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희 칼럼] 펀드가 왜 대출을 하지?...'매출채권·무역금융·Direct Lending 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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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희 칼럼] 펀드가 왜 대출을 하지?...'매출채권·무역금융·Direct Lending 펀드'
  •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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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이후 PDF 본격 등장
미·영 등 선진국 은행권 대출 감소 영향
최근 국내에도 대출채권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 출시
사모부채펀드, 기관투자자가 주고객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펀드를 잘 아는 분들도 펀드가 대출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출은 은행의 영역이고, 펀드는 이러한 은행 대출을 유동화 시킨 ABS, MBS 등 대출연계채권에 투자하면 되는 것이지, 펀드가 직접 개인이나 기업에게 대출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은행이 아닌 펀드에서 직접 대출하는 투자전략을 통칭해서 여기서는 Private Debt Fund(사모 부채 펀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라고 부르겠습니다.

펀드에서 투자(?)하는 대출의 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매출채권 ▲무역금융 ▲대출채권 또는 ▲메자닌 ▲다이렉트 렌딩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기본이 되는 운용방식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ivate Debt Fund(줄여서 PDF)는 2008년을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 및 PEF(Private Equity Fund, 프라이빗 에퀴티 펀드)의 주요 투자전략 중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익히 알고있는 바와 같이 글로벌 금융위기는 은행권의 무분별한 부동산대출이 시발점이 됐습니다. 담보비율을 100%까지 높였던 은행의 부동산대출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욱 결정적인 원인은 부동산대출을 유동화 시킨 모기지채권(MBS)의 일종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채권의 부실화와 연계 파생상품인 CDO와 CDS 였습니다. 

어쨌든 이 사태 이후 전세계 은행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출과 파생상품 관련 리스크 관리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특히 대출에 있어서는 담보/신용 심사 및 연체 관리를 강조하게 되면서 대출 대상이 신용도가 우수한 기업/개인으로 한정되었고, 대출심사 강화로 대출의 승인 및 집행에 걸리는 기간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아래 표는 영국 은행들의 연간 대출 증가율을 보여주는데, 2008년 전까지 매년 10%대 대출 증가를 보였다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은행권의 대출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영국을 포함 미국 등 모든 선진국에서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출처=Bank of England.
출처=Bank of England.

그렇다면 이후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개인은 어디서 대출을 받았을까요?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면 은행에서 감소한 대출의 상당 부분이 투자, 즉 펀드의 영역에서 보충되고 있습니다. 특히 헤지펀드를 포함한 다양한 전략의 Private Debt Fund들이 신용도가 높지 않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론(Mid-Market Loan으로도 불립니다), 벤처론이라고도 하는 스타트업 대출은 물론 매출채권, 무역금융 등에 새로운 대출 자금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는 P2P 대출 역시 해외에서는 이미 글로벌 PDF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플랫폼 중 하나입니다. 아래 표를 보면 PDF 자산 규모가 지난 10년 간 약 3배 이상 증가하였고, 특히 Direct Lending, 부동산 메자닌, 벤처론 등의 분야는 5배 이상 성장하였습니다. 
 

출처=Prequin.
출처=Prequin.

그럼 기존 은행 대출과 다른 Private Debt Fund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대출의 다양화 & 전문화 – 투자자에 맞는 대출 전략

운용사나 펀드별로 특화된 대출전략을 개발하여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은행과 달리 사모대출로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은 특정 섹터(매출채권, 무역금융, 부동산) 또는 대출 대상(Mid-Market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출 프로그램 등)의 일부에 집중하여 소수의 전문가들을 통해 펀드의 대출 대상 기업 및 프로젝트를 선별합니다.

특히 신용등급, 담보, 재무제표를 중시하는 전통적 은행 대출과 달리, PDF에서 시행하는 대출 전략은 차주의 현재 신용등급이 아닌 미래의 현금창출능력과 대출이 사용되는 프로젝트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따라서 비록 기업의 신용등급은 비투자적격(Non-Investment Grade)이라고 해도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미래 현금흐름 예측에 따라 공격적인 대출이 실행될 수 있는데, 특히 이런 경우 투자자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을 통해 펀드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최근 PDF에서 주로 투자하는 섹터들을 나열한 것인데,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예상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 상업부동산 등은 물론 IT, 헬스케어, 중소기업론, 매출채권 등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PDF 운용사들은 이들 중 한 두개 섹터에 전문성을 가진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출처=Intertrust(2018) Changing Tides - Global Private Debt Market in 2018 (from www.unipri.org).
출처=Intertrust(2018) Changing Tides - Global Private Debt Market in 2018 (from www.unipri.org).

