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법의학자가 본 사법 개혁의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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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법의학자가 본 사법 개혁의 시작점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10.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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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분야에서도 사법개혁 필요성 커...입법 때마다 좌절
경찰은 산하에 법의관 두려하고...검찰은 법의관제를 수사권 독립으로 해석
병사외 사망 사건 법의관 사건으로...부검 영장 청구권 인정하고, 변사 현장 조사하게 해야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장면 1-1

제임스는 텍사스 주 A 카운티의 법의관이다. 아침에 출근하자 어제 발생한 관내 사망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검시관으로부터 받는다. “어제 총 3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현재 사건 현장 조사와 외부 관찰에서 특별한 타살의 의심이 있는 사건은 없습니다.”

제임스는 부검실에 놓인 시신들을 살피면서 어제 밤 현장에서 채취하여 실험실로 보냈던 혈액 독성 검사 결과를 본다. 사건 2에서 혈액내 알코올 농도가 1.0g% 라는 검사 결과가 나와 있다. 치사량이지만 일상적인 음주에 의한 농도로 보기에는 너무 높다. 제임스는 부검대 위에 올려놓은 시체 외부를 정밀하게 관찰한다. 보고서에는 기술되지 않았던 주사 자국이 허벅지에서 보인다.

제임스는 곧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지방 법원 판사인 찰스에게 전화를 한다. 간단한 안부 인사 후, 어제 밤 일어난 사건 2의 혈액 알코올 농도가 치사량으로 나와서, 타살 의심을 한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다음에 팩스로 부검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찰스는 영장 청구를 할 때, 혈액 알코올 농도를 보고한 근거 문서를 첨부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대화는 마친다. 제임스는 자신의 방에서 팩스로 영장을 청구한 다음에 차를 마시면서 부검 준비를 한다.

# 장면 1-2

영철은 국과수 위촉 법의관이다. 의과 대학에서 조교수 발령을 받은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한다. 오늘 배정받은 사건은 4건이다. 개별 사건에 대한 브리핑은 사건 발생 경찰서 형사가 한다.

첫째 사건은 젊은 남성인데, 주취 상태에서 마사지를 받던 중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꽤 두툼한 부검 의뢰서에는 '사인 불명'이라는 한 장짜리 시체검안서가 첨부되어 있다. 아무런 정보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문서에 유가족은 30만원을 지불하였을 것이다.

경찰이 설명하는 현장 상황이 특별한 단서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과거 병력을 확인할 의무 기록은 애당초 기대할 수도 없다. 부검을 시행하였으나 외표와 내부 장기에 특별한 이상소견을 보지 못했다.

음독일까? 혈액 검사 결과는 한달 뒤에나 나올 텐데. 부정맥과 같은 심장 질환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검 후 시신은 바로 유가족에게 넘겨져서 화장된다.

#장면 2-1

제임스는 오늘은 법원으로 출근을 한다. 3월 초에 부검한 살인사건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밤 늦게까지 공판 담당 검사와 작전 회의를 했다. 시체가 부패했기 때문에 출혈 소견을 인정할 수 없다는 피고인 측 변호사가 오늘은 휴스톤에서 법의학자를 모셔오기 때문에, 이를 상대로 법의학 논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혈은 부패로 인해 그 소견이 가려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은 정당하다. 이번에는 갑상연골의 골절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부검 소견을 챠트로 준비했다. 12명의 일반인이 참여한 대배심 앞에서 내용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옷 매무새를 다듬어 본다.

# 장면 2-2

희수는 공판부 검사이다. 내일은 국민참여 재판을 해야 한다. 사건은 상해치사인데, 나이트클럽에서 애인을 집적거리는 녀석을 주먹으로 한 대 쳤는데 사망한 사건이다.

CCTV에서 피해자를 때리는 장면은 확인했다. 정말 딱 한 대 쳤는데 넘어지면서 피해자는 의식을 잃었다. 병원으로 옮겨서 뇌출혈 확인하고 수술을 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6개월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낸 상황이었다. 국과수 부검 소견서에는 수술 소견과 그 후에 진행된 뇌 위축이 기술되어 있다.

응급실을 거쳐서 중환자실까지 사건 발생 이후 2일 동안에 두개골을 열고 수술을 했으며, 수 많은 의료 시술들이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의무기록지를 보려니 머리가 아프다. 구글링을 통해서 몇몇 의학 용어를 찾아보지만 기록지는 복잡한 퍼즐과 같아서 전혀 상황 파악이 안된다. 원래 피해자의 뇌혈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과 수술 기록지에서 뇌혈관이 부풀어 있다는 기록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 걸까? 막막하기만 하다.

