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비닐로 꽁꽁 싸매어 궁금했던 책,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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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비닐로 꽁꽁 싸매어 궁금했던 책,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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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여행 에세이,여행의 이유를 말하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비닐로 포장된 책들, 출판계 불황 타계를 위한 마케팅인가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펴냄.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지난봄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었다. 지금도 서점에서 비닐로 쌓여 넓은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베일(?)에 덮인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살짝이라도 들춰보고 싶던 책이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이 책은 유명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소설을 많이 펴냈기도 했지만 산문집도 여럿 펴냈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보다 그의 목소리를 먼저 만났다. 작가가 팟캐스트에서 낮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읽어주던 소설들을 구해서 읽곤 했다. 어떤 이에게는 소설보다 얼굴이 익숙할 수도 있겠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알쓸신잡’을 즐겨 보았다면.

김영하의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더라도 영화로 나온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드라마로 나온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 작품들이 영상 문법에 맞게 각색되었다 하더라도 김영하의 작품 세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아무튼, 김영하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이 접하게 되는 작가다.

‘여행의 이유’를 요즘 서점에 많이 깔린 ‘여행 에세이’로 오해하고 산 독자가 있다면 무척 당황할 것이다. 이 책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이유’에 방점이 찍힌 책이다. 물론 여행을 다룬 다른 책들처럼 많은 여행자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와 도시가 나온다.

하지만 여행을 다룬 책에서 소개하는 멋진 곳이나 예쁜 숙소 혹은 맛난 음식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지냈던 이야기와 그곳에서 어떤 생각들이 떠올랐는지 잔잔하게 털어놓는다. 마치 팟캐스트를 듣는 것인 양 그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다.

‘작가의 말’에서도 고백했듯이 그는 여행자였고 여행은 글쓰기로 연결되었다. 이 책도 결국은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여행을 떠나면 자기에 대해서, 때로는 타인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글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멕시코  고교생들에게 사인하는 소설가 김영하. '과달라하라 국제도서전' 참가 당시. 사진=연합뉴스
멕시코 고교생들에게 사인하는 소설가 김영하. '과달라하라 국제도서전' 참가 당시. 사진=연합뉴스

 

제목이 은유하듯이 책에서는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여행이 나온다. 아직 작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 시절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배낭을 메고 떠났고, 소설가로 자리 잡은 후에는 소설의 무대가 될 곳을 취재하러 떠나기도 했다고 말한다.

글을 읽다 보니 작가는 글 소재를 잡으려고 일부러 고행을 하나 싶었다. 작품을 쓰려고 중국에 갔는데 비자가 없어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추방된 사연이 그렇고. 크메르루주 잔당이 아직 밀림에 있던 시절, 태국에서 육로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가려고 온갖 위험한 위험과 불편을 감수했던 일화 등을 보면 그렇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할 리는 없겠지만 소설가는 일이 순탄한 것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걸 즐긴다고 고백한다. 작품의 소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16쪽)

 

김영하는 유명 철학자나 작가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 혹은 정의도 소개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바야르’가 말 한 ‘비(非) 여행’과 ‘탈(脫) 여행’이 그 한 예다. 본인이 출연한 ‘알쓸신잡’이 ‘탈 여행’을 잘 설명한다며 시청자 입장에서 삼인칭이 되어 본 경험을 고백한다.

여행을 통해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처음에는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호해진다고. 그러나 ‘탈 여행’처럼 “믿을 만한 정보원을 시켜 여행을 대신하듯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정리된다면 좀 더 명료”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며 자기 발로 직접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영하는 여행지에서 ‘섬바디’로 대우받고 싶어 한 예전의 자기와 ‘노바디’로 지내고 싶은 지금의 자기를 함께 보여준다. 여행지에서 비치는 두 모습을 비교하며 ‘오디세이아’를 여행자 관점에서 새로 해석한다. 오디세우스가 전쟁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가던 중 키클롭스에게 벌인 일을 예로 들었다.

초대받지 않았지만 귀한 손님이, 섬바디(somebody)가 되고 싶어 한 오디세우스를 오만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해석한다. 그 후 여러 역경을 통해 노바디(nobody)로, 겸허하게 변한 오디세이아를 좋은 여행자의 모습이라고도 설명한다.

 

“남의 땅에서 우리의 힘은 약해진다. 약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섬바디로) 확인받고 싶어 한다. (중략)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185쪽)

 

김영하는 소설과 여행이 비슷하다고도 고백한다. 소설은 독자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이고 집중하게 만드는데 여행도 여행자에게 그렇다며.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도 소설과 여행은 닮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 후에야 자기가 살던 곳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 관계를 통해서 실제 자기 모습을 제삼자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김영하는 우리 모두가 여행자라고 한다. 타인의 신뢰와 환대가 절실히 필요한 여행자. 그래서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먼저 반기고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돕자고 한다.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작가는 소망한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Tea와 책을 선물 세트로 팔고 있는 대형 서점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서점에 산문이, 여행 에세이가, 감성 에세이가 넘친다. 비닐로 싼 그런 책들과 함께 ‘여행의 이유’가 진열되어 있다. 얕은 감성을 호소하는 글들 사이에서 ‘여행의 이유’는 작가의 깊은 사유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만 비닐로 덮여 있어서 몰랐다.

그래서 비닐로 싸놓고 진열한 그런 책들의 숨겨진 마음을 들여다보고도 싶었다. 왜, 그 책들은 비닐로 꽁꽁 싸매어 놓였을까. 마치 베일로 가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들춰보면 책이 상할까 봐 그랬을까. 아니면 서점에서 잠깐 들여다보곤 사지 않을까 봐 그랬을까. 혹은 안에 들어간 내용에 자신이 없어서 그랬을까.

김영하가 쓴 ‘여행의 이유’는 어떤 부류였을까. 강남의 큰 서점에서 비닐로 쌓여 있던 지난주, 그 근처 중고서점에 쌓여 있던 이 책을 샀다.

이 책이 비닐에 쌓여 있던 큰 서점에서는 ‘Culture Therapy’라는 이름으로 차(茶)와 책이 함께 들어간 선물 세트를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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