)과징금과 단순 제재들, 그리고 입에 발린 사과 몇 마디로 앞으로 제대로 된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설령 제작된다 하더라도 의구심을 거두고 시청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듀’ 투표조작사건을 통해 바라 본 ‘공정성’이라는 화두는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부르짖는 ‘실천 없는 구호’에 불과해 보인다. 실천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해 잿빛 미래를 예고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낙관적인 발언 또한 할 수 없는 상황은 실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승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을 ‘공정경쟁’이라고 포장하고 기만하는 현실의 반복, 공정함을 잃은 경쟁에서 남은 건 애초에 승자로 낙점되지 못했던 땀 흘리며 노력한 사람들의 상처가 아닐까. 이들의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이 사회가 보여주는 세련되지 못한 ‘희망고문’ 같다. 

결국 과거에 내가 오디션을 포기했던 건 인생에서 ‘신의 한 수’였던 걸까.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강한아이 2019-11-15 09:17:30
범죄를 저지른 어른들에 대한 빠른 판결과
피해당한 연습생 및 아이돌들의 빠른 복귀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