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 삶이 행복하겠는가...김혜련의 '밥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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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 삶이 행복하겠는가...김혜련의 '밥하는 시간'
  • 문주용 기자
  • 승인 2019.10.24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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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의 김혜련 작가

[오피니언뉴스=문주용 기자]

평생 허공에 뜬 황망한 삶이
함부로 먹은 밥, 씹지 않고 넘긴 밥, 뒤통수 맞으며 먹은 밥,
물 말아 먹은 쉰밥, 억지로 한 밥, 건성으로 한 밥, 분노로 한 밥,
‘지겨워, 지겨워’ 하며 한 밥, 울면서 한 밥, 타인의 수고로 먹은 밥,
돈으로 한 밥, 돈 주고 먹은 싸구려 밥……
밥들의 역사였다는 것이
오늘 아침 한 그릇 밥에 말갛게 드러나네.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몽글몽글 피워내는 밥의 설법.
오십 평생 이 단순한 밥이 없었네.
그게 무슨 삶이라고!


밥하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의 삶이 행복할 수 없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통통한 밥알의 무게, 쌀 알갱이가 톡 터지며 씹힐 때 입 안 가득 빛이 도는 듯 환한 느낌. 베어 물면 사르르 녹는 호박 고구마의 다디단 맛, 감자가 으깨지도록 푹 익혀 먹는 강원도식 고추장 감자찌개.”

이른 봄에 씨 뿌리고 물을 주고, 햇빛과 비를 받고 자라는 모습을 매일매일 지켜본 생명들이 놓여 있는 식탁. 내 손으로 기르고, 내 손으로 거둔 생명을 요리해 차린 밥상. 우리가 회복해야 할 밥의 시간이다.

밥하고 밥 먹는 충만한 시간의 부재는 단지 밥의 부재가 아니라 삶의 부재이다. 삶의 회복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의 회복에서 온다.

<밥하는 시간(출판사 서울셀렉션)>이란 책은 <학교종이 땡땡땡>과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의 작가 김혜련이 20여 년간의 교사생활을 접고 경주 남산마을에서 백년 된 집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고, 살림을 하고, 자연과 만나는 일상을 담았다.

저자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몸의 감수성과 감각을 되찾는 것이 삶을 되찾는 것이라 한다. 감각한다는 것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직접적 만남은 삶을 견고하고 풍성하게 한다. 그래야 세상의 기쁨이, 작고 소중한 것들이 보이고 삶을 즐길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을 얻는 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저자는 일상을 이해할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하고 이를 다시 일상을 살면서 확장시킨다. 공부하고 배운 것을 일상으로 살아보고, 살면서 다시 배우고. 이 반복적인 과정들이 우리의 삶을 단단하고 새롭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 세상의 모든 삶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밥하는 시간>은 최근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6주 과정의 세미나에서 6주 내내 고정주제로 채택될 정도로 여성주의적인 시대적 코드와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울러 여성 NGO인 '또 하나의 문화'(또문)에서도 북 토크를 했고, 이외에도 '줌마네', '가배울' 같은 여성, 환경, 생태 운동 단체들과도 지난달과 이번달에 걸쳐 북 토크를 진행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슬픈 책은 아닌데 울컥울컥 사람의 마음을 건드는 요소들이 지뢰처럼 책 여기 저기에 매설돼 있다고. 

이번 주말인 26일 작가가 살고 있는 경북 상주에서 그동안 만났던 독자들을 초청, <밥하는 시간> 낭독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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