대법원에서 법의학자들을 검찰 자문으로 위촉했다고 하던데,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공판일이 모레인데 내일 시간이 될지 걱정이다.

# 장면 1과 2는 필자가 경험한 미국과 한국에서의 사법 부검 및 법의학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법의학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2014년 모 일간지 기사. 사진= 세계일보 지면 캡쳐
법의학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2014년 모 일간지 기사. 사진= 세계일보 지면 캡쳐

법의학 입장에서 사법개혁...법의관 관련 입법 문제

법의학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후로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이들 장면들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다.
 
1년이면 어김없이 한 번 정도는 항상 대한법의학 학회를 찾는 대중 매체가 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TV 시사프로그램이나 주요 일간지를 포함한 전문지 중에 법의학 문제를 다루지 않은 매체가 없을 정도다.

또 국회에서는 잊을 만하면 법의관 관련 입법을 한다고 대한법의학회 의견을 구한다는 이메일이 온다. 10 여년 전에는 정부 입법을 한다며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해 학회가 참석하기도 하였고 수년 전까지도 자체 입법안을 가지고 여러 군데 국회의원을 만나서 설명도 나름 해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법의관 법을 만들자는 시대적 요청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현상 유지이다. 학회에 가면 후배들 보기도 민망하고, 선배들은 "죽은 자는 투표권이 없어서 그렇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한다.

근대 법의학을 알기 위해서는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인 일제 시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우리 법 체계는 대륙법을 계수한 일본 법을 의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법의학은 세브란스 병원, 경성제대 같은 곳에서 강의를 하고 법의학 교실을 중심으로 실무를 했다.

물론 일본인 교수가 시작했고, 한국인이 후임 발령을 받으면서 강의를 개설했다. 1929년에는 제24차 일본법의학회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광복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폐허가 된 이 땅에 미국의 원조 체계와 맞물려 대학 제도역시 미국식으로 바뀌게 됐다. 그 시작이 미네소타 주립대학에 서울대 교수진을 보내 의학, 농업, 공업 분야의 기술을 전수하는 교육 원조 ‘미네소타 프로젝트’였다.

1955년부터 7년에 걸쳐 서울대학교 교수진 226명이 장단기로 연수를 다녀왔고, 그중에 77명이 의학 분야 종사자였다.

서울 의대와 병원은 일제시대의 이론 중심 의학을 극복하고 미국의 임상 중심 체제로 변했다. 그 변화는 한국 의학 교육의 근간을 만드는 시작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법의학은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미국식 법의학은 ‘법의관’ 또는 ‘검시관’이라는 공적 기관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미국 의과 대학에서 법의학을 교육하는 곳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네소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서울 의대 법의학 교실은 족보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된다.

하지만 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 시기에 법의학은 경찰 업무의 필요성에 의하여 경찰청 산하 기관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것이 후일 독립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된다.

이후 197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국립 과학수사연구소장을 역임했던 문국진 교수가 법의학 교실을 다시 창설하게 되면서 대학에 학문적 기초를 가지게 된다.

요사이 정국에서 뇌관은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찬반이었지만,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는 일치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과연 무엇이 검찰 개혁인가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공수처 신설의 찬반 논의도 그러고,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한 찬반 논의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권력 집중을 막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여야 한다’는 대의는 공감하지만, 내놓은 안이라고 하는 것이 권력 다툼과도 같아 보인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맞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것인가? 

법의학의 필요성이 인정되면서 경찰청 산하 기관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후일 독립하게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진= 연합뉴스
법의학의 필요성이 인정되면서 경찰청 산하 기관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후일 독립하게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진= 연합뉴스

법의관 제도가 경찰 수사권 독립?

법의학 시각에서 본 사법 개혁은 법의학 제도 개혁이다. 과거의 입법례가 다수 있는데, 의견이 대립하는 지점은 간단했다.

법의관 제도를 만들면서 일정한 권한을 주는 입법을 하면, 경찰과 검찰이 반대했다. 경찰은 법의관이 경찰 산하 기관으로 있어야 한다고 하고, 검찰은 이를 경찰 수사권 독립으로 보았다.

반면에 법의관 제도를 만들되 권한을 없애고, 의무만 과다하게 하려했는데, 그러면 의료계에서 아무도 법의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법의관 제도는 그들에게 적당한 권한과 의무를 주고 사회적으로 기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망 사건에서 병사를 제외한 사망을 법의관 사건으로 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법의관에게 부검 영장 청구권을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검시 인력을 주어서 변사 현장을 조사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법의학에서 본 사법 제도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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