저금리시대의 경쟁력– 전통적 채권의 대체재(?)

Private Debt Fund가 급속히 성장하게 된 것은 앞서 설명한 대로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들의 대출 건전성 강화로 높은 신용등급과 담보능력을 가진 대기업(Investment-Grade)으로 집중된 점을 꼽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 확산된 저금리 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필요로 하는 연기금과 보험사 등의  대형 투자기관들은 기존의 채권시장에서 더 이상 투자기회를 찾지 못하자, 추가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 PDF 투자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대표적인 연기금들이 PDF의 가장 큰 투자자이며, 일부 보험사의 경우 PDF 운용사들 인수하여 직접 운용하기도 합니다. 

아래 표는 채권과 대출채권의 수익율 비교인데, 금리가 더 하락한 2019년 사정을 감안하면 기관투자자들이 PDF 투자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Cambridge Associates.
출처=Cambridge Associates.

테크놀로지의 발전도 한몫– 소액이나 단기 대출도 펀드를 통해 가능

기술의 발전으로 방대한 거래량을 처리해야만 하는 무역금융도 펀드 형태로 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 무역거래량은 전자상거래 발전 등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무역거래는 은행을 통한 신용장 개설, 물건 인수도 후 대금정산이라는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며 무역거래에 기반한 단기대출인 무역금융이 Private Debt Fund의 투자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3-6개월의 단기라는 점과 무역거래 대상 물품을 담보로 한 매출채권으로 상대적으로 장기신용대출에 비해 위험이 낮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거래량이 작거나 신용도가 낮은 수출입 기업의 경우 은행에서 취급을 꺼리거나 높은 금리를 적용 받았습니다. 이런 틈새를 파고 든 PDF는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상품과 관련된 무역금융만을 모아서 포트폴리오로 만들거나, 은행에서 기피하는 소규모 거래를 묶어서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개발하였고, 투자자에게는 매력적인 단기투자상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무역금융 프로세스에 블록체인기술이 도입되면서 처리수수료와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으로 보여 더 많은 사모펀드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Boston Consulting Group,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출처=Boston Consulting Group,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출처=CB Insights.
출처=CB Insights.

왜 사모펀드일까? 

대출은 정기적인 이자를 지급한다는 측면에서 채권과 유사합니다. 기업대출의 경우 채권과 비교한다면,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투자등급채권이 될 수도 있고 하이일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담보여부에 따라 담보부사채가 되기도 하고 무담보(신용)채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출 전략은 왜 공모펀드가 아닌 기관투자자를 위한 사모펀드로 설정할까요?

그 이유는 리스크 때문입니다. 채권과 달리 대출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고, 당연히 시가(market price)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은행에서 취급하는 대출은 정형화된 대출이 대부분으로 여러 건을 모아서 유동화 시킨 후 채권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이차적으로 이러한 유동화채권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이 발행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모대출의 경우 대출형태가 건 별로 달라 대규모로 유동화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운용사는 대출과 관련된 위험(차주의 신용도, 현금흐름, 프로젝트 진행과정 등등)을 모두 펀드에서 직접 부담해야 합니다. 여기에 투자자의 투자금과 대출 수요가 매칭되는 데에는 시차가 발생할 수 있어 대부분 7년~10년 이상 장기 폐쇄형 펀드로 Capital call(투자약정조항) 조건이 붙습니다.

중도환매 또한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채권은 시가로 시장에서 매각하여 투자자에게 환매자금을 돌려주지만, 대출은 중도환매를 위해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해야 하는데 대출의 특성상 어렵겠지요. 결국 이러한 대출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공모가 아닌 사모펀드가 적합하고, 투자자 역시 기관투자자들이 주요 대상이 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해외 무역금융펀드와 대출채권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씀드린 PDF와 사모대출계약의 특징이 반영되지 않은 채 단기 고수익상품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여기에 레버리지를 추가하여 위험-수익을 증가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모두 원래 해당 포트폴리오가 추구하는 운용 전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특히 투자기간의 미스매칭은 유동성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레버리지는 이미 고위험-고수익 투자전략인 사모대출에 위험을 더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니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바젤III 도입에 따라 앞으로 상당기간 은행권의 대출규모는 계속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투자자금의 지속적 확대, 금융기술의 혁신 및 다양한 대출 전략의 개발 등으로 사모대출시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향후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투자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진다면 조만간 개인투자자를 위한 펀드도 출시될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는 국내 보험사에서 채권운용을 시작으로 국내 및 글로벌 자산운용사에서 20년이상 펀드운용, 상품마케팅과 해외투자를 담당했다. 현재 외국계 은행에서 Wealth Management 부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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