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글로벌 신약개발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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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글로벌 신약개발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가'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11.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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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개도국간 상대적 불평등과 국제적 임상 시험 문제
아프리카서 AIDS치료제 임상실험 놓고 임상윤리 문제 제기돼
국제 기구들, 각국간 경제적 차이를 일부 인정하는 임상기준 선택해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슈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인간 대상 연구 중에서 신약 개발 등을 위하여 임상에서 시행하는 각종 연구를 임상 시험(Clinical trial)이라고 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임상 시험 연구 계획서를 만들 때 발생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상대적 불평등에 관한 문제이다.

신약을 개발하는데 임상 시험을 선진국에서 하는 것보다 후진국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물론 임상 시험 결과 품질은 보증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임상 시험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비용이 적게 든다. 단순하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윤리적 쟁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약군에 대한 상대적 불평등 문제이다.

AIDS 치료제 임상실험을 놓고 벌어진 윤리 논쟁

1990년대 아프리카 9개국에서 AIDS 치료제인 Zidovudine(AZT)에 대한 임상 시험이 진행되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임산부가 출산을 할 때, 신생아가 수직 감염을 받아서 AIDS 환자가 되기 때문에, 신생아 감염률을 줄이기 위한 임상 시험이 필요했다. 전혀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에 신생아 감염률은 25%이고, 당시 미국에서 표준 약물 요법으로 알려진 ‘076 요법’(AZT 500 gm(하루 5번)을 임신 14주부터 투여, 분만이 시작되면 임산부에게 AZT 정맥주사, 신생아에게 시럽으로 AZT를 복용)을 하면 비용은 800달러 들고, 신생아 감염률은 8%가 된다.

문제는 표준 용량을 사용하기에는 아프리카 각국의 재정 상황이 나빴기 때문에, 가능한 저렴한 비용으로 수직 감염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서 아프리카 구호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임상 시험 계획서는 전통적인 위약 대조군(Placebo-controlled group) 방식으로 연구가 구성되어 있었다. 시험군은 ‘AZT 300 mg(하루 3번)를 임신 36주부터 복용하고 분만이 임박하면 3시간마다 복용하는 단기 요법’이었다. 이 경우 비용은 80달러였고, 신생아 감염률은 15%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분의 1 비용으로 HIV 감염률을 10%포인트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를 위한 희망적 연구 결과였지만, 문제는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위약군에게 전혀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7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일단의 학자들이 연구 윤리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 임상 시험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이미 성립된 AZT 표준 요법을 위약군에게 제공하였어야 했다고 했고, 그렇더라도 연구 결과에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인간 대상 연구에 대한 기본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헬싱키 선언 29조에 의하면, ‘위약 대조군은 증명된 예방, 진단 또는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최선의 치료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연구 대상자에게 제공되어야만 했다.

다운로드  업무문서함 저장	 삭제   아프리카에서 시행된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에이즈 치료 선전 포스터.
아프리카에서 시행된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에이즈 치료 선전 포스터.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측은 아프리카의 재정 형편상 임상 시험에 참여한 연구 대상자들은 처음부터 AZT 투여받을 확률이 없으며, 이 부분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즉 아프리카의 표준 치료는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알려진 최선의 치료방법은 연구 대상자가 속한 상황에서 제공 가능한 것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치료를 기준으로 아프리카에서 최선의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이었다.

전자가 주장한 연구 방법론은 '활성 대조군(Active-controlled group)'이라고 한다. 활성 대조군도 위약을 받기 때문에, 위약 대조군 연구의 한 형태이지만, 위약군에게 표준 치료가 제공되기 때문에, 임상 시험 결과가 순수하게 시험약의 효과인지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 시험을 계획하는 연구자나 회사들은 연구 대상자에게 가능하면 약을 주지 않는 전통적인 의미의 위약 대조군 연구를 선호하게 된다.

국경없는 의사회 홈페이지.
국경없는 의사회 홈페이지.

국제기구, 차츰 각국의 경제적 차이 인정하는 추세

이 문제에 대한 윤리적 결론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양측 입장을 지지하는 진영은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데, 전자와 같이 강한 윤리적 입장을 지지하는 측은 2000년도 말까지는 국제 사회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구가 선도하는 임상 시험 관련 기구들과 국제 기구들이 후자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의학기구협회(CIOMS)에서 제안한 2002년 개정 윤리지침 가이드라인 11 주석은 위약만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를 ‘단지 경미한 위험을 일으키는 경우’, 또는 ‘활성 대조가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에 더하여 ‘확립된 효과적인 시술을 사용할 수 없고, 가까운 장래에도 사용할 것 같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서의 사용을 위한 연구’에 가능한 것으로 하면서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로써 국제적으로는 헬싱키 선언의 ‘알려진 최선의 치료’ 원칙의 예외가 인정되며, 그 경우 중에 언급한 아프리카 AIDS 연구가 포함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윤리적 논란을 일으키며 찾아낸 AZT 단기 요법은 아프리카에서 거의 적용되지 못하였다. 정부가 출산 마다 치료비 80달러를 지불하는 것을 재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이어 Nevirapine 이라는 약물이 나왔는데, 우간다에서 시행한 연구에서 산모와 신생아에게 한 알(single dose)씩 투여하는 것으로 신생아 발병율을 7~8%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 나타나면서, 바이러스에 약물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성비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의료 윤리학에서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자율성, 선행, 악행 금지, 정의’라는 윤리적 원칙에 기하여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아프리카 AIDS 연구에서 강한 윤리적 입장을 주장하는 측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 원칙에 기하여 답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선진국에서 시행할 수 없는 임상 시험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인간을 목적적 존재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강한 의무론적 윤리관에 대한 반박을 직관적으로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체로 옳다고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산부들에게 연구의 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동의한 경우라면, 자율성의 원칙에 의하면 합당하다. 이 연구를 통해 진짜 약을 받은 임산부 신생아들의 HIV 감염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익을 발생한 것이며, 연구 결과가 장차 다른 신생아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면 공리주의 관점에서도 선행 원칙에 합치한다.

또한 임상 시험에 참여하여 위약군에 포함되더라도 특별하게 추가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행 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강한 윤리적 원칙들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어떠한 해결책을 선택할지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담론에 참여한 자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최종적인지 또 바뀔 것인지는 모르지만, 국제적 임상 시험에서 국제 기구들은 각국의 경제적 차이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기준을 선택했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였는가?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운가?’ 라는 질문이 회자 되고 있다. 필자는 이 질문 역시 의무론적 윤리관의 또 다른 표현이며, 직접적인 반론 역시 제기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윤리적 딜레마라고 본다. 비난하고자 하는 문제들이 과연 해당 기준에 포섭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능하며, 또한 경계 사례로서 다른 윤리적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사실도 변할 수 있고, 전제에 따라 해석도 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담론의 참여자들이 열린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점이 아닐까 한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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