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의 이란 이란] 제재를 버텨 나가는 힘, 저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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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의 이란 이란] 제재를 버텨 나가는 힘, 저항경제
  • 김 혁 한국외대 이란어과 겸임교수
  • 승인 2019.11.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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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시내 옥외광고판, 일본·한국산 대신 중국·이란산 대체
이란 저항경제, '자국산업 기반의 경제 순환구조 구축' 목표 설정
미국과 이란, 제재와 압박의 갈등 대신 상호이해와 신뢰구축으로 나아가야
김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혁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겸임교수] 미 국무부가 지난 10월 31일 이란의 핵확산 방지를 위해 이란의 건설 분야와 4가지 전략물자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어 최고지도자의 아들과 비서실장, 사업부 수장 등 현정권 핵심인사 9명과 기관 1곳에 대한 제재도 단행했다.
 
미 행정부가 지난해 5월 핵합의 탈퇴 후 같은 해 11월 5일 이란의 생명줄인 원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 및 국영석유회사, 국영선박회사, 이란중앙은행 등 이란내 은행과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2단계 제재를 재개한 지 1년이 경과한 때에 이란을 찾았다. 10개월만의 방문이다.

10개월만의 이란 방문

테헤란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미국의 제재 강화, 현지화 평가절하로 인해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분주했다. 물론 기존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또는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 테헤란으로 입국하는 항공편에 붐볐던 일본, 한국 출장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非)이란국적자들을 상대하는 입국심사대는 중국, 주변 아랍국적의 방문자들로 대체되어 있었다.

눈에 띄게 변화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옥외광고판이었다. 이란에서는 옥외광고 수입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재원으로 활용되는 관계로 이전에도 수도인 테헤란 뿐만 아니라 지방 주요도시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제재 복원 전 옥외광고판은 대부분이 한국, 일본, 유럽계 브랜드 제품들이 차지했다. 이들 나라 기업들은 자사 제품들의 홍보수단으로 경쟁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중국브랜드 자동차와 이란산 소비재 제품의 홍보물이 차지했다. 한국산 휴대폰 및 가전제품들 홍보간판이 중국산 휴대폰과 이란 현지브랜드 가전제품들로 대체된 것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내에 보이는 옥외 광고판. 경제 제재로 해외브랜드 제품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자국산 제품의 홍보물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사진= 김혁 교수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내에 보이는 옥외 광고판. 같은 장소의 옥외광고판을 찍은 사진에서 왼쪽은 경제 제재 전에 LG전자 광고, 오른쪽은 자국산 홍보물이다. 사진= 김혁 교수

경제제재, 이란 자체 산업 경쟁력 강화시키기도

이란의 경제를 고사시키겠다는 목표아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압박정책에 맞서 이란은 ‘저항경제’로 맞대응하고 있다. 자국산업 기반의 경제 순환구조 구축이 저항 경제의 핵심 개념이다.

저항경제 정책의 기본 전략은 ‘경제 체질 개선’과 ‘자립 경제 기반 구축’ 이다. 경제 체질 개선의 목표는 수입대체형 산업구조 달성, 지식기반 경제구조 강화이고, 저항경제 정책의 주요 핵심사항인 원유의존형 경제구조의 개선이다.

자립 경제 기반 구축은 식량과 식수 등 핵심필수품 자립, 전력 생산 및 원유 정제 독자기술 확보, 외환보유고 지속 확충 등 대외 경제 부문 체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란정부의 통제적 저항경제 정책은 국가간 정치적, 경제적 상호교류를 통해 선순환되어야 하는 현대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극히 보수적이고 진부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40년에 걸쳐 이어져 왔던 미국 및 서방 국가들의 일방적인 제재에 맞선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나라다. 

우선 GCC국가를 포함한 중동의 주변국들과는 달리 이란은 제조 기반을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자체 제조 역량이 서방의 고도화된 기술력과 비교해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크지만, 자동차, 가전제품, 에너지 인프라시설에서 일반 생활용품 및 식료품까지 제조업 역량의 범위가 지속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테헤란 시내에 있는 한 식료품 매장에는 자국산 제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사진= 김혁 교수
테헤란 시내에 있는 한 식료품 매장에는 자국산 제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사진= 김혁 교수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경제를 최대한 압박해 이란을 고사시키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을 한 후 이란내 일부 소비재는 외국산 완제품들의 수입이 중단됐다. 이 자리를 이란 국내산 제품들과 중국산 제품들이 대체하고 있었다. 

실제 이란 소비자들은 국내산 제품들의 공급이 다양해지며 경쟁을 통해 품질의 수준도 향상되고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란 정부도 지난해 ‘국산품 사용의 해’에 이어 올해를 ‘국내 생산 증대의 해’로 정하고 현재의 위기를 자국산 브랜드 확대와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유도하고 있다.

이란 저항경제, 미-이란 갈등 장기화땐 어려움 겪을 것

이란에 대한 초강도 압박정책이 이란의 '저항경제' 대응에 따라 단기간내 효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이같은 경제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에는 이란의 민간경제도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미국간 무력충돌 위기 및 터키군의 시리아내 쿠르드 침공으로 인한 시리아 북동부 지역의 정세 불안정, 레바논과 이라크에서 이어진 반정부 시위 등 이란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혼란도 이란 국민들의 불안한 민심을 자극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 트럼프의 재선을 위해서는 북핵문제와 함께 독단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후 고조되고 있는 중동지역 위기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이다.

서구에 대한 자율성 확보를 가치로 두는 ‘자주’와 서구로부터의 해방인 ‘자유’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1979년 이슬람 혁명정신. 이를 근간으로 국가를 지켜가고 있는 이란 정부와  국민들에게 현 미 행정부의 제재와 압박은 실효성이 떨어져보인다. 대신 미국과 이란간에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상호 이해를 토대로 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양국의 선택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김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겸임교수 및 김앤파트너스 대표는 한국외대 이란어과,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 대학원(이슬람 이전 고대사 전공)을 졸업했다. 2012~2016년까지 LG전자 이란법인 TV담당 주재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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